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는 신(神)을 이야기하지만, 신은 일절 안중에도 없는 당신.
물론 당연히 신은 없다. 당신에게는!
이로써 모든 이야기는 끝이다.
우리 사이엔 더 이상의 대화는 불능이다.
그럼에도 약간의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면
당신만 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신도 당신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일개 개미에 관심이 없는 것이나 같다.
그 누구도 길을 걸으면서 개미 한 마리에게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건네지는 않는다.
물론 눈 마주칠 일도 없다.
신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인간 하나 하나에 관심이 없다.
신이 인간들의 참상에 관심없다고 징징거리는 족속들은
그러므로 일찌감치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이나 테러, 살인은 인간들의 놀이이지 신과는 하등 관계없는 것이다.
인간 역시 개미네 마을에 관심 없는 것.
두리번 두리번 누군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경계하는 포즈!
그저 동물처럼 본능에 끌려 다니는 저속함!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협소함, 그리고 제 입장밖에 모르는 무지함!
짐승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그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 중 다른 인간도 있으니 바로 인간 주제에 신에 도발하는 자!
주제도 모르고 감히 신과 대등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자이다.
언제나 당당하게 신의 머리 꼭대기 위를 넘보는 인간!
엄밀히 말하면 신의 목적은 바로 그런 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신에게 도발함으로써 신을 더욱 거룩하게 하는 인간.
신과 대화함으로써 신을 더욱 성스럽게 하는 인간.
신을 신격화하여 더욱 빛나게 하는 인간.
신을 신다운 신으로 거듭나게 하는 인간!
그런 인간 하나가 전체 인류의 수준을 높이고, 인간 자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신은 그저 그 인간 대표자와 대화할 뿐이다.
감히 신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는 그 겸손하고 심약한 이들과
무슨 거사를 도모하고 후일을 기약하겠는가?
신 앞에 머리 조아리는 비굴한 자들과 무슨 대화가 되겠는가?
신 앞에 기죽고 주눅들은 인간과 무슨 수로 눈을 맞추겠는가?
짐승들 중에도 그런 자는 부지기수다.
그러니 부디 인간들이여!
신과 대화할 깜냥이 안되거든
신 앞에 홀로 선 인간, 인간의 대표, 인간들 중의 신을 알아볼 안목이라도 길러야 한다
허구한 날 사랑타령, 결혼타령 통속극이나 찍어대지 말고
광대한 대국을 일으키는 대서사시 안에 서 있길 바란다.
그것이 결국 인간이 신화가 되는 길,
애초 신의 계획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간,
그 비참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누누히 말하건대,
인간 주제이기에 감히 신화를 꿈꾸어 볼 일이다.
나아가라!
신도 제 자리에 안주하지는 않는다.
인간주제에 안일하게 머물러 있는 자,
아예 상승할 의지도 없는 자,
그저 가만히 앉아 짐승의 삶을 사는 자들은
당장 눈앞에서 신을 만나도 알아보지 못한다.
신의 슬픔이란 바로 그런 것!
신은 투명망토가 없어도 늘 투명 그 자체라는 사실!
오직 오만방자하여 신과 눈높이를 나란히 하는
그 인간의 대표만을 만날 수밖에!"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