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妙)어록4-신비(妙)주의 혹은 평행선 이론
신비(妙)주의자로서 말하건대,
일개 인간이란 정말 매력이 없다.
영혼을 통째로 던져 사랑할 만한 존재가 못 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네 안의 신성을 사랑하는 것이지
일개 인간인 네 껍데기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신(神)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세상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일개 인간과 마주앉은 한 시간은 억겁과 같다.
사랑하지 않는 이를 계속 쳐다볼 만큼 뻔뻔하지도 못하다.
그런 이와 시시하고 잡다한 일상을 나눌 만큼 강심장도 못된다.
할 말도 없다.
아무런 할 일도 없다.
멍청하게 앉아있기란 정말 난감하다.
맨 정신으론 도저히 함께 하기 힘들다.
유쾌하며 낯조차 가리지 않는 자신이 더 자괴감이 든다.
그러나 인류는 다르다.
일단 마주 앉지 않아도 된다.
또한 꽤나 매력적이다.
아찔할 만큼 사랑스럽다.
내 영혼, 기꺼이 나누게 된다.
당장 할 일이 있다.
함께 호흡할 수 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정신은 더욱 명료해진다.
태초 이래 최고로 유쾌한 반란을 꿈꾸게 된다.
일상은 성사가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평행선이어야 한다.
너와 나 서로 마주보아서는 안 된다.
나란히 걸으며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
잠시잠깐 서로의 생이 포개지더라도
결코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에도 반드시 평행은 지켜져야 한다.
그저 사적인 삶으로 퇴행해선 안 되는 것이다.
인류와 함께하는 일이 특별히 거룩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일상!
그 순간 일상은 비로소 성사가 된다.
매순간 신과 함께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류와 함께하는 것이다
함께 인류를 사랑해야 한다.
아픈 세상을 아파해야 한다.
상처받은 별들을 기억해야 한다.
크게 무너진 자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삶의 거대한 파도를 유유히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홀로 우주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신의 통쾌한 반전을 준비해야 한다.
그예 생에 그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
누가 평행선을 만나지 못해 슬픈 것이라 했지?
평행선으로 만나는 것이 진정으로 만나는 것,
우리는 각자 평행선으로 만나야 한다.
각자 홀로 우뚝해야 한다.
정상이 정상을 만나듯 그렇게 만나야 한다.
마주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서로의 세계가 우주만큼 광대하지 않다면
점점 더 가까워져 서로를 통과할 일만 남는다.
자신의 크기만큼 상대에게 커다란 구멍을 남기고
서로를 등지고 멀어질 일만 남게 된다.
그것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잠시잠깐 서로를 통과하는 것!
이 우주의 많은 길 중,
잠시 서로의 길이 겹쳐진 교통사고.
일개 인간의 사랑타령이 아픔으로 남는 것은
서로의 길이 실타래처럼 헝클어져 사고가 났기 때문.
만남이란 서로의 생이 고스란히 보일만큼 한 발짝 떨어지는 것.
서로의 생이 포개어지지 않는다고 멀어지지도 않는 것.
바로 영원히 평행선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각자 홀로 우뚝 서는 것이다.
서로 홀로 우뚝해 만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신비(妙)
*이것이 바로 신비(妙)의 평행선 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