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妙)어록2- 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하기 1

신비(妙)어록2- 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하기 1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10. 2. 23. 13:31

 

 

 

 

"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어라.

애초에 너도 내 안에 살고 있었다고 말해주지 않겠니?

아니라면 나의 세계는 너의 숨결로 만들어졌노라고,

혹은 너의 세계는 나의 꿈으로 이루어졌노라고 말해주렴!

 

너도 나처럼 시간을 거스르고 공간을 뛰어넘어 달려왔노라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대기가 되고 바람이 되어 기다려 왔노라고!

이미 오래전 너는 나의 초대에 응했었노라고!

애초에 우리의 만남으로 이 우주가 탄생했노라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테지!

너는 나를 감싸고 있는 대기이며 나는 너의 코끝을 스치는 산들바람.

내가 숨 쉬는 대기는 언제나 달콤하고

너는 코끝에 스치는 산들바람에도 감동하지.

 

너는 나를 뺀 모든 것이며 나를 포함한 모든 것!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대기 안에서 나는 언제나 자유롭고

나는 너와 함께 있지 않을 때 오히려 함께임을 느끼지.

너는 나의 사랑이자 삶, 그 자체!

 

이대로 내가 죽어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도,

너와 내가 이 우주에 존재했었다는 사실 하나로

이 우주는 그 존재 의미를 다했으며,

나 또한 내 생의 의미를 다했노라고!"

 

 

 

 

그러므로 ‘사랑’은 헤어져도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을 어찌 이별이라 부르겠는가?

사랑이란 각자 다른 장소에 가서 서로를 찾아 헤매다 지칠 일이 없는 것!

 

‘사랑’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가슴 가득 ‘사랑’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내 명의로 따로 등록하지 않아도 영원히 나의 소유인 것!

그럴 수도 없지만, 누군가 빼앗아 간다고 해도 나의 몫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는 공히 이 우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이 세계를 사랑할 힘을 주는 것과 같다.

사랑이 없다면 신에게로 가는 통로 역시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 그것에 주저앉아서는 결코 신을 만날 수 없다.

 

기실 우리는 사랑만 만났다 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기를 시도하지 않는가?

아니, 애초에 안주하려는 목적으로 사랑을 욕망하지 않는가?

슬퍼한다. 그런 것들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음을.

그러므로 내 삶 전체에 걸친 테마는 단연코 긴장!

 

사랑은 마주보는 것인가,

혹은 함께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인가? 라는 논의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에로스와 아가페, 어느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라는 물음과도 같은 것.

 

나의 전부로 너의 전부를 만나기!

그러나 결코 상대의 전부를 탐해서는 안 된다.

깨달음이 그렇듯 사랑은 생명 그 자체!

욕심을 내는 순간 사랑은 죽어버리고 마는 것을.

 

사랑의 세계에도 역시 ‘찰나’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매 순간 살아 숨 쉬지 않으면 안 되는 그것.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꿈이다!

‘아차’ 안주하는 순간 꿈은 파도처럼 부서져 버린다.

 

끊임없이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 순간 반짝반짝 살아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하는 그것.

그것이 사랑이다!

 

또한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과 같다.

보통 그것의 유효기간이 짧은 것은

각자의 세계가 협소하기 때문!

 

아기를 낳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데

어떻게 지속적으로 ‘살아 있음’을 유지할 것인가?

문제는 자기다움!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가 있어야 하는 것.

 

사랑은 마주보는 것과 동시에 함께 한곳을 바라보는 것!

자기 고유의 세계가 없다면 마주 보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꿈과 이상이 없다면 함께 바라볼 곳이 없다.

하물며 서로를 탐하기만 한다면 서로를 소진할 뿐이다.

 

자기 세계가 확고한 이는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연극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가는 것!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 나중에 누가 물을 일도 없고

“나다운 게 뭔데?” 발뺌하며 변명할 일도 없다.

 

나의 주인공은 꽃으로 치자면 화려한 장미도, 저 들판의 청초한 야생화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인적 없는 사막에 홀로 피어

뜨거운 태양과 거친 모래바람을 견뎌 낸

사막 선인장의 꽃쯤이 아닐까?

 

스무 살 시절

내가 얼마나 예뻤었는지를 기억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부디 거기에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화려했던 시절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얼마나 찬란한지

그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슴 떨리는 일!

 

우주 구석구석을 함께 날아다니는 낭만적 모험을 하라!

아슬아슬하지만 짜릿하고, 날마다 스러지지만 다시 더 크게 날아오를 수 있다.

사랑은 찰나의 축제, 혹은 불꽃놀이!

매 순간 살아 있으려면 매 순간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날마다 벼랑 끝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

어떤 사람들은 으레 내가 상처 받지 않을 거라고 여기지만.

내가 상처를 받지 않을 거라고?

아니다. 난 그 분야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만 다른 이와 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이 외부로 표시가 나지 않고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나는 날마다 스러진다!

그리고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

 

그저 내 심연의 혓바닥으로 그 화인과도 같은 상처를 부지런히 핥아댈 수 있을 뿐이다.

찢어지고 벌어진 살덩이를 부여잡고 밤을 새워 통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눈물도 흐르지 않는데 날마다 운다.

해가 지면 나도 지고 해가 뜨면 그제야 나도 뜬다.

Posted by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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