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자들은 유난히 명품 백을 신봉하면서도
때로는 요상한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
내용물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넓은 간격 엉성한 디자인에
천 원이면 살 수 있을 듯한 허술한 재질의 그것에는
방금 무엇을 했는지 사생활 보고라는 하듯 물기가 뚝뚝 떨어진다.
바로 대중목욕탕 오갈 때의 일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것은 여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금발의 외국인들도, 헬스클럽의 남성들도
마치 ‘한국 땅에선 이렇게 해야 는 거야!’ 라고 말하듯
그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것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찌하여 그런 획일적인 제 모습에 관대한 것일까?
전염이라도 된 듯 모두들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는 것.
무의식중에 본능적으로 다른 이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
그것은 생각이란 것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며
이 세상의 모든 편견과 선입견, 그리고 기존의 룰과 규칙을
아무 저항 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아줌마 파마를 한 아줌마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
사실 남자들도 문제가 많다.
그들은 여자의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여
여자만 보면 -동네 아줌마 취급으로- 부엌으로 보내려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래서 남의 집을 방문해서도
주방을 전전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세상 99.9퍼센트의 인간들이 여성에게 여성의 역할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가정교육 제대로 받지 못한 여자, 참하지 않은 여자,
아니면 매력 없는 여자, 여자답지 않은 여자로 낙인찍히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여자들이 평소 집에선 하지 않던 일을 해내곤
최고의 여성, 혹은 최고의 신붓감 소리를 금메달 따듯 따낸다.
‘제 자신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닌
‘세상이 원하는 여성으로 살아가기’ 라는 가짜 미션을
그럭저럭 잘도 수행해내는 것이다.
애초의 미션은 이미 온데간데없다.
그것은 바로 ‘자신 그 자체로 살아가기!’
생각이 있는 여자라면 그러므로 남의 집 방문은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세상에는 다 큰 성인 남자도 먹는 것, 입는 것, 심지어 씻는 것까지도
여자가 일일이 챙겨줘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래서 남자가 지저분하면 여자가 욕을 먹는 웃긴 일이 벌어지기도 하니까.
자기 삶은 스스로 선택하고 주관해야 하는 것!
그것은 그리 거창하거나 복잡한 일만은 아니다.
물론 자유자재로 스스로를 통제하고 매순간 정신을 차려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독립이 먼저다.
남들이 다 그래야 한다니까 두말 없이 거기에 순응하는 것은
제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남들의 생이지 결코 내 생(生)이 아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
그들의 바운더리는 뻔하다.
남들이 저렇게 하고 다니니까 나도 하고
남들이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살고
남들이 이런 걸 싫어하니까 이런 짓은 안 해야 하는 거다.
대다수의 인간들은 연륜이 늘어갈수록 지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릴없이 눈치만 늘어간다.
당연히 여성들 뿐 아니라 남성들도 남성의 역할에 매몰되어 있다.
제 손으로 먹는 것, 입는 것, 씻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남자들이
‘여권신장하려면 여자의 경제적 독립이 먼저’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으로 이미 독립한 남자들은 왜 아직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가?
할머니들은 남편이 먼저 죽으면 오히려 아흔 살 넘기며 오래 사는데
할아버지들은 어찌하여 아내가 죽으면 그렇게도 일찍 무너져버리는가?
늙어 죽을 때까지 챙겨주고 보살펴줘야 하는 건 오히려 남자다.
은퇴한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몇 년 안에 바보가 돼버린다.
직장을 잃은 남자는 사람이 달라지거나 아예 노숙자가 된다.
그러니 남자건, 여자건 제 성별에 얽매여서는 안 되는 것!
굳이 제 성별을 의식할 필요도,
말끝마다 여자, 남자를 달고 다닐 필요도 없다.
그 누구도 여자의 대표, 남자의 대표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경제적 독립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독립이 먼저다.
사회의 개혁이전에 제 자신의 개혁이 먼저이며
남 탓하기 이전에 자신의 정체성 확립이 먼저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의 히로인은 당신이 생각하는 ‘여자’가 아니다.
물론 여자의 대표도 아니다.
그는 단지 ‘인간’의 대표일 뿐!
세상에 참 여자라는 것은 없지만 참 인간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