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의 시조 달마와 나의 히로인은 가끔 만나 대화를 나누는 사이이다.
그들은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음주가무에 능한데다 수학, 과학에도 조예가 깊은 타고난 천재이기도 하다.
달마 :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고 하니 시간여행이 가능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겠군.”
나의 히로인 : “기사들도 대략 시간여행이 가능한가? 로 끝을 맺더군.”
달마 : “요즘 사람들은 그런 데 관심이 많은가봐.”
나의 히로인 : “응, 걸핏하면 시간여행 타령이지. 안 그래도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는 친구가 하나 있었어.”
달마 : “그래? 재미있군.”
나의 히로인 : “하도 징징대기에 내가 당신 스타일을 좀 차용했지. 요즘 그런 소리하면 구닥다리 취급을 받긴 하지만.”
달마 : “하하하, 그렇겠지.”
과연 나의 히로인은 얼마 전 한 시티즌과 부딪힌 적이 있다.
시티즌 : “이제 시간여행이 가능한 건가요? 웜홀worm hole도 존재하고? 히야, 정말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그건 어릴 적 내 꿈이었는데……”
나의 히로인 : “오호? 그럼 시간을 찾아서 가져와 보시지. 내가 시간여행을 시켜줄 테니!”
순간, 당황한 시티즌은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다시 대꾸한다.
시티즌 : “에이. 시간을 어떻게 갖고 와요?”
나의 히로인 : “오오, 이것 봐, 방금 나는 그대에게 시간여행을 시켜줬다네!”
그러나 그 옛날 혜가와 달리 우리의 시티즌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마냥 대꾸를 하고 있다.
시티즌 : “글쎄, 그것보단……. 음, 블랙홀과 화이트홀 사이에 웜홀이라는 통로가 있잖아요? 그 웜홀을 이용하면 시간여행을 할 수 있지 않나요? 뭐, 주위환경을 이동시키는 기술도 있다는데…… 거참, 신비롭지 않나요?”
나의 히로인 : “아, 나, 시간은 없다니까!”
급기야 그때 나의 히로인은 사족을 달고 말았던 것이다.
달마 : “21세기에는 21세기 스타일이 있겠지. 옛날 우리 제자들은 내가 기침만 해도 깨달았었어. 눈만 껌뻑해도 깨달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그때보다 훨씬 더 진화된 스타일이어야겠지. 오래 애썼는데 이제 당신시대에 다시 한 번 깨달음의 시대가 올 거야!”
나의 히로인 :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설파한지도 언 2000년이 넘었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과거, 현재, 미래에다 시간여행 타령이라네. 정말 미쳐버리겠다고.”
달마 : “근데 코미디인건 시간여행을 한다면서 꼭 공간을 통해서 하려고 한다는 거지. 타임머신도 그렇고 블랙홀이니, 웜홀이니 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야!”
나의 히로인 : “그러게, 시간여행인데 시간을 타고 가든지 해야지. 왜 공간을 통해 간다고 난리? 광속을 넘어서면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니,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을 역행하겠다는 거잖아? 아휴.”
달마 : “우리 좀 전에 예수를 만났지 않나? 광속을 넘어서거나 공간을 구부리지 않아도 이렇게 만날 수 있는데 말이야. 사람들이 그걸 모르니……”
나의 히로인 : “사람들은 수시로 관점이 이동하는 거야. 자신을 세상의 기준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증이지. 세상이 절대적으로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 아닌가 말이야. 왜 자꾸 오락가락하는지 모르겠어.”
달마 : “요즘 사람들은 줏대가 없는 것 같아. 잘나가다 갑자기 시점을 이동해서 논리의 오류를 만들어 버리고, 있지도 않은 공간을 구부려서 시간여행을 한다고 하고.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면 적어도 상대적인 관점 이동 현상은 없을 텐데 말이야.”
나의 히로인 : “플라톤도 그러더군. 자기는 고대에 죽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이데아를 이원론으로 착각할 때, 그때마다 죽는다고! 이데아를 세상 위의 또 다른 세상이나 무슨 천국쯤으로 여기니 기가 찬다고 말이야. 칼릴 지브란도 이중적인 세계관이란 얘길 들었다더군.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 아닌가, 응?”
달마 : “트루먼 쇼라는 영화가 있더군. 사람들이 그 세트장 밖을 진리의 세계로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야.”
나의 히로인 : "그거 좀 된 영화야.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지. 흠. 하긴 그때 짐 캐리가 받은 충격은 깨달음의 충격과도 같지.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 세계를 발견했을 때의 충격이란! 사람들에게 그런 거대한 충격을 줘야 하는데 말이야."
달마 : “이미 충격 아니겠나. 지금 우리가 시간과 공간이 없다고 말하고 있으니.”
나의 히로인 : "아이고, 요즘 사람들은 그런 걸로 충격 받지 않아. 타임머신을 진짜로 만들 수 있다고 해야 충격 받지."
달마 : “거 참, 사람들이란! 21세기는 영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하하.”
나의 히로인 : “하긴 요즘은 마음 이야기는 잘 안 해. 주로 신(神)에 대해 이야기하지. 마음이 어떻고 요런 건 흘러간 옛 노래여. 촌스러워.”
달마 : “신을 이야기해도 결국은 인간 이야기 아니겠나. 신을 찬양만 한다면 오히려 위험하지. 칼릴 지브란에서 더 나아가야 해.
나의 히로인 : “그게 내가 지구에 온 목적이지. 사람들은 중간에 주저앉아 있어. 끝까지 가봐야지, 이왕 출발한 거! 뭐가 무서워서 중간에 멈춰서 오도 가도 못하는 거냐고.”
달마 : “하긴 자네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네. 신에게 거듭나라고 큰 소리 땅땅 치고 말이야.”
나의 히로인 : “그래야 신도 내 친구 될 자격이 있는 거지. 아무하고나 친구할 순 없잖아? 그건 타협불가!”
달마 : “그래, 신도 훨씬 근사해졌지. 자네 같은 스타일리스트를 만나는 바람에.”
나의 히로인 : “당신도 달라진 거 알지? 스타일이라니, 요즘 사람 같잖아. 하하.”
달마 : “음, 직업정신! 우리의 일은 날로 진화하고 상승하는 일 아니겠나, 신도 그렇고.”
나의 히로인 : “소파에 너부러진 신은 신이 아니야. 펑퍼짐한 엉덩이의 신이라니, 정말 매력 없지 않아?”
달마 : “사람들은 그렇게 푹 퍼진 신에게 엎드려 기도를 하지. 나 좀 잘 봐 달라고 말이야. 상승하지 못하는 신은 그저 동굴 속의 그림자, 거울 속의 환영인 걸 모르고.”
나의 히로인 : “그 그림자는 고도 비만이지. 진짜 신은 나처럼 스타일리스트고. 하하하.”
달마 : “신도 나비처럼 날마다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 그게 자네 스타일 아닌가! 생각해보면 나도 자넬 만나기 전에는 철학자처럼 인상만 쓰고 다녔었어. 요즘은 그래도 예술가처럼 좀 말랑말랑해졌지 않나?”
나의 히로인 : “응, 지금은 머쉬멜로우야. 옛날엔 장승이었고. 난 당신이 기타 치면서 들국화 노래 부를 때가 제일 좋아.”
달마 : “하하하, 이 사람! 그럼 스타일 있게 모여 볼까? 깨달음의 시대가 오고 있는데 우리 이제 자주 봐야지.”
나의 히로인 : “아, 소로우 아저씨가 보고 싶네!”
달마 : “그 까칠한 양반, 기타 실력은 여전한가? 그 강력한 블루스를 들으면 없던 전생이 다 떠오르는데 말이야.”
나의 히로인 : “음, 그 강렬한 소리로 다시금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싶네, 하하. 아저씨가 리드기타를 맡아야 우리 밴드가 완전해지지.”
달마 : “칼릴 지브란은 어떤가?”
나의 히로인 : “요즘 Dream Theater의 John Myung*에 빠져있어. 그의 베이스가 자신을 연주했다나? 혜능과 노자는 여전하고. 뭐, 초대장 발송 완료!”
달마 : “그랬군, 이미 준비를 다 해놓고 그렇게 죽는 소릴 했단 말이지?”
나의 히로인 : “하하하, 이번에는 지산*이 아니라 안산벨리야. 로맨틱 펀치랑 국카스텐도 나온다더군. 이거 슬슬 흥분되기 시작하는데?”
달마 : “자자, 얼른 연습 시작하자고! 우리도 내년엔 라인업에 들어야지.”
가끔 이루어지는 달마와의 만남은 시간여행이 맞다.
그러나 또 엄밀한 의미에서의 시간여행은 아니다.
그들의 만남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이나 공간 따위가 아니라
바로 진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
진리와의 만남이 바로 시간을 넘어서는 것,
곧 역설적 의미에서의 시간여행이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거스르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그래서 나의 히로인의 언어에는 시공의 개념이 없는 것.
말하건대 세상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진리뿐이다.
*John Myung 존 명 :
Dream Theater의 창단 멤버이자 베이스 기타.
*지산벨리 록페스티벌:
2009년부터 해마다 7월 말이면 3박 4일 동안 열리는 캠핑 록페스티벌. 2013년부터 안산으로 옮김. 세계적인 록페스티벌로 Woodstock, Glastonbury, Fuji Rock Festival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