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차원에 사는 사람에게 사차원의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평면의 세상에선 입체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
언어는 단어와 문장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맥락으로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세계를 뛰어넘는 수밖엔 없다.
세계와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 다리의 재료는 오로지 사랑.
그곳에서 두 다리를 각 세계에 튼실하게 딛고 있어줄,
거인이라도 필요하다.
말이란 공허하다.
세상엔 남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타인의 세계에 무관심하다.
그것은 물론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적 소양이 없고, 인간에 대해 기본적으로 무지한 탓!
인간이란 과연 어떠한 존재인지 그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예비 되지 않는다면
말은 언제나 그렇듯 타인의 가슴에 가 닿지 못할 것이다.
타인의 세계를 인정할 것!
그곳은 다가갈 곳이 아니라 인식할 곳이다.
제사가 그렇듯 두 세계의 만남은 지극히 성스러운 것이다.
예절이나 형식보다는 진지하고도 성스러운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세계가 확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화를 시작하려고 주의를 환기시킨 한 마디를 얼른 낚아채는 이도 있다.
그는 끝내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지 못한다.
이런 사람과는 대화를 -시작조차 -할 수 없다.
물론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약속 장소에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나 오해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신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가 빈약하여
영영 타인의 세계에 초대받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는 학자도 아니거니와,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려 애쓰지 않는다.
말을 한다는 것은 짜디짠 바닷물을 들이키는 것과 같은 것을!
인간은 대부분 살인자이다.
사는 동안 아마도 수많은 생명을 살해했을 것이다.
연인의 독립선을 침범하여 죽이고 사랑을 구속하여 죽이고,
말로도 죽이고, 눈빛으로도 죽였을 것이다.
무엇보다 관계에 안주하여, 수많은 ‘관계’들을 죽여 왔을 것이다.
당신은 어쩌면 그 분야의 최고수일지 모른다.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내가 이렇게 살의를 느끼는 것은
그 옛날 내가 수 명의 인간을 살해했다는 증거일수 있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나를 살해할 마음을 먹고 있다.
그렇다.
신은 전쟁을 원한다.
태어나고 만발하고 흐드러지고 부딪히고 깨지고,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고!
격정에 이끌릴지언정 거짓평화 따위를 원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다.
위선이 옳았다면 세계는 창조되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의 이라크 침공 따위는 전쟁이 아니다.
진정한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아니, 태곳적부터 이미 진행 중이다.
인간은 전쟁의 참맛을 모르기에 평화의 진정한 형태도 모르는 것이다.
눈치보고 경계하고 파수(把守)서고, 추악한 것을 보면 고개를 돌리는가?
회피가 더욱 끔찍하다.
영혼대신 차라리 이 사회의 도덕에 올무를 씌워라!
산악인은 마음이 좁지 않다.
정상에 서 보았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아랫동네를 굽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며,
매 순간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는 편견이 많지 않다.
그들의 마음은 우주에 살기 때문이다.
드넓은 우주 공간을 아우르며
어느새 소소한 일상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우주 비행사는 유유자적하다.
그들은 무중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 다 버리고 그저 몸뚱이 하나로
신비한 우주의 속살과 맞대면 해보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포지션이다!
정상에 서 본 사람,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다르다.
전체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눈높이가, 스케일이 다르다.
아니라면 아이라도 낳고 길러볼 일이다!
사사건건 대꾸하고 반항하고 투정부리고 어깃장 놓는 것이
그 얼마나 철없는 짓인지 혹 알게 될 지도 모르잖는가?
그러나 아기를 낳아본 이가 반드시 철이 드는 것은 아니며,
죽음을 경험(?)한 이 모두가 새로운 버전의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영원한 ‘순간’도 모두 꿈처럼 흘려 버리는 가공할 기억력.
일찍이 내 열등감은 '인간'이었다!
언젠가 사막 마라톤을 본 적이 있다.
선수들은 제각기 홀로 멀리 떨어져 태양과 바람과 사막과,
무엇보다 자기 스스로와 싸워야 했다.
그 고독한 사투가 우리네 삶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들러붙고 엉겨붙고 얼렁뚱땅 친한 척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중 단연 최고가 아닐까.
이 황막한 사막에서 나는 비상을 꿈꾼다.
한 여름 그 바다를 강타한 태풍처럼 그렇게 홀연하게,
어쩌면 장엄하게 사라지고 싶다.
그렇다. 나는 가장 크게 살아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매 순간 혼자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
나는 목하 게으름 중이다. 가난도 즐겁다.
어느 순간 내가 찬란하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 그 자체 때문이며,
가짜는 단 하나도 없이 존재감 하나만으로 나의 세계를 가득 채울 수 있으니까!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