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매순간 영혼의 집을 짓는다

그는 매순간 영혼의 집을 짓는다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1. 2. 16:18



 

오래 전 로빈슨 크루소가 되겠다고 고사리 손으로 짐을 꾸렸던 적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소풍갈 때 매던 작은 배낭에 짐을 꾸리고 풀기를 수십 번,

이루지 못할 꿈은 그렇게 어린 나를 지배했다.

내 손으로 집을 짓고 먹을 것을 구하고 옷을 만들어 입는다면 얼마나 멋질까?

꼭 필요한 것 외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생활,

산에서 열매 따고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상.

날마다 숲 속 곳곳을 탐험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저녁마다 붉게 타오르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일!

아홉 살 즈음의 나는 그런 꿈을 꾸었다.



오랜 연습 끝에 작살 쓰는 법을 익히고

마침내 물고기를 잡았을 때의 그 희열을 상상하면 지금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한낮이면 깊은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고,

특이한 모양의 나뭇잎을 발견하면 그것으로 새 옷을 장만한다.

그렇게 종일을 뛰어다니면 헬스클럽이나 수영장이 다 무슨 소용일까!

소낙비를 그을 좁은 처마조차도 달콤한 것을.

지금도 나는 맨발에 흙을 잔뜩 묻히고 산짐승을 쫒아 다니고 있다.

숲 속을 헤매고 다니다 요상하게 생긴 짐승을 만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표적(表迹)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그 표적은 한동안 나의 탐구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모래사장을 누비고 수시로 물에 뛰어드는 자연인.

어릴 적 그 불가능할 것만 같던 꿈을 나는 그예 이룬 것이다.



자신이 살 집을 손수 짓는 일은 무인도에서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는 내 손으로 집을 지을 것이다.

세월이야 가든 말든 하나하나 진흙을 이기고 쌓아,

소박하고도 장엄한 토담집을 지으리라.

나무와 흙과 노동력만으로, 흙으로 만들었다는 것뿐 아니라

내 영혼이 아로새겨진 이유로 진정으로 살아 숨쉬는,

집안에 있어도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자연과 같은 집을.

나와 똑같은 영혼을 가진 집!

뜨개질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에 비할 수 있으랴!

나는 지금 나만의 무인도에 산다.



대자연의 품에는 그 무언가가 있다.

휘황한 네온사인이 없이도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있다.

뜬금없이 시야를 가로막는 전깃줄이나

멋대가리 없는 시멘트 빌딩의 도시에는 없는 그 무엇!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바라 볼 수 있는 먼 풍경이다.

사사건건 가로막힌 도시에서는 먼 풍경을 바라볼 수 없고

하염없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에도 뭔가 그림이 나와 주질 않는다.

자연에는 황홀한 깨달음, 그 자체가 있다!

해가 지면 나도 지고 달이 뜨면 내 안에도 달 하나 뜬다.

산에 가면 산이 되고 물에 가면 물이 되는 것이다.

밤이든 낮이든 언제든 좋은 자리를 골라 불을 피우면 나는 또 날아오를 수 있다.

불 속에는 말로 할 수 없는 마력이 있다.

또한 그곳에는 어떤 세계가 존재한다.

불길이 타오르는 동안 나는 어느 새 다른 별 다른 시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인간의 무리에서 나오면 인간이 더 잘 보인다.

나는 매일 아침 솔개가 되어 병아리를 낚아채듯 삶의 정수를 끌어 올린다.

스스로 주관하라, 마치 신처럼!

인간사 희로애락, 초개와 같이 버려라!

그것은 신이라면 결코 빠져들지 않을, 한바탕 꿈.



나는 단호하다.

내겐 삶보다 생존이 앞설 수가 없다.

오히려 죽음이 나는 생존보다 가깝다.

그 만큼 삶에 대한 나의 태도는 진지한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삶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어설프게 집착하는 것만큼이나.

내 삶은 전쟁, 내게 소일거리 따위를 묻지 마라.

나는 여전히 일관되게,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삶과 만나지 못하는, 신과 만나지 못하는 인간은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보다 슬프고

무대를 떠난 배우보다 부조리하다.



오늘도 마당의 매화나무와 석류나무에

여러 종류의 새와 벌들이 하루 종일 놀다가 간다.

그 어떤 사람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찾아오는데도 이렇듯 반가울까?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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