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도 흰동가리처럼
성별이 어느 정도 유동적이다.
실제로 세상엔 많은 성소수자가 있을 뿐 아니라
한 인간의 삶에도
성별이 무의미한 시기가 있다.
아기 때에는 성별을 의식하지 않는다.
노인이 되어도 역시
역할의 감옥에서 빠져 나온다.
인간도 기실 아이를 낳을 때에만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그런 것은 자연스럽게 된다.
성별은 감옥이다.
스스로 지은 한계다.
어리광의 산물이다.
세상이라는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노예의 관점이다.
여성이나 남성이 아니라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것이 진짜다.
여성이면서 남성인 것이
남성이면서 여성인 것이 진짜다.
여성이 남성 쪽으로 한 걸음 더 건너가고
남성이 여성 쪽으로 한층 더 기울었을 때
그때부터 진짜가 시작된다.
인생은 모호한 것.
스스로도 잘 몰라 방황하는 것이 인간이다.
남자다, 여자다 딱딱 구별 지을 수 없다.
몸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인간에게는 정신이 있다.
단지 사회가 제시한 여성성에 부합할 게 아니라
삶의 깊숙한 곳까지 잠수해 들어가 보아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남성성을 부르짖을 게 아니라
생의 밑바닥을 여유롭게 유영해보아야 한다.
비로소 인간을 이해할 때까지.
비로소 상대의 성을 알아버릴 때까지.
그래야 진짜를 목도할 수 있다.
천진난만,
무한한 가능성만이 살아 숨 쉬는 어린 시절과
활활 불타오르던 미숙한 그때를 지나
성별의 감옥에서 나와 인생을 정리해야 할 때,
그때가 진짜다.
역할에 매몰되어
여성성을 강조하고
남성성을 뽐내던 어리석음,
그 초짜 시절을 벗어날 때가 진짜다.
진짜 인생이다.
차라리 빨리 늙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이 뜨거움이 식을까?
내 청춘은 너무 씩씩한 것이 문제,
우주를 다 삼켜버릴 듯 피가 끓는 게 문제,
생이 온통 활활 타오르는 게 문제,
그러나 여자나 남자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
매순간이 고흐고
매순간이 소로다.
이러다가 재 한 줌도 남지 않겠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다.
거침없이 산다면
마침내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다.
2014/02/03 11:25
-신비(妙)/거침없이 왔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