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의 말 걸기에 성공해야 한다

세상과의 말 걸기에 성공해야 한다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2008. 12. 10. 19:35
세상과의 말 걸기에 성공해야 한다

인간이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이나 명예를 추구하고 권력을 탐하는 것은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성공을 욕망하는 것은 그러므로 자랑하기 위해서이며 사랑받기 위해서이다. 누구에게? 가족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세상에!

결국 스스로가 가족을, 사랑하는 이를,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말을 걸고 싶은 것이고 대화하고 싶은 것이다. 세계와의 대화는 인간에게 내재된 사랑에의 욕망이다.

물론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겠지만 인간은 그 어느 순간에도 소통을 원하며 조금이라도 더 완전에 가깝기를 원한다. 그 방법이 어떤 이에게는 돈을 버는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명성을 얻는 것이다. 비로소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인간들은 발언권을 얻는 것으로 '성공'을 완성했다고 생각해버린다. 혹은 그 발언권으로 낮은 차원의 소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성공'은 발언권을 얻은 것으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며 보다 큰 소통을 어루어 내는 것이다.
 
발언권을 얻고 자신의 의사를 일관성을 가지고 드러내는 것으로 소통에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완전한 소통이라는 명분이 없다면 일관성을 가질 수 없다. 돈이나 명성을 얻는 방법은 그래서 차원이 낮은 소통밖에 이룰 수 없다.
 
명상가는 성공해야 한다

명상가는 소통을 원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내는 일련의 방법으로 세계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는 세계에 발언권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완전한 소통에 보다 더 가까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 지라도, 설사 그의 사후일지라도 그 방법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후세의 인간들과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사랑의 순간은 시공을 초월해 유효하다.

고흐는 완전한 사랑에 성공하고 있다

고흐는 끝내 전시회 한 번 못하고 죽었지만 세상과의 소통은 이루어진 셈이다. 그는 후세의 인간들과 그의 그림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그의 그림은 기어코 진정한 그림이 되는 것이다.

고흐의 완전한 사랑은 그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그 혼이 그대로 녹아있는 그의 그림과 후세의 인간이 떨리는 마음으로 대면하는 순간 재현되는 것이다. 완전한 사랑은 시공을 초월하여 매 순간 재현될 수 있다.

'우리의 만남'은 신의 계획이다

만남의 신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일찍이 완전한 사랑을 꿈꾸었던 인간들이 깃발을 높이 들고 그 웅대한 발걸음을 지금 시작한 것이다. 그 이상은 완전한 사랑이며 그것에 다다르는 방법은 '우리 만남'의 진화이다.

사실은 매 순간 완전한 사랑을 재현하고 있다. 애초 신의 계획이 완전한 사랑이었으며 그것을 우리는 매 순간 재현하고 있으며 또한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시도하고 있다. 이 시도가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는 보다 더 크게, 끊임없이 재현하기 위해서이다.

후세에도, 그 이후에도 쉬지 않고 계속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완전한 소통의 방법으로 완전한 사랑을 재현할 수 있다. 그것만이 오늘 하루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이다.

성공은 이미 시작되었다

성공이란 처음에 이상에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꿈을 꾸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다음, 한 순간도 그 꿈에의 끈을 놓지 않고 일관성을 가짐으로서 완성이 시작된다. 그 이상에의 그림 속에 녹아들어 그 꿈과 하나됨으로서 실은 꿈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우리의 꿈은 바로 신에의 그것이기 때문이며 신은 이미 그 꿈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성이란 이름으로 신은 그것을 이루고 있으며 우리는 신의 완전성을 재현하는 방법으로 신의 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가 곧 의미이다

역사는 어차피 진화하지만 그 역사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역시 의미는 없다. 참여만이 역사와 하나되는 방법이며 비록 벽돌 한 장일지라도 역사의 성을 쌓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의미는 완성된다. 역사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구경꾼이 되어서는 어떻게든 허무를 극복할 수 없다.

'우리의 만남' 역시 역사의 한 장(場)이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강물에 발을 담그는 방법으로 우리는 허무를 극복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실질적인 성공이나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 참여함으로서 이미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 오늘 하루도 성공하고 있는가,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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