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2
태공망 강상은 제나라 왕으로 고향땅에 돌아갔을 때
다시 만난 아내에게 물 한 그릇을 엎질러 보였다.
궁상떨던 백수시절 그를 버리고 집을 나간 아내에게
냉정하게도 손수 엔트로피의 법칙을 보여 주었던 것!
과연 그의 아내는 이제와 다시 둘의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 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까.
어차피 세상사 되돌릴 수 없다!
나의 히로인이라면 제아무리 왕이 되었다지만
예전에 제가 버린 인간에겐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가 왕이 아니라 천자나 신이 되었다 해도
아내에겐 여전히 자신이 버린 하찮은 인간일 뿐!
물론 여기서 강상이 훌륭한 인격자라거나
아내가 형편없는 속물이었을 가능성 따위는 배제한다.
두 사람 다 그저 자신의 세계를 가진 독립적인 인격체일 뿐
선과 악의 캐릭터를 부여하면 수준 떨어진다.
나는 옳고 그름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외부적인 조건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면
나의 히로인이 될 자격이 없다!
필름은 되돌릴 수 있지만 드라마는 되돌릴 수 없는 법.
나의 시나리오에 그런 너절한 장면은 필요 없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어 새삼스레 놀라거나
화내거나 설레발칠 일이 없는, 그는 신이기 때문이다!
구걸은 거지나 하고 충격은 바보나 받는 것.
혹자는 냉정하게 자신을 차버린 연인 앞에
멋지게 변신해서 다시 나타나는 꿈을 꾼다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변신 좀 했다고 사람 달리 대접할 인간이었다면
뭐하러 그리 공을 들여 상처를 받을까!
그럴 땐 그저 다 잊고 새출발하는 게 좋다.
호탕하게 한 번 웃어주고 떠나는 거다.
서부 영화의 주인공처럼 폼나게, 뒤돌아보지도 말고!
물론 혼자 웃고 혼자 떠나야지,
떠나는 뒷모습 보여주려 안달하면 코미디된다.
내 시나리오에는 대화가 없다!
등장인물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할 뿐
상대의 말에 토 달거나 끼어들지 않는다.
자신이 서 있는 지점에서 보이는 만큼만 이야기하며
타인의 세계에 대한 침범은 일체 없다.
따라서 갈등도 없고 드라마도 없다!
각자 확고한 자신의 세계가 있을 뿐.
같은 장소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어도
그들은 각자 자기 세계에 존재한다.
엄밀히 말해 그들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세계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안에 드라마(?)가 없음으로써,
타인의 삶에 일체 개입하지 않게 됨으로써
갈등은 줄어들지만 쾌감은 그에 비례해 늘어난다.
보통의 인간들이 독점해야 할 것은 공유하고
나누어야 미덕인 것은 홀로 묵묵히 감당하며
놀라야 할 것에 태연하고 화내야할 대목에 미소를 날린다.
가족도, 애완동물도, 정도, 피도, 눈물도 없는 영화,
기존의 통념과 인습을 모조리 해체해 버리는 영화
편견과 선입견을 통쾌하게 깨부수는 그런 영화이다.
나는 강상의 아내가 그의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여긴다.
아니, 자신이 오히려 물 한바가지 엎었어야 했다.
강상이 알은 체를 하고 잘난 체를 했다 하더라도
그저 시니컬한 미소 한 방 날리며 돌아섰어야 했다.
그리하여 기가 차고 오기가 난 강상이
오히려 애가 달아 말 한 번 더 붙였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역시 내마누라답다, 너털웃음 한 번 웃어야
그림 좀 나와 주는 거다!
그럴 때 어떤 관객은 재미를 못 느낄지 모르겠다.
늙그막에 밥벌이 못한다고 인격자 남편을 차버렸던 속물여인이
왕이 되어 귀환한 그에게 철저히 다시 버려져야
비로소 쾌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갈등 대신 한 바탕 너털웃음이 있을 때,
도덕이나 윤리 대신 예리한 직관이 있을때 짜릿한 쾌감을 얻는다.
인간의 심연을 꿰뚫고 인식의 지평을 열어젖히는 깨달음!
그런 깨달음이 알알이 박혀있는 보석같은 영화 말이다.
그 대목에서 이혼 하지 말라는 교훈 어쩌고,
진정한 사랑 저쩌고 하는 인간과는 말 섞지 않는다.
눈앞에서 대놓고 칭찬하고 치켜세우는 그런 거 없다.
뒤꽁무니에서 눈치보고 흉보고 그런 거 없다.
낯간지러운 고백이나 사랑의 밀어 따위도 없다.
노인 등장한다고 효도나 노후대책 얘기해도 안 된다.
여자 나온다고 사랑이나 다이아반지 운운하면 끝이다.
노골적인 섹스신에 애절한 사랑 운운 점잖은 체, 잘난 체해도 웃긴다.
질컥거리는 영화, 스토킹 영화는 애초에 사절이다.
하여간 말 많으면 수준 떨어진다!
설명도 해명도 변명도 다 필요 없다.
시시콜콜 이러쿵저러쿵 중간 얘기는 다 헛소리다.
나의 히로인은 원작자겸 감독!
남의 말에 토 다는 표절자를 가장 우습게 여기며
남의 행동에 개입하는 침입자를 가장 역겨워한다.
또한 섣불리 타인의 고통에 알은 체하는 오지랖이나
자신이 질식사 시킨 주검을 앞에 놓고도 모르는 당달봉사는 캐스팅하지 않는다.
만약 그러한 미스캐스팅이 있었다면
애초에 캐스팅을 한 그 시점을 바라볼 뿐,
갈등하고 논쟁하고 바로잡고 그런 거 없다!
캐스팅을 잘못한 자기 자신을 향해
식은 미소 한 번 날리며 떠나는 것이 원작자의 방식!
나의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나의 히로인은 신이기 때문이다.
신에게 나이가 어디 있는가?
그의 어머니는 신이며 그의 아버지는 대지이다.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