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면 어디든 달려가겠다.
하는 사람은 비위가 좋은 것이다.
아니면 수치심이 마비되었거나.
강의, 상담, 칼럼, 투고, 초청, 등등은
제가 연예인인 줄 아는 자나 하는 것.
아니면 돈과 명성이 아쉽거나.
철학은 결코 시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연예인처럼 팬들에 둘러싸이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느끼는 나르시시즘이 아니다.
나르시시즘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때 느껴야 진짜다.
여기저기서 떠받들어 줄 때는 미물도 느낄 줄 안다.
보통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면 절망!
홀로 우뚝 정상에서 독야청청 하는 것,
그리하여 신과 바로 만나는 것,
그 누구도 거치지 않고 진리의 속살을 맞대면하는 것.
그것이 철학하는 자의 기본이다.
삶을 이야기하고 진리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후대를 이야기하는 자의 태도이다.
부르는 대로 부화뇌동 신나게 강의 다니는 자,
부르시니 달려간다며 겸손을 가장하는 자,
제 바닥 드러나는 줄 모른다.
근데 철학은 언제 하니?
사색은 하나? 강의하는 척 스트레스 풀려고?
수다 떨면서 뭐하게?
철학은 매순간 신과 만나고 진리와 만나고
삶과 만나고 미래와 만나고 후대와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바로 세상에 알려주는 것이다.
남의 생각이나 팔아먹으며 놀러 다녀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과 독자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 보면서도
구토가 올라오지 않는다니 놀랍다.
독자맞춤 서비스를 한다니 경이롭고
뇌가 아니라 몸이 부지런하다는 게 희한하고
시시콜콜 잔잔한 상담자들의 앓는 소리를 듣는 인내가 감탄스럽다.
철학의 기본은 세상의 룰을 거부하는 데에 있다.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를 넓혀가야 한다.
영혼의 징기즈칸이 되어야 하고 혼신의 안중근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틈새를 찾아 요리조리 적응하는 건
철학자가 아니라 장사치들이 할 일이다.
왜 남의 영역을 빼앗나?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은 구토가 올라오는 것을 참는 일,
시시한 수다를 들어야 하는 일,
눈높이를 낮추는 일이다.
아니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리적으로 할 수 없는 일.
더구나 철학자나 예술가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자신을 통제하는 데에 관심이 없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
애초 눈높이 자체가 없었다는 거다.
정상에서는 결코 산 아래로 눈높이를 낮출 수 없다.
후나 민율을 예뻐하는 것은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태곳적 원시의 순수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를 독자에 맞추는 것은 그냥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가장 지난한 일은 시대 마중!
한낱 범부도 자식이 살아가야 할 미래를 염려하는 법이다.
그를 하지 않는 학자는 학자가 아니다.
그냥 중개상,
연예인,
장사꾼.
아, 정말 비위 상해 못 견디겠다.
그래서 또 깨달음 속으로
풍덩!
2014/01/22 12:59
-신비(妙)/수치심을 가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