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의 여행

곰스크로의 여행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2008. 12. 10. 21:09

곰스크로의 여행



프릿츠 오토만의 ‘곰스크로의 여행’이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꿈의 도시 곰스크를 향한 열망을 간직한 남자다. 그는 결혼하자마자 곰스크에로의 모험을 위해 기차에 몸을 싣지만 결국 간이역에 버려진(?) 채 살아가고 있다. 번번이 현실에 발목이 잡혀 떠나지 못하고 있지만 주인공은 오늘도 꿈을 꾼다.


반면 그의 아내는 곰스크에로의 열망 대신 현실에의 안주를 선택한다. 주인공이 그토록 집착하는 곰스크는 아내에게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아내는 곰스크에 대해 ‘마치 젊은이가 죽음에 대해 말하듯’하곤 한다. 그 꿈은 너무나 먼 미래의 일이기에 현재로선 아무런 실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주인공이 꿈꾸어 왔던 도시, 진정한 삶이 시작될 것만 같은 도시! 그렇다. 곰스크는 보다 나은 삶이라는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아내는 아이들과 예쁜 집, 직장과 마찬가지로 현실에 대한 상징이자 주인공의 또 다른 모습이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에 달렸기에 떠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뜻이라는 아내의 말이 그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주인공은 말한다. “어느 것이 진짜 인생일까. 여기서 사는 것? 아니면 곰스크로 가는 것?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평화롭게 보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곰스크행 기차표를 사기 위해 아무도 몰래 돈을 모으고 있다.” 소설은 아직은 떠나지 못한 주인공의 일기로 끝을 맺는다.


현실에 얽매여 쉽사리 떠나지 못하지만 그는 아직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적응하면 할수록 꿈은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만 간다. 오로지 꿈을 향한 계획에 모든 것을 걸었던 남자는 어느덧 안락한 삶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실낱같은 꿈 한 자락을 추억처럼 꼭꼭 숨겨둔 채! 그는 과연 곰스크로 떠날 수 있을까?


꿈을 향한 기차에 몸을 싣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아내의 고집에 무기력하게 꺾였던 주인공. 잠시 머무르기로 했던 황야의 마을을 고향이라 여기며 행복하게 사는 아내. 사실 주인공과 아내는 한 사람의 두 모습이다. 그의 꿈과 아내의 현실은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안의 두 생각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것과 오늘 하루를 완성하며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 그 두 모습이 주인공의 안에서 끊임없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목적 없는 삶이 의미 있을 리 없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지 못해도 역시 의미는 없다. 별을 길잡이로 항해하는 선원의 그것처럼 뚜렷한 목적지가 있을 때에 오늘의 부지런한 항해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저 별만을 바라보며 머물러 있을 것인지, 목적 없는 항해를 계속할 것인지 선택하려 한다면 실패다. 삶이란 어쩌면 스쳐가는 섬광과도 같은 것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의미 찾기에 성공해야만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순간은 영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살아내는 오늘 이 순간이 허무한 삶 안에서도 보석처럼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꿈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오늘 하루를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 늘 조바심을 내며 이 순간을 놓치고 만다. 그의 오늘은 내일로 인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막상 떠나지 못한다. 실패다. 반면 아내에게는 내일이 없다.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에 만족하고 있다. 그녀는 결코 불투명한 내일에 오늘을 걸지 않는다. 역시 실패다.


주인공의 내일은 아내의 오늘과 만나 완성되어야 한다. 아내의 이 순간은 주인공의 꿈과 만나 완전해져야 한다. 여전히 버리지 못한 꿈은 떳떳한 것이 되어야 하고 꿈이 있다는 것으로 오늘 하루가 의미 있어져야 한다. 오늘의 안락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일은 허망한 일이다. 그것은 안락이 아니라 죽음일 뿐이다.


완성해야만 한다. 때로 까마득해 보이는 별이 이 순간의 항해를 포기하라 속삭인다 해도 그 또한 자신의 목소리임을 안다면 정신을 차릴 일이다. 닻을 내린 배도, 부단히 항해하는 배도 폭풍우를 만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노를 저어야 한다. 저기 저 하늘에 오늘도 별이 반짝이고 있지 않은가?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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