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완성하기
- 나의 변화로 너의 변화를 이끌기
요즘 인기 있는 리얼리티 개그프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자신에 대한 상대의 서운한 대접에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하는 것'이 그것.
물론 그것이 프로그램 내에서의 캐릭터일 수도 있고
단순히 웃기기 위한 제스처나 포석일 수 있지만
또한 다분히 연기자 개인의 실제 캐릭터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들은 현실과 가상을 쉴 새 없이 넘나들며
스스로도 구분이 모호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그래서 상대가 노골적으로 나올 때는 실제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그 순간만큼은 그들에게 있어 가상은 곧 현실인 것이다.
이는 현실의 우리들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다.
대다수의 우리들 또한 그러한 불만이 있을 때 별 생각 없이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불만을 토로한다고 해서 관계가 변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놓고 말로 한다면 그러한 관계는 더욱 고착화될 뿐.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혹은 그저 순진하게 던진 자신의 한 마디로
오히려 ‘대접 못 받는 찌질이’ 캐릭터로 다시 태어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관계를 다시 세팅할 수는 없다.
대신 아주 어렵지만 나 자신을 다시 세팅할 수는 있다.
다만 그리하면 관계를 재부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
그것은 나 자신을 아주 멋진 곳에 데려다 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말로 풀어보자는 등의 우스운 모의는 그저 말장난에 그칠 뿐이다.
시나리오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 매력적인 캐릭터의 구축이다.
리얼리티 연예프로에서도 역시 그것이 성공의 관건이 된다.
혹자는 그것이 가상이기에 연기일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백퍼센트 가상현실인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그 배우만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가상과 현실, 실제와 환상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장자가 나비 꿈을 꿀 수도 있고 나비가 장자 꿈을 꿀 수도 있다.
명상가들은 잡생각이 없어 꿈을 안 꾼다는 헛소리도 있지만
나는 별나게도 특이하고 환상적인 꿈을 많이 꾸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내 뜻대로 내 의식이 깨어 꿈을 골라 꾸는 것!
그렇다면 꿈속에서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이것이 꿈인가,
인간들이 눈을 감고 헤매는 ‘삶’이란 것이 바로 꿈인가?
우리들 인생도 역시 들여다보면 그저 한 편의 영화일 뿐.
순간순간 자신이 정한 룰에 따른 제스처를 취할 뿐이다.
그러므로 매력적인 캐릭터의 구축은 절대적인 것이 된다.
너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 땅에 왔느냐?
도대체 어디서? 왜? 또 죽을 땐 어디로 갈 것이냐?
이 현실적이고도 절절한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근원적인 물음이 비현실적이라며 애써 고개 돌렸던 이는
그동안 자신의 삶을 변명과 타협으로 일관해 왔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여간 그러한 이유로 매혹적인 악역, 스타일리쉬한 악당이 가능하고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진 찌질한 주인공도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최종적이고 총체적인 책임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몫이지만
푸른빛은 쪽빛에서 나오는 것!
배우 개인의 매력 또한 크게 작용한다.
혹자는 깨달음이나 삶에 대해서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한다. 자신 고유의 룰은 없고 타인의 텍스트에서 그것을 빌려온다. 그러니 기준은 일관되지 않고 행동은 돌발적이며 어설프다. 그러나 깨달음은 텍스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의 삶 속에서 보석처럼 발견되는 것이다. 타인의 텍스트를 읽는 것은 어쩌면 환상의 세계에서 허깨비를 쫒는 것. 있지도 않은 보물을 찾느라 신기루를 쫒는 것이고 남의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이를 망각하는 것이다. 남의 꿈에서 참고해야 할 것이 있다면 오로지 그 사람의 세상을 보는 관점, 혹은 세상을 사는 방식일 것이다. 자신만의 향기를 내뿜는 자신의 룰을 창조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 장면에서 환상은 곧 실제와 다르지 않다고 말해선 곤란하다. 그것을 삶 속에서 발견하기란 수 억 번쯤 죽었다 깨어나는 일보다 어려우니까! 그 보석은 가장 혹독하고 춥지만 가장 높고 멋진 곳에 자기 스스로를 데려갈 줄 아는 이에게서만 발견되니까! 하여간
불안하고 초조하고 힘든 순간이면 그는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이런 식으로..
순진한 발상이긴 하지만 그에게 어머니는 아마 하늘, 혹은 신일 것이다.
여기서 어머니는 얼마든지 다른 존재로 대체될 수 있다.
내가 한창 삶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을 때는 늘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신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에, 인간들에게 어떤 포즈를 보여 줄 것인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가?
신이라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어떻게 할 것인가?
한 가지만 말할 것 같으면, 내가 만약 신이라면
인간들 하나하나의 크고 작은 기쁨과 고통들에
일일이 참견하여 아는 체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설사 하늘이 무너진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경망스레 호들갑 떨 일이 없다.
“신이 있다면, 왜 인간-나의 고통에 그토록 무관심한가?”
따위의 투정을 스스로 낯부끄럽게 여기게 될 날이
언젠가는 반드시 오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인간은 추앙할 이를 찾아내기 위해 오늘 하루도 분주하다.
하지만 그들이 타인의 삶을 빌리는 사이, 자신의 삶은 속절없이도 흘러간다.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