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에서 태어나 곧 나락의 한 가운데로 갔지.
내 청춘의 정점에서 열반을 맛봤고,
그 구경究竟의 끝에서 아스라한 빛으로 화했어.
내 청춘과 나락은 동의어!
아낌없이, 주저 없이 내 모든 것을 불태웠으니
세상엔 그다지 미련도 없어.
이제 그만 신의 품으로 날아갈 수도 있어.
어차피 세상에선 나보다 큰 것이 없어
아무 것도 나를 품어 줄 수 없으니
세상은 그저 내게 커다랗고 텅텅 빈 집!
너희들의 세계는 나의 세계를 품기엔 턱없이 작지.
꿈속에나 나올법한 달동네 화장실보다 작아.
너희들은 곧잘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안에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릿한 기분은 없어.
원래 그런 기분은 자신보다 큰 존재가
자신을 온전히 감싸 안을 때에나 가능한 것.
완전하게 사랑받고 완전하게 이해받을 때에 느낄 수 있는 것.
그것은 신이 아니면 불가능해.
그게 바로 내가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이유!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것을 기대하지.
그래서 어리광도, 투정도 부리는 것.
때론 사랑에 빠져 한 순간 그런 기분을 만끽하겠지만
말하건대 진짜 어른이 되면 더 이상은 불가능해.
사람들은 어쩌면 그래서 어른이 되길 거부하는지도 몰라.
어린 시절 엄마처럼 무조건 저를 받아주는
그런 존재를 꿈꾸는지도 몰라.
하지만 내게 그런 순간은 이제 없어.
너무나 짧았던 그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정말 개미처럼 작아져버렸거든.
마치 세상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 눈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아.
세상은 텅텅 비어있어.
그것은 바로 내가 무인도에 살기 때문이지.
우리는 모두 투명한 존재!
너희들도 내게서 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나도 너희들에게서 인간을 발견하지 못해.
너희들이 품을 수 있는 건 기껏 달걀 하나 정도.
물론 그것도 금방 싫증을 내며 깨버리고 말겠지.
어미 오리나 닭보다도 못한 그 사랑, 사랑, 사랑 타령들.
너희들의 사랑은 다 가짜, 관심도 가짜, 격려도 가짜, 위로도 가짜야!
애초 세상에선 나의 존재란 그다지 의미 없었고
이제는 아예 투명하디투명하게 존재하여
다만 신만이 매순간 그 존재를 확인해주고 있을 뿐!
인간과의 만남은 그저 길고양이와의 만남처럼 허무하여
내가 할 일이라곤 먹이를 챙겨주는 일 외엔 없지.
사람들은 그저 먹이를 주고 머리를 쓰다듬는 일에 만족하지만
그것은 그저 그런 일상.
나는 일상을 원하진 않아, 성사를 원하지!
나는 보다 완전한 것을 원해!
마치 신과 나의 관계처럼 매순간 완전한 바로 그런 것!
매혹적이리만큼 쿨한 바로 그런 것!
만약 내게 약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내 마음의 청춘이 다 가기 전에
내게도 세상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한 번 이 세상을 다 삼켜버리겠어.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을 때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지구에 머물지 않고 온 우주를 다 삼켜버린 그때처럼.
인간들에게 필요한 건 바로 종교!
고양이 한 마리가 도도한 너희를 집사로 만들어 버린 것처럼
나도 너희들이 매혹적인 내 발톱에 키스하도록 하겠어.
그리하여 영원히 내 영혼의 감옥에서 아우성치도록 만들겠어.
거대한 파도처럼 세상을 휩쓸어 신비(妙)의 방주에 모조리 태워버리겠어.
내가 가진 건 오로지 신의 눈빛!
마치 햇살처럼 온전히 너희들을 감싸주겠어.
내가 간절히 바란 그것을 바로 너희들에게 주겠어.
아무도 봐주지 않는 너의 일생을 바라보겠어."
-신비(妙)
2011년 12월 31일 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