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하고픈 말
여기 내가 주인공인 영화가 있어. 나는 매 순간 그 영화를 보고 있지. 물론 아직 다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정말 멋진 영화를 만들어 볼 생각이야. 그래서 지금도 그 한 장면 한 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어. 영화가 끝났을 때쯤 사람들은 말할지도 몰라. 그는 끝끝내 영화를 완성했노라고! 그는 마침내 꿈을 이루었노라고!
물론 그렇다면 좋겠지. 하지만 말이야. 지금 이 순간이 없다면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 거야. 지금 이 순간은 어쩌면 영화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거든. 우리가 맞는 그 모든 순간순간은 이미 아득히 먼 옛날부터 예고되어 있었고 앞으로 올 미지의 순간들까지 포함하고 있거든!
그래서 내 영화에는 과거나 미래따윈 존재하지 않아. 그 모든 과거의 순간들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빛이 근원되어 흐르고 있거든.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과거의 순간들이 준비되어 있었던 게 아니라 지난 그 순간들 속에 지금 이 순간이 섬광처럼 번득이고 있는 거야! 지금 이 순간이 삶의 전부야.
순간을 완성하는 것이 삶을 완성하는 것이지. 지금 이 순간은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누구든 처음에는 최선을 다하잖아. 그리고 마지막에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이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할 거야. 그 어떤 기대도, 계획도, 전략도, 또한 미련도, 후회도, 기약도 없이!
다음이란 없는 거야. 다음 순간이란 마치 다음 생(生)과도 같은 거지. 우리가 다음 생(生)에까지 할 일을 남길 수 있을까? 그것은 후손에게 할 일을 물려주기 위해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도 같은 일이야.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이 마치 생의 처음인 것처럼, 또한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처음인 듯 가슴 뛰게 마지막인 것처럼 남김없이, 그렇게 사는 거야!
내일 뜨는 태양은 내일의 것이지 오늘의 것이 아니거든. 오늘의 태양은 오늘과 함께 사라져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매순간 천지만물과 영원한 안녕을 고하는 거야. 또한 영원한 만남을 시작하는 것이기도 하지.
내가 너를 만난다면 그렇게 만날 거야!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 한 순간 너의 전 생애와 만날 거야. 그리하여 그 순간은 독립된 하나의 시간이 되고 그 시간은 마침내 한 생(生)이 되는 거야.
너를 백 번 만난다면 나는 백 번의 생을 사는 것이 되지. 너와 천 번을 헤어진다면 나는 천 번의 생을 살게 될 거야. 너와 헤어진 그 길이 이 세상을 두고 가는 길이라 해도 역시 같아. 내가 떠난 그 자리엔 언제나 그렇듯 바람과 공기와 이슬이 날 대신할거야.
너를 떠올리면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던 태초의 숨결을 느껴. 그 아스라한 기억이 매 순간 너로 인해 되살아나. 지금 이순간도 나는 신선한 태곳적 향기 속에서 너를 만나고 있어 나는 너를 숨쉬고 있는 거야. 나를 둘러싼 대기는 너와의 만남을 증거하고 그 숨결은 아득한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또 역사가 되는 거야.
나의 천 번의 생과 너의 천년의 생이 고스란히 만나 일치된다면 그 순간은 완전한 나의 생애가 될 것이고 그것으로 우리의 만남은 그 무엇보다 더 가치 있어질 거야. 나의 영화에는 수 천 번의 생, 혹은 단 한 순간의 삶이 기록되는 거지.
이게 바로 나의 꿈이야. 나는 그 꿈에서 태어났지. 우주가 태어났을 때부터였던 나의 토양, 나의 근원, 나의 에너지. 나는 꿈을 잊어도 꿈은 나를 잊은 적이 없어. 나는 이미 꿈 그 자체이고 너 또한 나의 전부니까. 우린 그 꿈을 위해 시간을 거스르고 공간을 가로질러 태초에서 건너 왔던 거야.
알고 있지? 너는 이미 오래 전 내가 초대한 귀한 손님이란 걸. 알고 있니?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너를 기다려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 우리에게 약속 따윈 필요 없다는 것을. - 신비(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