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세계를 초월해버린 눈빛!
투명한 수정체, 자유자재의 동공,
고양이의 눈은 나를 고무시킨다.
신(神)이 빚어놓은 그 절묘한 것은
이루지 못할 나의 열망까지를 담고 있다.
몸조차도 투명하게, 흔적 없이 존재하고픈 열망.
나는 이 세계에 육체를 빚지고 있다.
그 접점이 완벽하게 사라지는 날 나는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버전에의 접점을 다시 가지는 것!
나는 그것을 부활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하여간 인간들이 그 무엇인가에 집착을 하는 것은
일단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는 뜻이다.
삶에, 사랑에, 가족에, 또한 결혼이나 자식에
자랑스럽다는 듯 집착하는 이들을 보라!
십년 뒤 혹은 이십년, 오십년 뒤에는
제가 집착하던 것들에 대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소리를 하는 자들.
깨달음에 집착하는 이들 역시 아니나 다를까
매사에 끈적끈적 들러붙는 스타일이다.
도대체 죽음이 삶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내가 기억하는 한 죽지 않는다.
날마다 얼굴을 봐야 그 존재를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죽음은 슬플 것도, 비극일 것도 없는 그저 삶!
매 순간 삶 속에서 일어나는 그저 그런 일일 뿐이다.
구름모양이 조금 전과 달라졌다고 눈물 흘리는 이가 있을까?
자신의 룰이 없는, 영혼이 빈곤한 자의 연극이 슬프다면 모를까.
날마다 도처에서 참혹한 살인극이 벌어지는 이 세계에서
새삼스레 제 가까운 이의 부재에만 눈물 흘리는 비정함이란.
내가 인간이라면 그런 잔인한 족속들과는 눈 마주치지 않을 터.
시간에, 거리에 비례하는 게 정이고 사랑이라면
차라리 인간도, 신도 없는 곳에서 홀로 살아가리라.
마치 연기처럼, 환영처럼, 도둑처럼!
그리하여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또한 그럼으로써 더욱 강렬하게 존재하리라.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도둑고양이라는 말에 꽤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만
나는 그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
그 이름은 낭만적이며, 심지어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그들은 마치 전사 같다.
음습한 들판에서 태어나 어두운 뒷골목에서 살아간다.
인간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 독립적인 세계의 주인,
졸고 어슬렁거리며 언제든 떠나버리는 자유!
인간에게 그러하듯 아마 신에게도 그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
그들의 복수는 퍽이나 매혹적인 방법으로 자행될 것이 분명하다.
고양이를 조심하라!
언제 당신의 마음을 훔칠지 모르니. -신비(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