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妙)어록2-신비(妙)어록의 이야기

신비(妙)어록2-신비(妙)어록의 이야기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1 2011. 4. 7. 13:24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당신에게는!
또한 어쩌다 길거리에서 스쳐 지났을 수는 있겠으나
그때 당신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다.
당신에게 나는 어쩌면 까마득한 태초,
혹은 머나 먼 후세의 인간이다.
혹은 ‘당신은 결코 방문할 수 없는’
내 꿈속 세상의 존재이다.


그러나 알 수 없다.
나는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
당신이 언제 다시 내 옆을 지날지는 모르지만
그때 당신은 나를 알아 보게 된다.
스스로 깨어나 마침내 별이 되고 태양이 되어
꽃 한 송이 피운 자!
존재 그대로의 존재,
빛 그대로의 빛,
하얀 치맛자락을 이끌고 구름 속을 산책하는 바로 그날에는!


그리하여 나는 그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외로움에 떨지도 않은 채,
수 만번의 죽음에도 다시 부활하여
구름이 수시로 그 모양을 바꾸듯이
그렇게 오늘도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 날이 바로 어제인 듯,
혹은 지금 이 순간인 듯
한 순간도 자존감을 잃지 않으며
세상 모든 장대한 것과 연결되어
결코 소외되지 않은 채로!


해가 몹시도 긴 어느 날
당신은 다락방에서 낯선 책 한 권을 발견한다.
어머니의 짐 꾸러미인지, 아니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쯤 되는 분의 유품인지는 알 수 없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집어 들게 된 책.
거기, 두껍게 앉은 먼지를 손바닥으로 훑어내고
누렇게 바랜 표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당신이 있다.


책장을 넘기면 곧 세계가 펼쳐진다.
그 세계는 당신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꿈같기도 하고,
아련히 떠오르는 그리움 같기도 한,
미지의 그것에 몸을 내맡기기만 한다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세계.
옷장 문을 열고 나니아로 들어갈 것인가,
환상의 쥬만지 게임을 시작할 것인가,
그것은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아담과 하느님, 혹은
E.T와 소년 앨리엇의 손가락이 맞닿는 순간!
당신이 책장을 넘기는 것은 바로 그 순간과 같다.
두 손가락이 맞닿는 지점은 당신의 세계와 나의 세계의 접점이다.
당신의 세계에서 나는 이방인
그래도 여전히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
그것은 다만 어쩔 도리 없는 나의 존재감이다.
그로 인해 당신의 시간여행은 가능하게 된 것이다.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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