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 가면 식당 주인의 마인드를
금방 알 수 있다.
철저히 손님 위주로
조용하고 절도 있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손님은 안중에 없는 식당도 있다.
그 외에 욕쟁이 할머니가 맛깔나게 욕해주는 식당도 있고,
집 밥을 먹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식당,
인테리어가 멋진 식당,
음식에 자부심이 있는 식당,
독특한 분위기에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식당도 있다.
선택은 손님 몫이고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겠지만
결코 가지 말아야 할 식당은 있다.
욕이 아무리 맛깔나도
밥 먹으러 가서 욕까지 먹어야 하는 식당이나,
지들끼리 왁자지껄 떠들어 대며
소음공해를 뿜어내는 식당은 안 가는 게 맞다.
세상 무엇에나 밸런스라는 게 있어야 한다.
모종의 경계도 반드시 필요하다.
욕 듣는 게 좋다는 사람은 마조히스트인가?
아니면 정에 굶주린 건가?
인간이 서로에게 욕을 한다는 건
서로를 존중할 뜻이 전혀 없다는 것.
끈적끈적 들러붙어 얼렁뚱땅 뭉개보자는 뜻.
한 컷의 기본조차 안 되어 있으니
삶의 완성도는 확 떨어진다.
응답하라, 1994는 욕설에 관대한
신원호pd의 출세작이 되겠다.
봉테일 못지않은 신테일.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미완성이다.
여자의 마음은 잘 아는지 모르겠으나
신의 마음은 전혀 모른다.
디테일은 소름끼치고
명장면, 명대사는 많으나
한 컷 한 컷의 완성도가 없다.
전체를 꿰뚫는 벼리가 늘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한 컷의 완성도도 따라 실종돼 버렸다.
또한 그의 관심사는 연예계에 한정되어 있다.
나영석pd도 늘어지는 게 흠이다.
애초의 아이디어만 최고,
한 컷 한 컷의 완성도는 전혀 없다.
1분 짜리를 100분으로 늘리는 재주.
자기가 세운 사냥계획에 따라
배우들이 사냥하고 요리해놓으면
겸손하게 데코레이션하고 인증샷 찍는 스타일.
날 것의 아이디어가 어떤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하나의 완제품으로 변신하는지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
아이디어도 그 자체로 생물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의 씨앗은 발아하지 않는다.
그냥 늘어질대로 늘어진 테이프.
완성도 제로.
김태호pd는 한 컷의 완성자이다.
100분 짜리를 1분에 다 구겨 넣는다.
웬만한 것은 가차없이 편집해 버리는 가위질의 달인.
애초의 아이디어는 사소하고 무의미하기 짝이 없으나
온갖 우여곡절과 흥망성쇠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국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사람.
때문에 한 컷 한 컷이 마치 한 컷 만화처럼
생생하게 살아 펄떡인다.
한 장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빼곡하게, 그러나 함축하여 집어 넣는다.
따라서 어느 한 장면만 잘라내도
완성도가 높다.
하여간 댓글에도 원칙이 있다.
밸런스가 있다.
친한 이들끼리는 덜 친한 척하고
덜 친한 이들끼리는 좀 친한 척해줘야 하는 법.
그래야 밸런스가 맞는다.
위화감이 덜 든다.
식당에서 지들 주인이나 종업원끼리 떠들면
손님은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다.
처음 온 손님에게 좀 더 배려해주고
단골손님은 좀 덜 신경 써도 된다.
물론 오래된 부부나 연인처럼
서로 무신경해선 안 되지만.
신이 그렇다.
신은 제 친구는 제일 나중에 챙긴다.
신의 보상에 관심이 없는 이가 일단 신의 친구.
신의 친구라는 건 어마어마한 어드밴티지advantage이다.
밸런스를 갖추는 것이 곧 의미이다.
여러 친구들이 함께 있을 때
친하다고 귓속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대가 신의 친구라면 느긋해져야 한다.
믿는 구석이 신이라면 온 생을 기다림으로 채울 수도 있어야 한다.
제가 가는 길이 진짜라면 후대에라도 세상은 따라와 준다.
바로 후대를 사는 것.
한 컷 한 컷 지금 이 순간뿐 아니라
후대를 산다는 마인드라면
생은 그 언제라도 멋들어지게 반짝인다.
2014/01/08 16:10
-신비(妙)
금방 알 수 있다.
철저히 손님 위주로
조용하고 절도 있는 식당이 있는가 하면,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손님은 안중에 없는 식당도 있다.
그 외에 욕쟁이 할머니가 맛깔나게 욕해주는 식당도 있고,
집 밥을 먹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식당,
인테리어가 멋진 식당,
음식에 자부심이 있는 식당,
독특한 분위기에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식당도 있다.
선택은 손님 몫이고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겠지만
결코 가지 말아야 할 식당은 있다.
욕이 아무리 맛깔나도
밥 먹으러 가서 욕까지 먹어야 하는 식당이나,
지들끼리 왁자지껄 떠들어 대며
소음공해를 뿜어내는 식당은 안 가는 게 맞다.
세상 무엇에나 밸런스라는 게 있어야 한다.
모종의 경계도 반드시 필요하다.
욕 듣는 게 좋다는 사람은 마조히스트인가?
아니면 정에 굶주린 건가?
인간이 서로에게 욕을 한다는 건
서로를 존중할 뜻이 전혀 없다는 것.
끈적끈적 들러붙어 얼렁뚱땅 뭉개보자는 뜻.
한 컷의 기본조차 안 되어 있으니
삶의 완성도는 확 떨어진다.
응답하라, 1994는 욕설에 관대한
신원호pd의 출세작이 되겠다.
봉테일 못지않은 신테일.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미완성이다.
여자의 마음은 잘 아는지 모르겠으나
신의 마음은 전혀 모른다.
디테일은 소름끼치고
명장면, 명대사는 많으나
한 컷 한 컷의 완성도가 없다.
전체를 꿰뚫는 벼리가 늘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한 컷의 완성도도 따라 실종돼 버렸다.
또한 그의 관심사는 연예계에 한정되어 있다.
나영석pd도 늘어지는 게 흠이다.
애초의 아이디어만 최고,
한 컷 한 컷의 완성도는 전혀 없다.
1분 짜리를 100분으로 늘리는 재주.
자기가 세운 사냥계획에 따라
배우들이 사냥하고 요리해놓으면
겸손하게 데코레이션하고 인증샷 찍는 스타일.
날 것의 아이디어가 어떤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하나의 완제품으로 변신하는지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
아이디어도 그 자체로 생물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의 씨앗은 발아하지 않는다.
그냥 늘어질대로 늘어진 테이프.
완성도 제로.
김태호pd는 한 컷의 완성자이다.
100분 짜리를 1분에 다 구겨 넣는다.
웬만한 것은 가차없이 편집해 버리는 가위질의 달인.
애초의 아이디어는 사소하고 무의미하기 짝이 없으나
온갖 우여곡절과 흥망성쇠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국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사람.
때문에 한 컷 한 컷이 마치 한 컷 만화처럼
생생하게 살아 펄떡인다.
한 장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빼곡하게, 그러나 함축하여 집어 넣는다.
따라서 어느 한 장면만 잘라내도
완성도가 높다.
우리네 인생도 그래야 한다.
한 컷 한 컷이 살아 있어야 한다.
삶의 어느 부분을 떼어 내도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한다.
실패라도 완성도 있는 실패여야 한다.
그 실패로 인해 다음 순간의 성공까지 망치지 말아야 한다.
매순간 신과 담판을 짓고 신과 해결점 찾기.
엉뚱하게 다른 이에게 잘못을 전가하거나
늘어난 테이프마냥 질척거리지 않기.
내 잘못이 아니라면 쿨하게 다시 시작하기.
누가 나를 미워하든 말든 나와는 전혀 상관 없다.
죽을 때까지 꿈을 이룰 수 없다 해도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신의 문제.
내가 인간으로서 할 일을 다 했다면
그 다음은 신의 몫이고 신이 게으른 거다.
아니라면 아직 때가 아닌 것 뿐
하여간 댓글에도 원칙이 있다.
밸런스가 있다.
친한 이들끼리는 덜 친한 척하고
덜 친한 이들끼리는 좀 친한 척해줘야 하는 법.
그래야 밸런스가 맞는다.
위화감이 덜 든다.
식당에서 지들 주인이나 종업원끼리 떠들면
손님은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다.
처음 온 손님에게 좀 더 배려해주고
단골손님은 좀 덜 신경 써도 된다.
물론 오래된 부부나 연인처럼
서로 무신경해선 안 되지만.
신이 그렇다.
신은 제 친구는 제일 나중에 챙긴다.
신의 보상에 관심이 없는 이가 일단 신의 친구.
신의 친구라는 건 어마어마한 어드밴티지advantage이다.
밸런스를 갖추는 것이 곧 의미이다.
여러 친구들이 함께 있을 때
친하다고 귓속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대가 신의 친구라면 느긋해져야 한다.
믿는 구석이 신이라면 온 생을 기다림으로 채울 수도 있어야 한다.
제가 가는 길이 진짜라면 후대에라도 세상은 따라와 준다.
바로 후대를 사는 것.
한 컷 한 컷 지금 이 순간뿐 아니라
후대를 산다는 마인드라면
생은 그 언제라도 멋들어지게 반짝인다.
2014/01/08 16:10
-신비(妙)
명상에세이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