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타인에게 묻곤 한다.
“힘들지 않아?” 혹은 “하는 일은 어때요?”
그럴 때 대개의 사람들은 얼른 가부간의 대답을 하기 마련.
그러나 진실로 말하자면 그것은 타인의 근황이나 심경을 묻는 말이 아니다.
그저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한마디일 뿐!
사실은 내가 좀 힘들다고 털어놓고 싶은 것이다.
사는 거 재미있나요? 하고 묻는 것은
‘나는 사는 게 재미없다.’는 뜻.
동조를 구하는 듯한 그 흐릿한 눈빛.
그저 하루하루를 습관처럼 살아가지만 도무지 왜 사는지 낙이 없다.
그 눈에서 생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그들은 이미 죽어 있다.
당연히 그것은 딱히 삶의 목적이 없기 때문!
왜 사는지,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라면 그저 맹목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
울고 싶은 이 앞에서 함께 엄살을 부려준다면
그들은 안심을 하고 제 이야기를 이어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그저
영혼이 가난한 자들의 수다에 불과한 것!
대안 없고 논리 없는 넋두리들, 하소연들.
그들은 마치 꿈을 꾸듯 삶 속을 내달린다.
몽롱한 정신으로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해가며
뻔한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왜 살아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건강하고 오래살기만을 바라는 순진한 이들!
그런 뻔한 인간이 주인공이라면
누가 그 영화를 돈을 주고 보겠는가?
날마다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지겹도록 마주치는 것을.
TV만 틀면 그런 주인공들은 흔하게 쏟아져 나오는 것을.
굳이 돈을 주고 컴컴한 영화관에 한 시간 반이나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
돈이 없어도 가난하진 말아야 한다.
목표를 가지는 것, 그리고 꿈을 키우는 것.
그것만이 이 황량한 삶 가운데 가히 집착할 만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귀족적인 사치이다.
넉넉하고 풍요로워 매순간이 안락하다 할지라도 꿈이 없다면 그는 누구보다 가난한 자!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사랑을 얻든, 자유를 누리든
당신은 그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것!
꿈은 당신을 살아있게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꿈은 장대할지언정
그 걸음은 한 걸음씩이어야 한다는 것!
하루씩만 살기!
오늘 하루치의 계획을 세우고 지금 이순간의 목표에 도달하기!
그리하여 매순간 죽고 다시 태어나기!
해가 뜨고 지는 것에도 다 의미가 있다.
우리가 날마다 다시 태어나 새 하루를 시작하지 못할 거라면
그것을 위한 신의 부단한 노력은 그만 허사가 되고 만다.
태양과 달과 지구의 끊임없는 랑데부는 그저 허무한 쇼가 되고 만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미래를 말할 자격이란 없는 법!
오늘 하루만을 사는 것.
그것은 매순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실패도, 절망도 없다는 뜻!
생이라는 짧고도 긴 꿈, 자기 자신에게도 이벤트가 필요하다.
꿈은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바로 생명 그 자체이다.
내실을 다져야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축척한 뒤라야-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천만에!
꿈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키우는 것이다.
간직된 꿈은, 고인 물이 그러하듯 이내 썩어 없어지고 만다.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곰팡이가 슬고 벌레가 끓고 결국은 스러지고 만 자신의 꿈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무참히 살해된 꿈!
그것이 진정한 허무다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다.
날마다 꿈꿀 것!
통풍시키고 물을 주고 빛을 비추어 무럭무럭 자라게 할 것.
당신 꿈이 부패해 사라지기 전에.
이왕이면 가장 크게 꿈 꿀 것.
생존 따위로 쪼그라들지 말고 당신 자신을 장대하게 키울 것!
평화는 거짓이다.
욕망의 거세는 죽음이다.
지구도, 우주도, 그리고 신도 살아 숨 쉰다.
멈추지 말라! 그것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꿈꾸어라! 그것이 진정한 ‘삶’이다.
나의 히로인은 낮에도 눈을 뜨고 꿈을 꾼다.
그는 미래가 있는 인간,
현재를 삶으로써 미래를 달리는 인간이다.
꿈밖에 가진 것 없는 그의 오늘치 꿈은
그의 꿈 다이어리 356쪽에 기록되어 있다.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