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의 대화

신과의 대화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2008. 12. 10. 20:56

신과의 대화
 
어느 날 신(神)이 지구를 방문하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많은 인간들이 신의 광장에 모였음은 물론이다.
신과 인간은 대화하였다.
그 중 어리석은 자는 “삶의 의미가 뭐예요?” 하며 신을 귀찮게 하였다고 한다.

신의 광장에 몰려나간 인간들은 저마다 질문을 하였다.
그동안 인간은 일방적으로 내팽겨진 듯한 삶을 살아 왔으니
일말의 보상심리가 있었던 것이다.

왜 그동안 인류를 방치해 놓았나요?
혹은 당신은 정말 전지전능한가요? 등의 질문을 할 수도 있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신을 믿어 의심치 않아서 순진한 질문을 하는 인간,
그리고 여전히 신을 의식하면서도 스스로의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

아니, 그 상위에 또 나눌 수 있는 부류가 있다.
신에게 꼭 질문해 보고야 말겠다는 인간,
그리고 신에 대한 질문이 곧 스스로에 대한 질문임을 아는 인간.
역시 신에게 질문해 보겠다는 인간은 어쩌면 순진한 인간이다.

신에게 질문하겠다는 것은 곧 신과 스스로를 분리하여 상대적인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인간들이 하는 질문이란 신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라
역시 스스로에 대한 변명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의 입장에 서 보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내가 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신이라면 이 세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또한 인간들과 어떤 대화를 하고 싶을 것인가?

바로 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다.
그것은 깨달은 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스스로의 삶 밖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
삶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삶 밖에서 발견해 내는 것.
마치 신이 그렇듯 세상을 운영해 보는 것!
 
인간의 시선으로는 신과 대화할 수 없다.
대화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신은 늘 인간을 방문하고 있다.
그를 알아채고 매 순간 신과 대면할 수 있는 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신은 늘 인간을 방문하고 있고,
어리석은 인간이 그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내 영역을 그만큼 넓힐 수 있는가이다.
애초 신이 우주를 창조한 것처럼 나는 무언가를 창조해 보았는가,
혹은 그처럼 고뇌해 보았는가?

바로 그것을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대는 신에게 질문할 것이 있는가?
그것은 그대의 평소 의혹인가, 불만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답을 합리화하기 위한 확인사살인가?
아니면 진실로 신과 대등하게 질문할 위치가 되었는가?
 
매 순간 신과의 대화에 게으르지 않았다면
신이 지구을 방문했다고 해서 따로 질문할 일 따위는 없다.
굳이 그 복잡한 신의 광장에 나가 신을 알현해야 할 이유도 없다.
매순간 신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소통이, 만남이 중요한 이유이다.
신과의 충분한 소통이, 완전한 만남이 가능하다면
질문 따위는 필요 없다. 단지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합일될 수 있을 것이다.
신이 내 창가를 두드릴 때,
신이 내 마음을 들여다 볼 때,
신이 내 발걸음을 인도할 때,
그때의 내 눈빛이 중요하다.

인간의 삶이 신의 사랑을 재현하는 것이라면
그대는 신과 완전한 소통을 이루어냈는가,
그리하여 그것을 완전하게 재현하고 있는가,
이것이 중요할 터이다.
내 사랑의 손짓이, 몸짓이,
그리고 온통 우주를 품을 수 있는 내 영혼이 중요할 터이다.
 
신을 눈으로 확인해야 대화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신과 대화할 수 없다.
그대는 고작 그대 스스로의 모습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대의 영혼은 신과 대화할 만큼 성숙했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만에 하나 신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바로 그대를 만나기 위해서일 것이다.-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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