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인간을 만나 보았느냐?

누구, 인간을 만나 보았느냐?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8. 12. 11. 16:34

대부분의 남자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하면서도,

자신을 투우장의 투우사쯤으로 착각한다.

기선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 모습은

차라리 미로 속에 갇힌 햄스터 같다.

전쟁이 남자들의 놀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솔직히 깨달았다는 사람들에 관심이 없다.

그 많은 명상센터며 사이트들은 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그들은 틈만 나면 자신을 알아달라며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진다.

부담스럽다. 가만히 앉아서 말씨름이나 하면

세상이 자신을 알아줄 줄 아는 자들.


일찍이 구지선사는 동자의 손가락을 잘랐다.

습관처럼 스승을 흉내 냈던 동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을 테고

어쨌든 그는 손가락 대신 깨달음을 얻었다던가!

하여간 깨달았다면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것.

깨달음은 끝이 아니라 비로소 시작이다.


영화에서는 곧잘 스승을 죽이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

스승이 없다함은 곧 스승에게서 독립하는 것.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아기 새처럼

비로소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이다.


함석헌은 누가 뭐래도 다석의 제자가 아닌가!

하긴 리얼리티 개그프로를 보면 그런 장면 꼭 있다.

자기 말-개그는 하지 않은 채 남의 말에 토 달거나 관전평 하는,

그러느라 귀한 시간 다 보내고 결국 자기 말은 못 하는 사람.

자기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구구절절 제 히스토리 말고 진정한 자신의 말.

선인의 명언이 아닌 자신의 내부에서 터져 나온 말.

제 안에서 곰삭아 비로소 제 고유의 향기를 내는 말.

주도권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것.

게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창조에 의한 것이다.


자신의 말을 하는 이는 언제 어디서든 저절로 주도권을 가진다.

상대의 말에 토 달거나 말씨름 하지 않고도

그 어떤 타이밍에도 제가 주도한 판을 펼친다.

또한 그에 의한 희생자(!)를 원치도 않는다.

아니, 애초에 게임에는 관심이 없다.


아무도 불러보지 못한 노래를 부르고

아무도 그려보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아무도 살지 않은 삶을 사는 것!

자신을 마음껏 펼치는 사람에게서 비로소 주도권은 탄생한다.


물론 자신에게 골몰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

단번에 세계를 훌쩍 뛰어넘어야 가능한 일이다.

생각만으로 전 우주를 섭렵하고

비로소 사랑,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완전한 만남을 준비할 수 있다.


혹여 만남에 앞서 상대에 어울릴 그럴듯한 대화꺼리를 준비한다면?

그는 이미 부담을 느꼈다는 반증이다.

당연히 이야기 소재는 한정되고 분위기는 경직된다.

준비한 이야깃거리가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할 셈인가?

자신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저기 수 억겁을 돌고 돌아 비로소 만날 그리운 이가 있다.

생각만으로도 어지럼증이 도지고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한다.

전율에 휩싸여 달려가기에 앞서, 잠시 일시정지를 누른 다음

시사프로와 뉴스를 챙기고 유머집이나 암기하고 있다면?

뭐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가 되는 거다.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골몰하는 방법으로,

사랑, 그 자체가 되는 방법으로!

다만 제 삶으로써 제 앞에 일어날 모든 것에 대비하는 자만이

완전한 사랑에 이를 수 있다.


타인에게 부담주지 않으면서 자신 또한 부담 느끼지 않기.

진정 그리운 이라면 만남 그 자체로도 이미 부담이 되는 것.

부담스런 포즈로 제 존재 자체를 모욕이 되게 해선 안 된다.

그래서 인간들은 그저 애써 만만한 사람들이나 만나며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채로 그저 연속극 주인공이나 부러워하며 사는 이들.


달리 스승과 제자가 아니다.

자신보다 앞선(?) 이에게 부담을 느끼면 그 순간 스승과 제자가 되는 거다.

그래서 남자들은 곧잘 요상한 방법을 쓰곤 한다.

추종하지 않는 방법으로 추종하기,

맞겨루는 방법으로 노예 되기. 무시하는 방법으로 집착하기.


그러나 그것은 전쟁을 하면서 사랑하자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고, 주지 않으면서

백퍼센트 자신을 펼쳐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삶 안으로 깨달음을 안고 들어와야 한다.

어설픈 초짜의 촌티를 벗고 비로소 완성된 캐릭터를 가지는 것.


진짜 게임은 삶의 매 순간 일어난다.

도저히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산을 만났을 때,

풀리지 않는 인생의 숙제를 만났을 때,

혹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자기 자신, 혹은 신과 게임을 벌이는 것.


왜 하늘에 대고 도발하지 못하는가?

왜 신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가?

“이 정도로 나를 꺾어 보시겠다? 내가 여기서 멈출 것 같은가, 교활한 양반 같으니!”

왜 외치지 못하는가?

똑같은 인간들끼리 게임해 봤자다.


신과 게임을 벌이기.

삶을 걸고 올인하기.

텅 빈 길 위에 서서 외치기.

거침없이 달리기.

인생은 로드무비, 결국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다! -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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