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야생으로 가면
언제나 소로가 생각 나.
특히나 척박하고 황량한 풍경은
친애하는 나의 소로를 떠올리기에 충분하지.
오로지 황폐함 그 자체가 있었어!
잊을 수 없는 내 생의 그림.
척박하고 황량하고 장대하기까지 해
인간의 흔적조차 없었던 곳.
온전히 버려진 곳.
그러나 약속의 땅.
거기에서 신을 보았지.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6살 때의 일.
다섯의 사촌들과 동네 아이들.
우리는 날마다 온 천지를 날아다녔어.
가끔은 리버피닉스처럼 먼 곳으로
시체를 찾아 탐험대를 꾸리기도 했지.
어느 날은 정말로 시체를 봤어.
대자연의 시체.
끝까지 가면 볼 수 있는 풍경.
난 혼자 끝까지 갔었지.
허리가 꺾여버린 산,
죽고 메말라 하얗게 드러난 나무줄기와 뿌리.
그 아찔했던 벼랑 끝,
벼랑 밑을 내려다 봤을 때를 아직도 기억해.
자연의 속살은 언제나 붉은 색.
진리의 심중을 거기서 맞대면 했지.
새벽에 눈만 뜨면 용솟음치는 영감.
허허벌판에서도 끊이는 법은 없지.
잠을 잘 때도 꿈속으로 마구 쳐들어오고
밥을 제대로 먹을 시간조차도 주질 않아.
서로 나오겠다고 아우성쳐대는 모습.
나는 야생에 앉아 진리의 속살과 만나는 유목민.
담요를 뒤집어쓰고 완전한 유목민이 되는 일은
그야말로 한바탕 축제.
소로가 살던 시대에는 페이스북이 없었지.
21세기는 나의 영감에 더욱 불을 지펴.
어제는 비가 왔었어.
오랜만의 모닥불은 그 자체로 설렘.
내내 귀 옆에서 속삭이던 봄비는
모닥불조차 어루만지더군.
나는 성미가 급한가 봐.
한 겨울에 봄을 느끼고
스물일곱엔 서른을 앓았지.
생도 그렇게 미리 앓으며 살고 있나 봐.
미래를 살고 후대를 사는 일은
나처럼 급한 사람들에게 안성맞춤.
인고의 세월을 살아내기에
꼭 맞는 스타일.
소로가 냉담했던 것은
누구보다 뜨거웠기 때문이야.
뜨겁게 삶과 만나고
삶 아닌 것들은 모두 버린 사람.
살금살금 오는 듯 마는 듯 비를 맞고 있자니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도 떠오르더군.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 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
사랑한 것도 잊혀가네요. 조용하게...
알 수 없는 건 그런 내 맘이 비가 오면 눈물이 나요.
아주 오래 전 당신 떠나던 그 날처럼.
이젠 괜찮은데 사랑 따윈 저버렸는데
바보 같은 난 눈물이 날까 눈물이 날까.”
이토록 사무치는 사랑이 있을까?
소리 없는, 그러나 피맺힌 절규가 있을까?
그립지 않다는 말은 그리워하다 그리워하다
마침내 풀썩 죽어버렸다는 뜻이다.
괜찮다는 말은
이미 베어져 피 흘렸다는 뜻이다.
쿨하다는 것은 그만큼 뜨겁다는 뜻이다.
나는 네가 없어도... 괜찮다.
2014/01/26 09:28
-신비(妙)/소로가 생각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