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70억대 1이다.
양적으로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이미 게임 끝이다.
너의 인정 따윈 필요 없다.
신(神)이 이미 인정했으니까.
나 이미 홀로 우뚝 하니까.
아니라면 지금 이깟 글 나부랭이 쓰고 있지 않겠지!
경멸한다고 대놓고 말하는데도 못 알아먹는 자들을
어떻게 경멸하지 않을 수 있지?
내가 독자 구걸을 하지 않는 이유도 정확히 저와 같다.
어차피 독자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 아연실색, 출판 계획을 엎는다고 해도 할 수 없다.
결코 아무에게나 내 광대한 세계를 열어줄 수는 없으니까.
자격 없는 이들에게 인류역사상 최고의 정신을 소개할 마음은 없으니까.
인간수준의 맥시멈을 보여줘도 어차피 그들은 모를 테니까.
눈 뜬 장님, 청맹과니, 멍청하게 눈만 껌벅일 테니까.
대중과의 교감? 글쎄.
바보들과의 연극이겠지. 아니면 생계를 이을 사기이거나.
허나 미안하지만 내게 책을 내는 일이란 생계와는 하등 관계없는 일이다.
죽으면 그만이지 겨우 밥 먹자고 영혼을 팔아?
옛날이나 지금이나 내가 책을 내려고 하는 것은 오로지 인류를 어여삐 여겨서다.
죽어 나자빠진 이들을 흔들어 깨워야만 내가 숨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걸어 다니는 송장들 사이에서 나 홀로 질식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이 저 죽은 줄도 모르고 넋 놓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도리어 나를 위로하는 세상이 기가 차기 때문이다.
답답하고 한심해서 내가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긴 그들도 딱히 내게 뭘 바란 적이 없다.
내게 세상을 구원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당신의 광대한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한 적이 없다.
죽은 자가 무얼 바랄 수 있겠나?
지금처럼 그저 배부른 돼지로 사는 거지.
나 또한 아쉬울 게 없다.
어차피 송장들인데 송장이 대화가 돼, 뭐가 돼?
읽어달라고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애초 일어나지 않을 사건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아무도 바라지 않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는 꿈을
나 혼자 이루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70억대 1이니 기가 막히긴 한다.
그러나 외롭지는 않다.
오히려 신 앞에 떳떳하다.
매순간이 뿌듯하고 가슴 속이 꽉 차오른다.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해내고 있는 단 한 사람,
인류가 걸어가야 할 길을 먼저 닦는 기분,
신과 함께 이 우주를 디자인하는 마음,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마침내 거룩해져버린 삶,
막연하게 바랐지만 실제로 이루어질지는 몰랐던 저 광대한 세계,
그걸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 벅차오르는 가슴을 알 수나 있을까?
아무도 모르는 세계가 있다.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지만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질 않는다.
긴 세월 글을 써 오지만 사람들은 눈을 감고 있다.
귀도 닫고, 창도 닫고, 울타리조차 켜켜이 치고 있다.
나와 다른 70억과 살아가고 있는 기분.
그 기분이 나를 취하게 한다.
그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가 나를 미치게 한다.
미치도록 내 세계에 골몰하게 한다.
사람들과 함께라면 조금은 흥겹겠지만
나는 먼저 숨부터 막힌다.
홀로 높이 날 때에 나 비로소 숨 쉴 수 있다.
남모를 고통이 있다.
그러나 단지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다고 해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한 것은 아니다.
인류와 함께 호흡해야 했다.
그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이고 흔적이다.
내 세계가 이렇게나 광대한 것도
결국 인류와 함께 하고자 하는 꿈의 발로!
그러므로 낙담하지 않는다.
일단은 70억대 1로 시작했다.
나는 안다. 지금 이 순간 그 숫자는 분명 바뀌어 있음을.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신(神)의 농담인 것을.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