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주인공의 친구, 혹은 주인공의 동생처럼 살고 있다
주인공의 친구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원래 자신의 삶이 없다.
자신의 룰이 없으므로 자연스레 세상의 룰에 입각하며
주인공에 맞서거나 추종하거나하여 그저 보조할 뿐이다.
요즘들은 매력적인 조연도 있다지만 조연은 조연일 뿐,
애초에 조연은 주인공이란 존재에 기대므로 포지션이 없다.
혹은 낮은 포지션을 가진다.
그들이 사는 세계는 스킨십의 세계,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 세계이다.
눈에 보이면 그것이 곧 존재인 세계.
온갖 말로 떠들어대지만 결국엔
서로의 말을 허공중에 날려버리는 곳.
자신의 룰을 가지지 못하여 소통에 이르지 못하고
서로를 찾아 헤매지만 늘 그저 지나쳐 버리는 곳.
사랑타령을 하지만 정작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며,
어른이 되면 시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이른바 반쪽어른들의 세계.
연인과 헤어진 다음에야 글이 좋아진다는 속설이
그 세계 작가들에게는 있다.
행복하면 글이 안 써진다는 이상한 예술가들의 세계.
스스로를 비련의 주인공으로 밀어 넣고서야
비로소 잠시잠깐 주인공에 빙의되는 이들.
그렇게 쓴 애절한 사랑(?)의 말들은
역시 조연이거나 단역인 대중의 공감을 얻어내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반면 아직은 신비의 땅, 깨달음의 세계는 다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으며,
언제든 시공을 초월하여 서로 교감할 수 있다.
물론 죽어도 죽지 않는다.
그들은 신(神)의 완전성으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태초에 그들은 서로를 초대하여 축제를 벌였다.
그들이 서로 친구가 된 것은 다 그 기억 때문이다.
나도 약속을 잊지 않고 매 순간 그 자리에 나가고 있다.
마치 인간들이 잠든 밤,
조용히 빗자루를 타고 나가 집회에 참석하는 마녀처럼!
인간지망생들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사랑타령이나 하는 자들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그런 세계가 있다.
신에 대한 사랑은 유효기간이 없다.
그들의 축제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곳의 지성인과 예술가들은
그리지 못해 붓을 꺾거나 쓰지 못해 절필할 일이 없다.
설산의 얼음구덩이에 빠진다 해도 얼음벽에 시를 새길 사람들.
두 평도 안 되는 독방감옥이라 한들 훨훨 날아오르지 못할까!
애초에 그런 운명으로 그 세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곳은 순간만이 존재하는 곳.
그리하여 영원이 춤추고 노래하는 곳이다.
그렇게 매 순간 죽고 태어나,
자신에게 늘 새로운 순간을 선사하는 곳.
먼 풍경을 바라보듯 거룩한 눈빛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곳이다.
혼자 있을 때면 온전히 신과 대화하고,
함께 있을 때면 축제를 벌인다.
신의 모든 순간을 공유하므로
그들에겐 매 순간이 소통이며 사랑이다.
사랑은 그들이 함께 온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
걷기보다야 아슬아슬하겠지만 걷는 이는 모르는 짜릿함이 있다.
그렇다. 깨달음은 바로 ‘사랑’의 깨달음이다.
<너와 내가 사실은 하나>라는 숭고한 진리를
절절히 체감하는 것.
말 뿐 아니라 실제로 제 가슴 활짝 열어
온 우주를 끌어안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하면 아니나 다를까,
가슴은 뜨거워지고 온몸엔 열이 끓는다.
태양을 삼킨 듯 황홀한 느낌!
그렇다. 나는 그때 실제로 내가 이 우주를 삼켰음을 알았다.
부디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이란 스킨십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세계의 그것은 단지 어떤 행위를 말할 뿐이다.
기대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감동하는 일련의 스킨십.
그것은 주인공이 되지 못한 자들의 응석일 뿐
사랑이 아니다.
단언컨대 사랑은 그저 존재한다.
신이 그러하듯 사랑은 영원불변한 것.
신에 도발하고 신과 대화하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채 몇 명 안 되는 자들만이 가진
강렬하고도 거룩한 지성의 빛, 그것이 사랑이다.
오늘날 세계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스킨십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이야기.
지성은 지식인이 가진 것도,
무슨 박사 나부랭이들이 가진 것도 아니다.
마치 신처럼 사랑으로 충만한,
그들 자체가 바로 지성이다.
확실히 그들은 저 세계에 사는 사람과는 다르다.
그들은 단연코 삶에 바싹 달라붙어 있지 않는다.
수천 번을 만나도 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새롭다.
또한 그러므로 내일 다시 만날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득하다.
권태란 안주하는 자들이 매 순간 들이키는 독약!
설레는 가슴으로는 권태로울 수 없고,
세상 끝에서는 안주할 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 매 순간은 빛이자 꿈이자 설렘이다.
그들은 그렇게 꿈꾸는 눈빛을 가졌다.
또한 말로 못할 그 어떤 느낌을 가졌다.
손을 뻗으면 꼭 그 몸을 통과할 것 같고
눈을 감으면 사라질 것만 같은,
스치기라도 하면 온몸에 그 향내와 빛깔이 스며들 것 같은,
그 푸른 빛, 노란 빛, 연두 빛, 보라 빛들이
내 몸 구석구석 물들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멀리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마침내 이 지구가 풀썩 꺼져버릴 것만 같은!
오로지 한 순간에 제 모든 것을 쏟아 부으니 그런 것이다.
그 어떤 미련도 가지지 않고 늘 빈손이니 그런 것이다.
아무런 기억도 없이 그저 투명하니 그런 것이다.
사랑은 -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신처럼 거룩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오로지 그 사랑으로서만 소통할 수 있을 뿐이다.
2008
-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