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2

신비(妙)어록3-인간은 스트레스가 아니라 빛의 부재에 절망한다

신비(妙) 2011. 9. 27. 17:56




순교자처럼 제 몫의 외로움을 묵묵히 견디고,
제사장처럼 제 영역을 남의 그것과 혼동하지 않으며,
순례자처럼 마침내 제 몫의 삶을 살아내어
마치 신처럼 영원히 스스로를 주관하라!

-신비(妙)어록3.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中



세상에 스트레스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기 몫의 스트레스가 있는 법.

결코 자기 몫의 그것을 타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상대의 스트레스까지 넘겨받은 이는

그 몫을 전가한 이로선 상상할 수 없는 양을 감당하게 된다.

 

 

그 무게는 단순히 1+1=2의 두 배가 아니다.

수천수만 배, 말하자면 우주의 무게 두 배쯤 된다.

인간은 자신의 스트레스만으로도 이 우주를 홀로 짊어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른 우주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실존적 의미에서의 부조리이다.

 

 

당연히 가정도, 연애도 파탄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그것을 단지 스트레스 때문이라 치부한다면 곤란하다.

인간은 스트레스 때문에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부재 때문에 절망한다.

빛의 부재에 절망한다.

 

 

스트레스는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스트레스를 상대에 전가하는 못난 자는 견딜 수 없다.

그 인격을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고,

그 졸렬함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섣부른 '밀고 당기기'는 살인이자 자살행위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밀고 당기기'를 최고의 연애기술로 신봉한다.

그러나 천만에!

그것은 치졸한 잔기술이다.

어린아이의 사랑받기 전략,

인생초짜, 연애초짜의 잔머리 굴리기일 뿐이다.

 

 

인생, 더 살아봐야 한다.

연애의 실패, 사랑의 실패를 밀고 당기기의 실패로 해석한다면 초짜다.

연애의 실패, 사랑의 실패는

인격의 실패, 본능제어의 실패고,

경계 지키기, 거리 유지하기의 실패다.

 

 

밀착된 관계는 서로를 해친다.

그러므로 밀착되어 서로 밀고 당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초에 그 경계를 철저히 지키고,

서로의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관계의 선도를 지켜내야만 한다.

경계를 지키면 너저분하게 밀고 당길 일이 없다.

 

 

연애는, 사랑은 어른과 하는 것이지

결코 아이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이 자라나지 못했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

우리, 더 크게 자라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바운더리만큼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상대의 바운더리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자기 몫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타인에 전가해서도 안 된다.

스트레스가 아니라 바로 당신 안의 그 어린아이가 관계를 죽이는 것이다.

자라나라! 활처럼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라.

당신의 연인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

 

 

당신의 연인이 당신 안의 어린아이를 아직 참아 주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언젠가 숙성된 와인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지

결코 밀고 당기기 전략에 동의하거나 흡족해서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선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린아이와의 사랑 놀음에 절망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매순간의 유혹이다.

결코 맹세 이후의 안주가 아니다.

서둘러 다가가서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머리 굴리며 밀었다가 당기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제 안의 사랑을 활짝 꽃피우는 것!

 

 

어느 한 순간도 빛나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서둘러 당기지 않아도 빛나는 이에겐 다가갈 수밖에 없으며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짐짓 밀어내지 않아도

당신이 눈부시게 빛난다면 언제든 사랑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다릴 줄 아는 것!

 

 

당길 것이 아니라 기꺼이 다가오게 만들기.

밀어낼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섣불리 밀착하지 않기.

사랑을 구걸할 것이 아니라 존재감 그 자체로 유혹하기.

그러므로 오로지 눈부시게 빛나는 길 뿐이다.

세상 모든 일을 그르치는 것이 바로 준비되지 않은 자의 불안과 초조이다.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