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4
신비(妙)어로2-연인은 서로에게 구원자이다
신비(妙)
2011. 3. 17. 13:39
여성들이 자기 남자친구나 애인에게 하는 말은
의역해 보면 대부분 이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너, 내 말에 (당연히) 공감하지?"
바꾸어 말하면
"넌 (당연히)내 편이지?" 이거 하나다.
물론 형식은 질문이거나 어깃장이거나 투정일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여성들은 사랑의 품 안에서 노는 중이다.
언어유희라고 하면 맞을까?
마치 선비들이 문답을 하듯이 자기들만의 언어를 주고 받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던져도 잘 받아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다른 개그맨들이 박명수의 개그를 받아주지 못하지만
유재석만은 그것을 찰떡처럼 잘 받아주듯이
그런 환상의 호흡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러면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
유재석처럼 한 단계 위로 올라가 상황을 내려다 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여자친구가 화가 났거나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랑의 언어를 던진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잰다.
환상의 콤비처럼, 혹은 핑퐁게임처럼
그렇게 쌈박하게 받아 보라는 말이다.
그래야 자기들만의 사랑의 모양이 갖춰지고 재미있는 그림이 된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채는 남성이 잘 없다는 것.
대부분은 말의 의도를 알아 차리지 못한다.
여성들은 왜 그리 말을 꼬아서 하는가,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여성은 이미 상황을 미리 한 단계 위에서 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글을 쓸 때 본론에 앞서 비유를 먼저 드는 것과 같다.
그 뒤의 할 말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남성들은 앞의 말만 듣고 섣불리 맞받아쳐 버린다.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 혹은
내가 싫어서 그러는 거네! 또는
시비를 거는구만, 곤란한 질문을 하면 어떡하냐는 등등.
그러나 정작 할 말은 아직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진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물었겠느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깨달음인 것이다.
삶은 무엇이며 너는 누구인가? 를 묻는 것.
도대체 너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묻는 것이다.
제가 한 요리를 먹이고 맛있냐고 묻는 것은
진짜 요리의 맛을 평가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니가 심사위원이냐?)
맨날 보는 얼굴, 걸핏하면 예쁘냐고 묻는 것도 마찬가지고(묻는 이도 민망하다)
때로 '그럼 내가 싫으냐?' 고 어깃장 놓는 듯한 질문도 사실은 다 긍정의 답을 기획한 것이다.
다름 아닌 '네가 내 옆자리에 와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네가 그저 타인으로서 대충 나를 마주하고 있느냐?
아니면 진짜 니가 내 옆으로 와서, 나와 나란히 하나가 되어 존재하느냐?
바로 그것을 묻는 것이다. 그러니 어려울 것이 없다.
이 얼마나 심플한 문답인가 말이다.
(물론 진정한 관계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모든 답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그 순간 지엄한 달마조사가 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선문답이 그러하듯이, 신의 존재을 상정해놓으면 완벽한 논리가 펼쳐지듯이
여자친구를 사랑한다면, 아내를 사랑한다면 그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나는 언제나 당신 편이야!" 이게 답이다.
어깃장을 놓을 때도, 뭔가 곤란한 질문을 한다 싶을 때도 사실은
다 그런 긍정의 답을 기획하고 그 다음 자신의 할 말까지를 준비해 놓은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남성들이여, 사실 어려울 것이 없다.
이런 뉘앙스면 언제나 합격이니까!
"그럴 리가 있어? 나야 언제나 당신 편이지."
아름다운 수사를 연구할 필요는 없다.
물론 성의를 보인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여성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달콤한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근본적인 답이며,
남성의 매너보다는 그 안의 진심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말은 어떻대도 크게 상관은 없다.
말이 아니라 의도, 말솜씨가 아니라 그 가슴 속을 들여다 보는 것이니까.
더불어 전설의 만담커플처럼 환상의 호흡을 추구하는 것이니까.
그 마음이 진심이기만 하다면, 더더욱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다.
정신 차리고, 그리고 호흡을 맞춰보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찰떡 호흡이 되는 것이다
일종의 놀이이다. 천진난만한 사랑의 놀이.
다른 이들하고는 통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서로는 통하는,
마치 깨달음과 같은 소통의 수단인 것이다.
여성들은 제 애인과 오로지 '소통'하고자 한다.
물론 왜 그렇게 허구한 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그 까다로운 소통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깨달음과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순간 스스로에게 삶의 질문을 던져야 하며
그리하여 순간순간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계란 세상 가장 약한 생명이다.
그러니 관계도 매순간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관계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만남을 죽이고 설렘을 죽이고 서로를 죽이기 전에
매 순간 살불살조하는 마음으로 관계를 생생하게 지켜내야 하기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나의 구원자로 봐야 한다.
구원자로 상정해 놓으면 그와의 호흡이 환상이 될 것이다.
어떠한 질문도 두렵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답이 있을 것이다.
남성들이여. 부디 깨달음을..!
-신비(妙)
p.s)
여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성,
사실은 보호받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는 여성에 대해 담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