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은 마음이 좁지 않을 것 같다. 정상에 서 보았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아랫동네를 굽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며 매 순간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는 편견이 적을 것 같다. 그들의 마음은 우주에 살기 때문이다. 드넓은 우주 공간을 아우르며 어느새 소소한 일상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우주 비행사는 유유자적할 것 같다. 그들은 무중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 다 버리고 그저 몸뚱이 하나로 신비한 우주의 속살과 맞 대면했기 때문이다.
직업을 말함이 아니다. 그들 마음의 범위를 이름이다.
마음에도 중력이 작용한다. 저 광대한 우주, 그 참맛을 느껴본 이라면 필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땅 위에 붙박혀 있는 마음을 저 하늘 위로 띄워보라. 저 우주를 날아보라.
거기서 내려다 보라! 너와 내가 다를 것이며 세상 모든 것과 스스로가 다르겠는가?
천지가 다를 것이며, 오고 가는 것이 따로 있겠는가?
바로 거기서 시작하라. “모든 것이 하나다.” 거기서 출발하라! |
부정한다는 것은!
삶을 부정한다는 것은
그대 삶이 비참하다는 것을 긍정한다는 것. 그리하여,
그 비참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기를 멈추는 것.
삶을 부정한다는 것은
그대를 둘러싼 대자연의 완전성을 긍정한다는 것. 그리고,
그대 또한 그 일부분임을 알아차리는 것.
삶을 부정한다는 것은
신이 이 순간에도 그대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홀로 고독하게 신과의 접속을 시도하는 것
비참은
기아(飢餓)가 아니라, 궁핍이 아니라
그대 영혼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또 얼마나 비참한 일이냐!
자연의 완전성이란
신이 언제나 먼저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는 것.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풀벌레가 우는데
눈 감지 않고서야 어찌 모를텐가?
신도 이 순간, 창조를 멈추지 않는데
인간만이 눈 감고 고개 돌렸다.
삶을 긍정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게으른 자의 변명이며 안주한 자의 논리,
무지한 자의 억측.
잠든 그대 영혼을 흔들어 깨워라.
곤궁한 그대 영혼을 부정하여,
그리하여
긍정하라!
사랑을 모르는 자. 사랑을 말할 수 없다.
사랑이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이 온전히 사랑으로 화(化)하는 것이다.
깨달음을 얕보는 자. 깨달음을 논할 수 없다.
깨달음은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대 스스로에게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개혁을 바라지 않는 자. 개혁을 이야기할 수 없다.
개혁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부정 위에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완전함을 희구하지 않는 자. 완전함을 시비할 수 없다.
완전함은 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살과 뼈를 모조리 불태워 기어이 도달해야할 것이다.
스스로에 붙들려 태만한 자. 진보를 이야기할 수 없다.
나아가는 것은 역사뿐 아니라, 그대 자신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안주한 자. 기필코 그대 자신을 부정해야 할 것이다. 움켜쥔 그대 두 손을 털고 그곳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차라리 모른다고 고백하라! 그대 자신을 철저히 부정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