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3

신비(妙)어록4-인생은 오지여행2

신비(妙) 2013. 5. 9. 11:05

 

 

 

 

 

강의 밤은 특별하다.

낮의 싱그러움 대신 적막한 그 느낌은

마치 낯선 별에 홀로 착륙한 어린왕자, 혹은

철이와 메텔이라도 된 듯 오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밤과 강과 별과 검은 하늘이 내뿜는 그 공기는 몹시도 적요하다.

 

 

강의 밤은 유니크unique하다.

결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미장센mise en scène.

그것은 황홀한 고독이다.

우주적 스타일이며 설렘의 원형이다.

그래서 나는 강으로 간다.

 

 

나와 일당들의 원시적 강 생활은 병만족보다 오래되었다.

우리는 타고난 원시인이다.

원시인에게 불은 최고의 재산,

그것은 언제나 장작을 구해 모닥불을 피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밤이 되기도 한다.

 

 

광대한 우주의 어느 한 별에 갑작스레 떨어지게 되면 나는

낮에 함께 수영하던 친구에게서조차

낯설고도 신선한 기운을 감지해낸다.

모닥불을 피우고 있던 친구에게 그 형편을 얘기해줄밖에.

“낯선 별에 떨어진 것 같아!”

 

 

그랬다. 나는 우주를 유영하는 탐사체이며,

이곳은 분명 훌훌 벗고 뛰어들던 한낮의 그 강이 아니다.

초월체는 스스로의 정신을 세포 분열하여

이 별과 저 별 사이를 탐사하도록 그를 파견한 것.

그리하여 탐사체는 제 초월체 안에서 자유로이 움직인다.

 

 

그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유영했다.

한낮엔 지구의 어느 강 속으로 잠수해들어갔지만

별들 사이를 광속으로 날아오르던 그는

어느 새 낯선 이방인이 불을 피우고 있는 이상한 별에 도착한 것이다.

이방인은 희한하게도 나를 친구처럼 대해준다.

 

 

하긴 그가 아니라 내가 이방인이다.

낯선 별에 착륙한 것은 우주 유일의 인간 초월체이자 탐사체, 바로 나니까!

나는 그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별이 맘에 든다.

사람들은 다정하고 모닥불은 감미롭다.

별들은 머리 위에서 종알종알 떠들어댄다.

 

 

그래서 또 한 번 풍덩!

그렇게 하여 오랫동안 잠들지 못한 불면증 환자는

근 백년 만에 달콤한 잠에 빠져들게 된다.

강은 나를 따뜻하게 끌어안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그것은 분명 구름 아니면 솜사탕으로 만들어졌으리라.

 

 

어찌 이 지독한 불면증 환자를

순식간에 제 안으로 풍덩 빠져들게 한단 말인가?

나의 구름침낭은 위대하다.

펠프스라는 이방인도 나처럼 구름침낭을 쓸까,

몹시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아, 어쩌면 로켓침낭을 쓰겠구나,

그의 침낭은 가히 폭발적이지 않은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피식 웃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미장센에 펠프스까지 참여하다니.

하긴 급할 땐 신의 전지전능도 빌려야 할 판!

 

 

나의 수영은 위험하다.

펠프스 이방인처럼 빠르지도 박태환 이방인처럼 감각적이지도 않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별엔 강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네 수영장에서 잠시 배운 얼치기 수영은

강이나 바다에서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

 

 

그럼에도 강은 나를 어미처럼 품어준다.

양수 속의 태아가 된 기분을 선사해준다.

아득한 태초를 기억해낼 수 있게 하고

홀로 초원을 달리던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용맹한 삶의 전사가 되도록 등을 두드려 준다.

 

 

용기를 잃었을 땐 강으로 가라!

바다처럼 폼 나지도,

계곡처럼 변화무쌍하지도

폭포처럼 경이롭거나 신비롭지도 않지만,

우주처럼 텅 비었으면서도 꽉 차 있어 불치의 노스탤지어를 치유해준다.

 

 

강은 고향이다.

어느 순간 바람 부는 삶 속으로 떨어져

낯선 지구별에서 곤란을 당하고 있을 때

나를 두둥실 떠올려 준 것이 바로 강이라는 존재론적 공간이다.

그 정서는 야성적이면서 낭만적이다.

 

 

세상 모두가 네게서 등을 돌리고

온 우주가 작정하여 너를 모욕할 때,

희망은커녕 그 어떤 절망조차도 사치로 느껴질 땐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수영하기를 권한다.

필히 배영은 익혀두길 바란다.

 

 

그다지 폼 나지는 않는다.

휴양지처럼 안락하지도 관광지처럼 편리하지도 않다.

그러나 야성적이며 낭만적이다.

더구나 인적 없는 강은 때론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밤의 강은 물론 이방인에게 온 우주를 선물해준다.

 

 

-신비(妙)

 

*밤과 강, 별과 밤하늘,

거기서 나온 것이 <삶의 기차를 타야 한다면, 2011/11/07 14:09>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