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다른 별에 산다

우리는 서로 다른 별에 산다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2008. 12. 10. 22:10
우리는 서로 다른 별에 산다

말이란 게 그렇다.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또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웃는데
나는 숨이 막혀 죽어갈 수도 있는 거다.
그렇지만 상대는 끝내 나의 주검을 보지 못하고
재미있었다며 유유히 놀다가는 거다.
이 정도 되면 심각한 경우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심각한 경우는 아니고 아주 흔하디흔한 일이다.
실은 날마다 매순간 일어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 뿐이다.
당연히 말을 하지 않는 방법으로 말할 수 있다.
할 말이 너무 많아 오히려 말을 안 할 수도 있다.
입으로만 말을 하는 것은 아니며
의사소통이 언어로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서로가 같은 세계에만 살고 있다면.

그러나 우리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한 침대에 누워 있어도 각기 다른 세계민인 것.
그저 잠시 한 순간 만나 하나로 어우러지다
다시 또 제 세계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우리는 각자 자기 세계를 떠날 생각이 없으며
떠날 수도 없고 그저 조금씩 영토를 넓혀갈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세계민인 친구나 애인이나 가족에게
자신의 세계에 놀러오라고 손짓하는 것이다.
다행히 한 순간 서로의 법이 일치한다면
우리는 기쁘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이라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
원초적으로 다른 세계에 살며
다른 법률을 가지고 사는 사람끼리
어느 한 순간 완전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별에 산다.
애초에 같은 별에 살지 않는 다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섣부른 이해는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이다.
차라리 서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를 가지고
만나고, 사귀고, 사랑해야 한다.
또 서로 비슷한 정도의 전제를 가지는 사람끼리
만나고 사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애초에 같은 별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아주 드문 일이다.

사람들이 외롭다고 하는 것은 자기 세계에 홀로 살기 때문이다.
가끔 자기 세계에 친구를 초대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늘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만남이란 어느 한순간에 완성되고
그것으로 완전하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아니,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외로울 권리가 있다.
인간들은 완전하게 외로울 시간조차 없어 나날이 외로워진다.
완전하게 외롭지 못하는 인간은 완전하게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을 갈구한다면 외로울 권리를 주장할 것.
스키를 탈 때는 넘어지는 것부터 배운다.
우리 삶의 준비는 마땅히 ‘고독’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법은 자기 세계에서나 통하는 것.
가족, 친구, 동지라고 해서  같은 법을 가질 수는 없다.
인간이 고독한 것은 혼자만의 법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
그것은 아주 오래 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의 일이다.
물론 가끔은 가까운 별의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어
그를 위해 잠깐 외출 했던 적은 있었다.
그래서 잠시 다른 세계민들과 어우러져
한 바탕 축제를 벌이기도 했었다.
그것은 아주 강렬한 경험이고 또 멋진 순간이어서
지금 이순간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추억만으로도 나는 평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이미 내 세계는 충분히 빛났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여기’서 산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떠나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착각이다.
나는 한번도 그곳에 갔던 적이 없다.
나는 한 번도 내 세계를 떠난 적이 없다.
그러니 새삼스레 떠날 일도 없는 것이다.
다만, 가끔 우리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어느 한 순간, 교감할 수 있을 뿐이다.

어느 머나먼 초록별 무인도 왕국엔 미치광이 괴물이 산다.
괴물이 사는 곳은 외딴 섬이란 말도 있고
대나무 숲이란 말도 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아무도 그가 미치광이 괴물인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이상한 구석이 한두 군데는 아니지만
그의 뿔이랑 꼬리랑 날개는 투명한 것이어서
사람들은 정말로 그가 괴물인 줄을 모른다.
머 그런 것도 아무래도 좋다.
그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그곳에서 산다.
조금은 미친 것도 같고 조금은 웃기기도 하고
조금은 친근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괴물 같지는 않은 것이다.
 
괴물은 생각한다.
차라리 다른 별나라 사람들이 나를 괴물로 생각하면 좋을 텐데, 하고...
참, 괴물은 머나먼 초록별 무인도 왕국에 살지만
우주의 우편번호를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와도 다르지만 또 어느 누구와도 같은
그는 진짜 괴물이다. -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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