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과 그의 제자의 경우는
보기 좋은 일은 아니다.
그가 먼저 김기덕을 찾아가 읍소했다.
처음부터 그림이 안 좋다.
그러나 배신은 상대어.
사회적으로 신뢰를 잃었다고 보는 게 맞다.
서극과 오우삼의 경우는
서극이 오우삼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액션을 높게 평가한 것.
나중에야 헤어졌지만 그것은
예술가의 영역침범이라는 예민한 문제.
서극이 오우삼의 액션에 태클을 걸면서
영웅본색2는 전작에 비해 늘어진 게 사실.
그렇다.
이는 배신이 아니라
보물에 관한 이야기.
서극은 오우삼이라는 보물을
냉큼 주웠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
거기에서 걸작은 완성되었다.
그 작품의 이름은
만남!
그러나 김기덕의 경우는
김기덕이 보물이다.
그를 탐낸 이들이
보물을 손에 넣으려고 애썼으며
빼먹을 것 다 빼먹고
소장가치 떨어지자 버린 것.
그를 본 대중이 그 제자를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
이는 은혜나 배신의 문제는 아니다.
상대어로 말하면 틀린다.
절대어가 있다!
그 언제라도 상대가 아니라
절대가 답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약자일 수 있고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자기가 강자라고
착각한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혹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과연 순도 백퍼센트의 적선이 있을까?
온전한 은혜일 수 있을까?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책임질 수 있을까?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보상도 없이 마치 신처럼 주기만 할 수 있을까?
길 가다 노숙자에게 지폐 몇 장 던졌다고
그게 은혜를 베푼 것일까?
신도 은혜는 베풀지 않는다.
세상 가장 냉정하고 무서운 것이 신!
신의 사전에 결코 은혜 따윈 없다.
너도 마찬가지다.
너는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거래를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2014/02/06 14:07
-신비(妙)/예술가는 백호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