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려면 유혹하지 않아야 한다.
상대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기 위해 자신을 해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유혹이란 자신을 빛나게 하는 것이지,
결코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다.
대개 사람들에게 있어 유혹이란
스스로의 바닥을 드러내보이는 행태를 말한다.
손예진의 영화 <작업의 정석>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그 영화의 부제는 맹랑하게도 전국민의 연애지침서,
혹은 선수들의 연애지침서이다.
고수들의 진검승부!
그들의 유혹은 피가 튀고 살점이 난무한다.
그러나 밑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이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뻔한 것이다.
그들은 끌어당기기 위해 오히려 밀어내는 방법을 쓴다.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혹은 상대를 달아오르게 하기 위해
짐짓 상대를 밀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가 토라지는 방법으로 엄마의 주의를 끄는 것과 같다.
많은 여자들이 써 먹는 방법이다.
또한 남자들이 쓰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혹이 될 수 없다.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스스로를 해치고 상대를 해칠 뿐이다.
긍정적인 반응이 실제의 긍정,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그저 피곤하고 성가시기 때문에 그 상황을 종료하는 것을
긍정적인 반응이나 사랑이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유혹은 '유혹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네 안에 '풍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광대해야 된다.
'사랑'이 그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자유'가 그 안에서 마음껏 춤출 수 있도록!
인간은 누구나 광대한 곳에서 거침없이 뛰어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언제라도 자유를 선택한다.
유혹하려면 세상 가장 광대한 우주가 되어,
사랑과 자유가 그 안에서 마음껏 춤출 수 있게 해야 한다.
더 이상 유혹이 '유혹하는 것'이 아니게 해야 한다.
한 발짝 앞서 나가 스스로 빛나는 것만이 유혹 그 자체가 될 수 있을 뿐이다.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