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데미안을 읽으라고 하진 않겠다.
데미안이 되어 주지.

그리스인 조르바나
칭찬하고 있지는 않겠다.

아예 조르바가
될 터이다.

당연히 자기 앞의 생이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는다.

차라리 모모를 죽이고
우뚝 일어서라고 하겠지.

지금 이 순간도 ‘나 여기 있다!’
매순간 너에게 말하고 있으니까.

영원히 데미안으로 남아달라는
친구가 있다.

그렇다면 조르바도 되어주고
대어를 잡는 노인도 될 수 있다.

어린왕자이며 여우이고
코엘료의 주인공도 된다.

저 책들을 다 보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 너무 많은 책을 봤지만

이상하게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중학교 때 철학 전집을 다 살펴봤지만
시시했을 뿐.

사람들은 책을 읽고
대화를 시도하거나

멋진 구절을 인용하며
잘난 척을 하지만,

그런 이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그는 책은 읽었지만

생을 살지는 않았다.
진리 안에 있지 않았다.

나는 저 책들을 읽는 대신
생을 살았다.

멋진 구절을 인용하는 대신
위대한 순간을 포착했다.

내 앞에 펼쳐진 생을
감당하기에 바빴다.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가하게 책이나 읽을 만큼
우주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신을 만난 것은
책을 통해서가 아니다.

진리를 목도한 것은
남의 생을 살아서가 아니다.

오로지
순간을 음미하는 것.

오직 내 앞에 펼쳐진
생이다.

이제는 읽을 수 있다.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조르바와 노인은 친구다.
로캉땡과 데미안도 친구로 쳐주지.

그 정도는 돼야 말이 통한다.
물론 그대는 책을 읽어야 할 것.

생을 살 확률은 이미 없으니까.
나와 만날 기회가 아예 없으니까.

신이 그대를 방문하지 않으니까.
진리와도 그러하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대다!

나 여기에 있다.
항상 변치 않고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그대의 몫.
자, 이제 어쩔 텐가?

2014/03/01 16:26
-신비(妙)/Here I am

Posted by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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