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를 입어야 한다면
나는 수해보다 화재를 택하겠다.
차라리 다 타고 나면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
수해는 더 가슴 찢어진다.
집에 쳐들어온 물도 퍼내야 하고
살림살이도 쓸 수 있는 건 골라내야 한다.
그 현장을 낱낱이 목격해야 하고
다시 한 번 가슴을 쳐야 한다.
차라리 모조리 불타 버리는 게 낫다.
미련이라도 남지 않게.
쿨하게 웃을 수 있게.
발랄하게 병맛나는 기념사진이라도 찍게.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반드시 다시 그 폐허를 확인하게 한다.
그래서 화마를 택한다.
그것도 지옥의 화마.
남김없이 모조리 불태우기다.
내가 날마다 큰불을 내는 이유.
모닥불은 그 미미한 시작이다.
세상을 타 태우려는 야심이다.
나는 중성자처럼 연속적으로 터진다.
그럴 때가 가장 아플 때다.
가장 아플 때 가장 신나게 터진다.
신나서 아예 우주도 망각한다.
핵폭탄처럼 강력하게 터진다.
그럴 때가 가장 쿨할 때다.
쿨하다 못해 다시 뜨거워진다.
불같이 뜨거웠으니 다시 차가울 수 있다.
마침내 세상을 불바다로 만든다.
그럴 때가 가장 집착될 때다.
마약이다.
예술은 마약이다.
2014/02/08 12:17
-신비(妙)/예술은 마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