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妙)어록3-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어렸을 적, 천사가 되어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곤
가슴이 두근거려 며칠 밤이나 잠을 설친 적이 있다.
구름 속을 유유히 날아다니기도 하고,
때론 멈춰서 그저 허공을 희롱하기도 하며,
아담과 이브가 사랑을 나누던 그 푸르른 낙원을
마치 신(神)이 된 듯 굽어보던 일.
옷자락 펄럭이며, 바람을 느끼며
시린 눈 가느다랗게 뜨고 창공을 가르는 그 기분이란!
상상해보라! 우리도 하늘을 날 수 있다.
날개가 없어도, 슈퍼맨이 아니어도,
꿈속이 아니어도 저 하늘로 뛰어들 수 있다.
나의 영화에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그건 단연코 비행장면!
김기덕 영화에 물이 빠지지 않듯이
나의 영화에 그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장면인 것이다.
슈퍼맨도 아니고 초능력자도 아닌 나의 히로인.
그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저 유유자적 하늘을 난다.
물론 낮에도 눈을 뜨고 꿈을 꾼다.
광속도로 날아올라 우주를 꿰뚫는 일이
존재를 얼마나 고양시키는지!
사랑은 그 향기에 취해 날아오르는 것.
그 향기 이제 너무 독하다며, 잡은 손 놓지 않는 것이다.
날갯짓을 멈추는 순간 사랑은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마는 것을.
사랑은 어쩌면 불구덩이와도 같다.
제 몸이 타들어가면서도 그 감미로움에 몸을 떠는 것.
불 속에 뛰어드는 하루살이처럼
그 불길 왜 이리 뜨겁냐고 원망하지 않는 것.
물론 연애나 결혼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신의 완전성!
우주가 그렇듯 허공은 우리의 고향이다.
유유히 날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신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온전히 신과 대면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비로소 신의 시간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렇게 거인이 되어 시간을 훌쩍 뛰어 넘을 수도 있다.
기쁨이 슬픔으로 전환되는 것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
우리가 기뻐했던 일은 언젠가 반드시 슬픔이 된다.
또한 희망 역시 다름 아닌 절망에서 잉태되는 법.
한 순간 기쁨으로 날아오르는 새가 되지도 말고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뱀이 되지도 말라.
단지 그것들에 시간을 부여할 것!
당신은 찰나에 다음 세기로 건너갈 수도 있다.
시간은 그를 지배하는 자에게만 특별히
매혹의 마법으로 보상한다.
***
거인의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시간의 강을 건널 것!
허공에서 내려다보면 태산도 준령도 다 한 걸음이다.
다음 세기에서는 자신도 그저 타인일 뿐이다.
스스로에 붙들려 있기보단 차라리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여야 한다.
자신의 입장에 놀아나기 보단
거인이 되고 신(神)이 되어 생각해야 한다.
아니,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신이 되어 저 아래의 나를 바라보고,
후세의 인간이 되어 또 바라보기.
마침내 알게 될 것이다.
생각은 무엇보다 인간을 위대하게 한다.
인간은 멀리 있는 것을 동경한다.
가까운 곳의 예수와 부처는 멸시되지만
멀리 있는 동족과 노예는 추앙받는다.
예전에 살았던 이와 이미 죽은 이는 미화되지만,
바로 옆에 살아 숨 쉬는 현자는 결코 인정되지 않는다.
바로 시간과 공간에 우리가 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어떤 한계로 다가온다.
기실 가까이 있는 것은 결코 가까이 있지 않으며
멀리 있는 것 또한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을.
부디 시간과 공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공간을 훌쩍 뛰어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시간의 터널을 유유히 비행할 수 있어야 한다.
‘나’라는 껍데기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훌쩍 거인이 되어 그 큰 걸음걸이로
성큼 하늘 끝까지 가 닿아야한다.
사소한 일에 울고 웃는 내가
개미만큼 작아 보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주인공.
시간의 노예로 끌려 다니기보다,
공간의 수인으로 갇혀 있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지배하는 영원의 군주가 되어야 한다.
시공의 치하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독립해야 한다.
마침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꿈이 있는 사람에겐 고통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며
절망도 절망이 아니다.
삶은 지속된다!
-신비(妙)
신비(妙) 어록2 2008/12/11 2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