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妙)어록3-신과 대화하라!2

신비(妙)어록3-신과 대화하라!2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2 2012. 1. 31. 16:23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었을 때 엄청난 물건이 나오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을 때
바로 거기에서 커다란 에너지가 발생하는 법이다.
모든 위대한 것들은 전복을 그 태생으로 하고 있다.
누누히 말했지만 '나는 가수다'가 영감을 주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며,
'무한도전(2005.4.23~)'이 신대륙으로서 어마어마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까닭 또한 그러하다.
사람들은 세종대왕이 뛰어난 언어학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지금 현재 바로 가까이에서 우리와 함께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가수다'와 '무한도전(2005.4.23~) 같은 예능프로는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이삼십 년만 지나도 지금과는 분명 다른 소리를 할 것이지만
지금은 저들을 무시하는 것을 은근 자랑삼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늘 그래왔다.
씨앗시절에는 그 흐드러진 꽃과 열매를 결코 알아보지 못한다.


당연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세종대왕은 단순하게 한글을 창제한 왕이 아니라,
스스로를 뛰어넘는 높은 시야를 얻고 존재 자체를 꿰뚫어
세상을 전복한 위대한 사상가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무한도전(2005.4.23~) 도 단순한 예능프로가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는 높은 시선을 가지고 마침내 우주를 꿰뚫어
세상을 전복할 위대한 꿈을 가진 유기적인 생명체임을 알아채야 한다.
지금은 나태한 태도로 그저 그런 복제품만을 생산해내고 있는 듯한 '나는 가수다' 역시
태생 자체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태어난 영감의 산물로서

좀 안다 하는 사람-지성인-에겐 여전히 무한한 영감을 주고 있는 깨달음의 보고이다.


그 모든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다.

마냥 재미있거나 우스워보이는 무한도전(2005.4.23~) 속 세상도
천재나 지성인에겐 더할 나위 없는 영감의 유토피아이며,
애초 태생적 매혹을 잃어버린지 오래인 나는 가수다 역시
재발견된 가수 박완규 하나만으로도 존재 자체의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미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는 방송계의 스티브 잡스,
천재 태호PD와 그 일당들의 무한도전(2005.4.23~) 은 잠시 스킵하기로 하고
지금 천덕꾸리기로 전락하다시피한 나가수를 예로 들자면
박완규라는 예술가의 발견을 최근 가장 큰 수확으로 들 수 있겠다.
다른 가수가 '나'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면
박완규는 '나'가 아닌 예술 그 자체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
그는 말하자면 임재범과 이소라로 대변되는 나가수 예술가의 계보를 잇고 있는 셈이다.


그는 예술가이다.

집착 따위 하지 않는 거침없는 애티튜드,
삶과 세상과 스스로의 눈치를 보지 않는,
즉 겸손을 가장하지 않는 쿨하디 쿨한 자세.
그리고 스스로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목소리와 눈빛.
무엇보다 삶을 대하는 그의 진지한 포즈!
가수가 무대를 대하는 태도는 신 앞에 홀로 선 인간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
그는 제 삶을 온통 그 눈빛 하나에 담아
관객으로 하여금
깊이를 알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게도 하고
세상 끝에 홀로 선 고독을 맛보게도 한다.
그리하여 생 그 자체로서의 기쁨 또한 느끼게 한다.


예술은 삶이다.

예술은 꿈이다.
예술은 그 어떤 훌륭한 작품이 아니라 오로지 삶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
기꺼이 세상을 바꿔버리겠다는 눈부신 배반이다.
전복을 꿈꾸지 않는 자, 그러므로 예술가라 할 수 없다.
제 안위나 체면, 위상 따위에 놀아나는 자,
100년도 갈 수 없는 허상을 쫒는 자이다.
'나'를 쫒지 말고 허상을 쫒지 말고 눈 앞의 안락을 쫒지 말라!
적어도 후대에 작은 이야기 하나라도 전하고 싶다면!
당장의 안위가 아니라 백년지계를 꿈꾼다면!


별 연관 없어보이겠지만 천만에,
연기 못하는 연기자의 문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로 삶에 대한 진지하지 못한 태도가 문제.
삶의 대해 진지하지 않으므로 나와 너의 구분이 있고
그리하여 나 아닌 너에 대한 몰입과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너'와 '나'는 같다.
'너'는 곧 '나'의 또 다른 버젼이고 '나'또한 곧 '너'의 일부분인 것!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나는 나고 너는 너다.
너의 삶은 나의 삶이 될 수 없고, 나의 삶은 너와는 전혀 별개의 것.
그러므로 눈빛이 깊어지지 못하고 영혼이 통째로 일렁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 얄팍한 눈빛은 영혼이 없는 자에게는 꽤나 어울리는 옷!
영혼이 없는 자에게 타인의 삶은 그저 남의 일일 뿐이다.
결코 자신의 삶을 타인의 생을 지켜보듯 들여다 볼수 없고
타인의 생을 자신의 삶이듯 아파할 수 없다.


물론 뛰어난 감독을 만나면 반짝 연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머리가 나쁘면 그런 행운조차도 거머쥐기 힘들다.
전적으로 감독의 역량에 의존하는 연기자는
영혼이 없는 마네킨에 불과한 것!
팀웍을 기본으로 하는 축구나 야구 선수와는 달리
연기자는 스스로의 역량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연기자는 맨유나 바르샤, 기아나 롯데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메시가 되어야 하는 것.
주인공 하나하나가 이대호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돌려 말할 필요도 없다.

연기자가 연기를 못하는 이유는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주인공에 동화되지 못하니 눈동자가 허공을 떠돌고
눈동자가 허공을 맴도니 눈빛이 얕을 수 밖에 없고
눈빛이 얄팍하니 맹한 표정밖에 나올 것이 없다.
주인공의 생을 내 삶이듯 아파할 수 없으니 발연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연기자는 주인공을 맡았으되 결국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오로지 '나'만을 내세우다 끝내 삶의 주인공도 되지 못하는 법!
누구나 신(神)의 롤을 맡아야 하는 삶의 무대에서
끝내 '나'만을 연기하다 쓸쓸히 무대에서 사라지는
발연기 인간군상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물론 한글과 예능프로, 혹은 드라마나 영화를 단순비교할 수는 없지만

음악, 예능, 영화, 언어 등 문화와 예술의 차원에서 보면,
또한 권위의식을 빼고 보면 그리 다를 것도 없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인간의 근원에 바로 가 닿음으로써 비로소 시작되는 것!
전복을 꿈꾸는 자, 모두 신의 동지이며
삶을 이야기하는 자, 모두 신의 사자이다.
가수가 무대를 그리워하듯 인간이 신을 그리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을 디자인하는 예술가의 기본 자세.
'나' 안에 갇혀있는 가련한 수인이 되지 말고
보다 장대한 그림을 그리는 삶의 예술가가 되라.

나'를 이야기하며 나의 입장에 서지 말고
삶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입장에 서라.

그리하여 신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라!
그곳이 바로 진정한 인간, 참다운 예술가가 있어야 할 자리이다.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하단 사이드바 열기

BLOG main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