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위의 너, 꼬리를 살랑이고
오늘도 여전히 눈부시지만
끝내 이름 하나 지어주지 못하는 것은
이렇게 너와 눈 마주치며
인간이라는 내 이름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너보다 아름답다는 증거가 없다, 나는.
부처처럼 앉은 네 자태.
행여 오늘은 웃어줄까 인사를 건네보지만
역시나 민망하게 돌아서고 만다.
어쩌면 너는 나를 알아보는 것이다.
내가 아슬아슬 서 있는 이 곳,
너는 하품하듯 수시로 오르내리는 곳이란 걸.
마당은 번잡하고,
담장 위는 평화로우니 너 참 한가롭다.
눈감고 턱괴니 고대 황녀보다 도도하구나.
겨울은 뻔뻔하게도 당당하고
너는 그림처럼 고요한데
내 삶의 포도주는 쓰기만 하네.
-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