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妙)어록2-단번에 날아오르기

신비(妙)어록2-단번에 날아오르기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3. 13. 13:14



여기 한 단계 진화한 인간,

더 나은 종이 되고 싶다는 과학자가 있다.

열등한 인간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그의 소망은

몸에 칩을 이식하여 로봇 인간이 되는 방법으로 실현되고 있었다.

상대의 신경계가 뇌를 자극하면 그의 생각을 읽는 것이 가능하고

그런 방법으로 말을 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TV 다큐 프로그램으로 본 그는 하루가 다르게 로봇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그는 왜 애초에 한 단계만을 원했던 것일까?

 

단번에 날아오르지 못한다면 실패다.

아기새도 첫 비행에서부터 힘차게 창공을 가른다.

단번에 날아오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진리의 편에, 신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인간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신의 편에 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진리의 편에 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역사의 편에 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진보의 편에 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스스로에 물을 일이다.

신이라는 집에서 진리라는 옷을 입고

역사라는 친구와 진보라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가?

애초 인간은 신의 재현!

기실 신의 편에 서는 것이 가장 편안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야 아슬아슬하고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신의 옆자리야말로 가장 따뜻하고 안락한 곳!

 

우리는 보통 결혼을 하고 내 편이 생긴 것에 흡족해한다.

혹은 권력에 줄을 서고 든든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그 참을 수 없는 얄팍함이란!

위태로움이란!

반면 신이라는 후원자가 그 언제라도 든든히 내 뒤를 받쳐 주고 있다는 것.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 수 있다.

신을 영원히 내 편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다.

 

신의 편에 선 사람에겐 매 순간이 소통이며 사랑이다.

몸에 칩을 이식하지 않고도 언제든 시공을 초월하여 소통할 수 있다.

차라리 깨달으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깨달음의 세계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엄마 품을 벗어나면 곧 진정한 세계가 펼쳐진다는 사실!

 

금 밖으로 나가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 세상을 보는 것,

온실 속 화초가 태양과 바람을 구하는 것,

그리고 조롱 속 새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는 것이다.

우물 밖에 나가면 새로운 세상이 있다.

온실밖엔 춥지만 멋진 세계가 있다.

조롱밖엔 아슬아슬하지만 자유로운 세계가 있다.

 

인간에게 비참한 일이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

혼미와 그 가운데서도 내달리는 몽유병 같은 삶, 그리고 뻔한 끝!

허공을 향해 과감히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보이지 않던 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인디아나 존스가 성배를 찾은 것도 다 절벽 끝에서 한 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길 없는 길이 있다!

그것은 빛으로 된 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길이다.

눈을 감고 영혼의 발걸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절벽과 절벽 사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눈 부신 빛이 비치고 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온 몸을 던진다면 단번에 날아오를 수 있다.

그렇다면 허공을 유유히 비행하다가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매 순간 삶의 정수를 끌어 올릴 수도 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는 명제를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을 나는 믿지 않는다.

생존과 짝짓기 외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아둔함,

무엇보다 그 자위와 변명, 안주가 밉다.

또한, 그러므로 완전한 신에게 의존하여야 한다는 발상이 위험스럽다.

인간이 단지 신과 동물의 중간 지대에 사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삶뿐이다.

오로지 삶으로서 살아 있을 때

신은 내 곁으로 온다.

나에게로 와서 내가 된다.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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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2-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4

신비(妙)어록2-신은 쿨한 스타일이다! 4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3. 9. 14:11




내 영화는 자칫 심심하고 지루할 수 있다.

대화도 없고 서스펜스도 없고 반전도 없다.

또한 다음 스토리를 예측하는 재미도 없다.

그러나 그런 점이 오히려 강점이 된다.

서스펜스가 넘치고 반전이 강한 영화는

예측의 묘미가 공식이 되는 순간

그 재미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뒤엎는 반전은 없지만

인식의 허를 찌르는 의외성은 있다.

가슴 졸이는 서스펜스는 없지만

막힌 가슴 뻥 뚫어주는 통쾌함은 있다.

나는 서스펜스가 넘치는 영화를 보며

하품을 하고 한 눈을 판다.

케이블 티비라면 이미 채녈을 돌렸고

영화관이었다면  딴 생각을 했다.

 

작가의 작위적인 의도에 흥미를 잃기 때문이다.

첫 장면에 이미 스토리와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와 대사, 주제라는 공으로 현란한 드리블을 하는

작가의 바쁜 손놀림이 거치적거리기 때문이다.

관객을 좌지우지하려는 의도가 불순하기 때문이다.

나는 넘치는 서스펜스에 딴생각을 하고

의외의 포즈에 한 생각을 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어떤 갈등이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생각이 있고 어떤 포즈가 있는가가 중요하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다 어떻게 해결되는가가 중요치 않고

어떤 상황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가가 중요하다.

우리의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중요하고

그 선택을 완성하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부모도, 자식도, 가장도, 주부도 없고

꽃미남 꽃미녀도 없다.

오로지 인간과 인간이 있다.

훤칠한 미남과 예쁜 여자의 연애가 아닌

인간과 인간간의 만남.

세계와 세계의 만남이 있다.  


삼각관계는 있지만 그것이 치정은 아니고

사랑은 있지만 그것이 연애는 아니며

그리움은 있지만 그것이 정은 아니다.

소통은 있지만 대화는 없으며

환타지는 있지만 SF는 없고

도전은 있지만 어드벤처가 없다.  


대신 눈부신 햇살이 있고

일렁이는 물결이 있으며

붉게 타오르는 석양이 있다.

밤하늘의 별, 아니 우주를 떠도는 별.

그 별과 별사이에 별과 같은 인간이 있다.

태양과 별과 달은 시종일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우주의 어느 한 구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주의 한 복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스토리도 없고 사건도 없고 결말도 없는 영화.

내 꿈속 같고 내 바람 같은 영화.

그리움이 물결처럼 일렁이면 그들의 모습은 강물이 된다.

사랑이 파도처럼 부딪히면 그들은 바다가 되고

자유가 구름처럼 떠다니면 그들은 하늘이 된다.

꿈이 별빛처럼 찬란하면 마침내 우주가 된다.

 

그럴 때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는 풍경이 보이고

숨어있던 진실이 드러나며

원래부터 있던 진리가 완전하게 포착된다.

내 영화의 주인공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스크린 밖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스크린 밖 우리가 그렇듯이 그들 하나하나는 인간이고 자연이며 꿈이다!


나의 영화는 심심해서 오히려 심심하지 않은 그런 영화이다.

예측할 수 있어서 오히려 예측할 수 없는 그런 영화이다.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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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2- 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하기 - 그것은 사랑!

신비(妙)어록2- 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하기 - 그것은 사랑!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3. 4. 12:05






"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어라.

애초에 너도 내 안에 살고 있었다고 말해주지 않겠니?

아니라면 나의 세계는 너의 숨결로 만들어졌노라고,

혹은 너의 세계는 나의 꿈으로 이루어졌노라고 말해주렴!

 

너도 나처럼 시간을 거스르고 공간을 뛰어넘어 달려왔노라고,

태초부터 지금까지 대기가 되고 바람이 되어 기다려 왔노라고!

이미 오래전 너는 나의 초대에 응했었노라고!

애초에 우리의 만남으로 이 우주가 탄생했노라고!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테지!

너는 나를 감싸고 있는 대기이며, 나는 너의 코끝을 스치는 산들바람.

내가 숨 쉬는 대기는 언제나 달콤하고

너는 코끝에 스치는 산들바람에도 감동하지.

 

너는 나를 뺀 모든 것이며 나를 포함한 모든 것!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대기 안에서 나는 언제나 자유롭고

나는 너와 함께 있지 않을 때 오히려 함께임을 느끼지.

너는 나의 사랑이자 삶, 그 자체!

 

이대로 내가 죽어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도,

너와 내가 이 우주에 존재했었다는 사실 하나로

이 우주는 그 존재 의미를 다했으며,

나 또한 내 생의 의미를 다했노라고!"


 ***

그러므로 ‘사랑’은 헤어져도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을 어찌 이별이라 부르겠는가?

사랑이란 각자 다른 장소에 가서 서로를 찾아 헤매다 지칠 일이 없는 것! 


‘사랑’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가슴 가득 ‘사랑’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내 명의로 따로 이전하지 않아도 영원히 나의 소유인 것!

그럴 수도 없지만, 누군가 빼앗아 간다고 해도 나의 몫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는 공히 이 우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이 세계를 사랑할 힘을 주는 것과 같다.

사랑이 없다면 신에게로 가는 통로 역시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 그것에 주저앉아서는 결코 신을 만날 수 없다.  


기실 우리는 사랑만 만났다 하면 그 자리에 주저앉기를 시도하지 않는가?

아니, 애초에 안주하려는 목적으로 사랑을 욕망하지 않는가?

슬퍼한다. 그런 것들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음을.

그러므로 내 삶 전체에 걸친 테마는 단연코 긴장! 


사랑은 마주보는 것인가,

혹은 함께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인가? 라는 논의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에로스와 아가페, 어느 것이 진정한 사랑인가?

라는 물음과도 같은 것. 


나의 전부로 너의 전부를 만나기!

그러나 결코 상대의 전부를 탐해서는 안 된다.

깨달음이 그렇듯 사랑은 생명 그 자체!

욕심을 내는 순간 사랑은 죽어버리고 마는 것을... 


사랑의 세계에도 역시 ‘찰나’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매 순간 살아 숨 쉬지 않으면 안 되는 그것.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꿈이다!

‘아차’ 안주하는 순간 꿈은 파도처럼 부서져 버린다. 


끊임없이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 순간 반짝반짝 살아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하는 그것!

그것이 사랑이다. 


또한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과 같다.

보통 그것의 유효기간이 짧은 것은

각자의 세계가 협소하기 때문! 


아기를 낳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데

어떻게 지속적으로 ‘살아 있음’을 유지할 것인가?

문제는 자기다움!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가 있어야 하는 것. 


사랑은 마주보는 것과 동시에 함께 한곳을 바라보는 것!

자기 고유의 세계가 없다면 마주 보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꿈과 이상이 없다면 함께 바라볼 곳이 없다.

하물며 서로를 탐하기만 한다면 서로를 소진할 뿐. 


자기 세계가 확고한 이는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연극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가는 것!

“너답지 않게 왜 그러냐?” 누가 나중에 물을 일도 없고

“나다운 게 뭔데?” 발뺌하며 변명할 일도 없다. 


나의 주인공은 꽃으로 치자면 화려한 장미도, 저 들판의 청초한 야생화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인적 없는 사막에 홀로 피어

뜨거운 태양과 거친 모래바람을 견뎌 낸

사막 선인장의 꽃쯤이 아닐까? 


스무 살 시절

내가 얼마나 예뻤었는지를 기억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분명코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부디 거기에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화려했던 시절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얼마나 찬란한지

그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슴 떨리는 일! 


우주 구석구석을 함께 날아다니는 낭만적인 모험을 하라!

아슬하지만 짜릿하고, 날마다 스러지지만 다시 더 크게 날아 오를 수 있다.

사랑은 찰나의 축제, 혹은 불꽃놀이.

매 순간 살아 있으려면 매 순간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날마다 벼랑 끝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

어떤 사람들은 으레 내가 상처 받지 않을 거라고 여기지만.

내가 상처를 받지 않을 거라고?

아니다. 난 그 분야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만, 다른 이와 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이 외부로 표시가 나지 않고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나는 날마다 스러진다!

그리고 날마다 다시 태어난다.  


그저 내 심연의 혓바닥으로 그 화인과도 같은 상처를 부지런히 핥아댈 수 있을 뿐이다.

찢어지고 벌어진 살덩이를 부여잡고 밤을 새워 통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눈물도 흐르지 않는데 날마다 운다.

해가 지면 나도 지고, 해가 뜨면 그제야 나도 뜬다. -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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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2-천재는 요절한다?

신비(妙)어록2-천재는 요절한다?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2. 11. 18:34




“천재는 요절한다!”

이것은 명제가 아니라 하나의 시선.

그렇다면 죽지 못한 천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인가?

어차피 인생은 불꽃! 무엇으로 그대의 가슴에 화인 하나 새길 것인가?


인간은 무엇이든 쉽게 잊는다.

쉽게 잊는 그 사람들 역시 시간 속에서 재빨리 잊혀 진다.

그들은 어쩌면 잊혀 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고,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고.

그러므로 그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일종의 허무!


천재는 누군가 기억해주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다만 살아 있기 때문에 빛나는 것!

태양이 그러하듯 빛나는 것은 스스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저 하늘의 태양을, 혹은 그 태양의 부재를!


싱싱한 활어처럼 펄펄 살아 숨 쉬지 않으면 안 된다.

조갯살 속의 진주처럼 영롱하게 빛을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이 우주에 홀로 살아남은 마지막 전사처럼

그렇게 철저하게 고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인가?


그것은 완성도!

무엇보다 완성도로서 승부하는 것이다.

어차피 요절천재가 될 수 없었다면,

자살에 한 번 이상 실패했었다면, 그리하여

살아갈 분명한 이유를 찾아냈다면 아주 오래 고독한 것도 좋겠다.


삶은 내게 통째로 하나의 종교이자 예술!

나는 매 순간 신을 그리는 성직자, 혹은 삶을 연주하는 예술가.

최고의 완성도를 위해 매순간 숨 쉬고 있다.

99.9 퍼센트에 만족할 줄 모르는, 단 0.1퍼센트를 채우기 위해

기꺼이 제단 위로 걸어올라 가고야 마는!


그 0.1퍼센트의 떨림이 바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한 자루의 검을 만들기 위해,

하나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장인(匠人)은 어떻게 제 뼈와 살을 깎았는지,

나는 그것을 잊지 않는다.


멍청한 여자, 못난 남자, 야비한 재산가, 비겁한 지식인

밥벌레들과 가짜 예술가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너나할 것 없이 변명하고 핑계대고 징징거리고 악다구니하는 사람들.

사랑하지만 결혼할 수 없기에 헤어진다는 이상한 사람들.

제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제 밖에서 구하는 정말 이상한 사람들


‘최고’에 열광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반감 또한 가지고 있고

천재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천재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천재는 완성하는 사람,

자기 삶을 최고의 작품으로 만드는 사람이지

결코 그들 들러리 인생들의 질투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광기에 들떠 술이나 마약에 찌들어 살다

홀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는 불행(?)한 자도 아니다.

천재란 자기 삶의 주인공, 자기 삶의 명장!

그러므로 어설픈 대중들의 욕구에 의해 탄생한

멍청한 자에게까지 그 이름을 빌려주어서는 안 될 것!


천재는 작품으로도 말하고 제 삶으로도 말한다.

제 삶 전체를 꿰뚫는 일관성으로 말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깨달음’으로 말하는 것이다.

환경이니, 시대니 애초에 핑계란 통하지 않는 법.

그러므로 미당 서정주는 가짜 중의 최고 가짜!


요절함으로써 영원해진, 젊음 그 자체가 이름이 되어버린 이상과 고흐

그렇다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직도 느끼하게 숨 쉬고 있는 많은 이들은

무엇으로 자기 삶을 정당화해야 할까?

거대한 물고기 앞에 속절없이 던져진 일개 미끼와도 같은 인간 삶.

무엇으로 일방적으로 내팽개쳐진 그 어색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는 그 어떤 인간도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단 하루를 살아도 이렇게 살자! 이런 생각, 이런 포즈가 없다.

혹은 제대로 된 모델케이스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진실로 말하자면 매 순간이 그런 순간이어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이 그 모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든 시작할 때는 타성에 젖지 않고 안주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끝이 가까울수록 완성도는 높아진다.

매 순간이 시작이며 끝일 때 우리는 그 삶 - 살아있음-의 설렘에 떨 수 있다.

젊음, 열정, 배짱,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쿨한 오만이랄까!

나이를 먹어도 늙지는 말아야 한다.


핑계대지 마라! 당신 삶은 오로지 당신의 것이다.

변명하지 마라! 아무도 당신 등을 떠밀지 않았다.

친한 척하지 마라! 이 우주에 당신 혼자다.

징징거리지 마라! 부끄럽지도 않은가?
천하의 황제가 온대도 절대 굽신거리지 마라! 매력 없다.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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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 2 - 하루씩만 살기

신비(妙)어록 2 - 하루씩만 살기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2. 9. 01:11




사람들은 가끔 타인에게 묻곤 한다.

“힘들지 않아?” 혹은 “하는 일은 어때요?”

그럴 때 대개의 사람들은 얼른 가부간의 대답을 하기 마련.

그러나 진실로 말하자면 그것은 타인의 근황이나 심경을 묻는 말이 아니다.

그저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한마디일 뿐!


사실은 내가 좀 힘들다고 털어놓고 싶은 것이다.

사는 거 재미있나요? 하고 묻는 것은

‘나는 사는 게 재미없다.’는 뜻.

동조를 구하는 듯한 그 흐릿한 눈빛.

그저 하루하루를 습관처럼 살아가지만 도무지 왜 사는지 낙이 없다.


그 눈에서 생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지만 그들은 이미 죽어 있다.

당연히 그것은 딱히 삶의 목적이 없기 때문!

왜 사는지,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라면 그저 맹목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


울고 싶은 이 앞에서 함께 엄살을 부려준다면

그들은 안심을 하고 제 이야기를 이어나갈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그저

영혼이 가난한 자들의 수다에 불과한 것!

대안 없고 논리 없는 넋두리들, 하소연들.


그들은 마치 꿈을 꾸듯 삶 속을 내달린다.

몽롱한 정신으로 날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해가며

뻔한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왜 살아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건강하고 오래살기만을 바라는 순진한 이들!


그런 뻔한 인간이 주인공이라면

누가 그 영화를 돈을 주고 보겠는가?

날마다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지겹도록 마주치는 것을.

TV만 틀면 그런 주인공들은 흔하게 쏟아져 나오는 것을.

굳이 돈을 주고 컴컴한 영화관에 한 시간 반이나 앉아있을 필요가 없다.


돈이 없어도 가난하진 말아야 한다.

목표를 가지는 것, 그리고 꿈을 키우는 것.

그것만이 이 황량한 삶 가운데 가히 집착할 만한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귀족적인 사치이다.

넉넉하고 풍요로워 매순간이 안락하다 할지라도 꿈이 없다면 그는 누구보다 가난한 자!


돈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사랑을 얻든, 자유를 누리든

당신은 그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것!

꿈은 당신을 살아있게 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꿈은 장대할지언정

그 걸음은 한 걸음씩이어야 한다는 것!

하루씩만 살기!

오늘 하루치의 계획을 세우고 지금 이순간의 목표에 도달하기!

그리하여 매순간 죽고 다시 태어나기!


해가 뜨고 지는 것에도 다 의미가 있다.

우리가 날마다 다시 태어나 새 하루를 시작하지 못할 거라면

그것을 위한 신의 부단한 노력은 그만 허사가 되고 만다.

태양과 달과 지구의 끊임없는 랑데부는 그저 허무한 쇼가 되고 만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미래를 말할 자격이란 없는 법!


오늘 하루만을 사는 것.

그것은 매순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실패도, 절망도 없다는 뜻!

생이라는 짧고도 긴 꿈, 자기 자신에게도 이벤트가 필요하다.

꿈은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바로 생명 그 자체이다.

내실을 다져야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축척한 뒤라야-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천만에!

꿈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키우는 것이다.

간직된 꿈은, 고인 물이 그러하듯 이내 썩어 없어지고 만다.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곰팡이가 슬고 벌레가 끓고 결국은 스러지고 만 자신의 꿈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무참히 살해된 꿈!

그것이 진정한 허무다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다.


날마다 꿈꿀 것!

통풍시키고 물을 주고 빛을 비추어 무럭무럭 자라게 할 것.

당신 꿈이 부패해 사라지기 전에.

이왕이면 가장 크게 꿈 꿀 것.

생존 따위로 쪼그라들지 말고 당신 자신을 장대하게 키울 것!


평화는 거짓이다.

욕망의 거세는 죽음이다.

지구도, 우주도, 그리고 신도 살아 숨 쉰다.

멈추지 말라! 그것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꿈꾸어라! 그것이 진정한 ‘삶’이다.


나의 히로인은 낮에도 눈을 뜨고 꿈을 꾼다.

그는 미래가 있는 인간,

현재를 삶으로써 미래를 달리는 인간이다.

꿈밖에 가진 것 없는 그의 오늘치 꿈은

그의 꿈 다이어리 356쪽에 기록되어 있다.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신비(妙)어록 2 - 사랑 3

신비(妙)어록 2 - 사랑 3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1. 29. 17:56



경계 지키기 3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그 경계와 경계가 맞닿는 곳.

그 아슬아슬한 지점에 사랑의 정수가 있다.

그러나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 그 날카로운 지점을 통과하게 된다.

각자의 경계가 서로에게 침투하여 어긋나면 관계는 당연히 그 빛을 잃게 마련!


사랑은 빛처럼 그저 존재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고개를 숙이면 그만 사라져 버린다.

연약한 아기처럼 섬세하게 그리고 예민하게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것.

고개를 숙이지 말 것!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도 당신은 얼어 죽을 수 있다.


인간들에게 있어 사랑이란 그저

점점 가까워지거나 혹은 아예 멀어지거나 둘 중 하나!

그러나 가까워지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멀어지는 것에도 미학이 있다.

자석과 자석 사이의 자기장처럼 인간 사이에도 경계선이 있다.

서로 밀착되면 될수록 서로의 자기장은 멀어지고 마는 것!


결혼한 이들, 혹은 오래된 연인들을 보라!

가까이 있지 못할 땐 전전긍긍 다가가려 애쓰다가

막상 다가가면 호시탐탐 도망가기 바쁘다.

멀리 있을 땐 숭배하기에 급급하다가

마침내 가까워졌을 땐 흠잡기에 열중이다.


그 참을 수 없는 간사함이라니!

다 제 자신을 낮추어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내 주제에 감히 멋진 사람과 가까이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

그래서 인간들은 신이 -우상이 아닌- 친구로서 바로 제 옆에 있어도 모르는 것이다.

이미 제 곁에 있는 모든 것은 자신처럼 하찮은 것이므로.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오로지 멀리 있는 것을 향해서만 손 뻗는 자들이 있다.

공간의 노예가 되어 정작 태양 아래서도 그 빛을 못 느끼는 자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타인의 경계를 마구 침범하는 자들.

사려 깊지 못하고 아둔한 자들.


안주란 그런 이들이 즐겨 마시는 독주인 것을.

서로의 경계를 넘어 타인의 땅을 즐겨 짓밟는 자들은 모른다.

제가 얼마나 많은 ‘관계’들을 죽여 왔는지,

또한 얼마나 무수한 ‘사랑’들을 질식시켜 왔는지를.

그러고도 여전히 가족에, 친구에, 사랑 타령에 목매는 인간이라니!


아무리 눈부시게 빛나는 ‘사랑’도 무지 앞에서는 그 빛 스러지는 법!

나의 히로인은 그래서 늘 그 경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사랑이 진정 사랑 그 자체일 수 있도록.

제 자신 언제나 사랑 그것일 수 있도록.

사랑이 질식하기 전에 언제든 미련 없이 훌쩍 떠날 수 있도록!


신은 이 순간 어쩌면 짓궂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 그예 인간의 한계에 절망하게 하는 것.

그리하여 오로지 신과 완전하게 소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토록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신의 심술!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신(神)만은 나의 히로인과 여전히 아니, 영원히 친구라는 사실.


-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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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 2 - 마법사는 아직도 살아있다.

신비(妙)어록 2 - 마법사는 아직도 살아있다.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1. 14. 10:00



-나의 히로인 ‘묘신’의 이야기


인간의 정신은 시간의 터널을 순식간에 통과한다.
언어로써, 혹은 생각으로써 미래의 한 시점을 표현하면
시공간의 순간이동이 일어난다.
그것은 불과 한 시점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 인간의 정신은 ‘신의 시간’을 경험한다.

말 한마디나 상상력으로 미래는 곧 현재가 되는 것이다.
희망을 이야기하면 현재는 곧 희망이 되고,
절망을 생각하면 사위는 즉시 절망에 휩싸이는 법.
산에 오르는 것으로 산이 되고 꿈을 꾸는 것으로 꿈,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바로 그것이 된다.

어릴 적, 나는 마법사가 되고 싶었다.
눈짓하나로 혹은 지팡이 하나로 사물이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
만화 속의 요술소녀처럼 마음먹은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신기(神技).
어쩌면 전지전능……. 신성모독이라고?
그러나 난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억해보라. 누군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무엇을 말할 것인가,
천진했던 예전의 당신도 자못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지 않은가?
아니면 아예 알라딘 램프를 통째로 가지고 싶지는 않았는가?
혹은 짝사랑하는 그가 나의 주문에 걸려
홀연히 오늘 밤 나의 창가에 나타나는 꿈을 꾼 적은 없는가?

별이 되고 싶었다. 하늘을 날고 싶었다.
간절히도 나는 이 세계를 넘어서고 싶었던 것이다.
일찍이 별의 꿈을 꾸었고,
그리고 언젠가부터 별의 마음으로 하늘을 난다.
동화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

나의 마법은 시간을 필요로 했던 것일까?
아니다!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내가 별의 마음이었기에 별을 그렸던 것이다.
나는 꿈을 이룬 것이 아니라 꿈 그 자체였다.
마법에는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

간절히 바라는 것.
그리고 주저하지 않는 것!
제가 꿈꾸는 바로 그곳으로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먹는 즉시 이루어지는 ‘마법’이다.
누구든 마법사가 될 수 있다.

도서관에는 천사가 산다.
수많은 책 속에서, 글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구절을 찾아주는.
그 천사가 인간의 마음속에도 산다.
제 주인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언제든 찾아줄 준비가 되어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그대 마음 속 천사에게 물어보라!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그는 매순간 영혼의 집을 짓는다

그는 매순간 영혼의 집을 짓는다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1. 2. 16:18



 

오래 전 로빈슨 크루소가 되겠다고 고사리 손으로 짐을 꾸렸던 적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소풍갈 때 매던 작은 배낭에 짐을 꾸리고 풀기를 수십 번,

이루지 못할 꿈은 그렇게 어린 나를 지배했다.

내 손으로 집을 짓고 먹을 것을 구하고 옷을 만들어 입는다면 얼마나 멋질까?

꼭 필요한 것 외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생활,

산에서 열매 따고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일상.

날마다 숲 속 곳곳을 탐험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저녁마다 붉게 타오르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일!

아홉 살 즈음의 나는 그런 꿈을 꾸었다.



오랜 연습 끝에 작살 쓰는 법을 익히고

마침내 물고기를 잡았을 때의 그 희열을 상상하면 지금도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한낮이면 깊은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고,

특이한 모양의 나뭇잎을 발견하면 그것으로 새 옷을 장만한다.

그렇게 종일을 뛰어다니면 헬스클럽이나 수영장이 다 무슨 소용일까!

소낙비를 그을 좁은 처마조차도 달콤한 것을.

지금도 나는 맨발에 흙을 잔뜩 묻히고 산짐승을 쫒아 다니고 있다.

숲 속을 헤매고 다니다 요상하게 생긴 짐승을 만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표적(表迹)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그 표적은 한동안 나의 탐구대상이 되는 것이다.

나는 모래사장을 누비고 수시로 물에 뛰어드는 자연인.

어릴 적 그 불가능할 것만 같던 꿈을 나는 그예 이룬 것이다.



자신이 살 집을 손수 짓는 일은 무인도에서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는 내 손으로 집을 지을 것이다.

세월이야 가든 말든 하나하나 진흙을 이기고 쌓아,

소박하고도 장엄한 토담집을 지으리라.

나무와 흙과 노동력만으로, 흙으로 만들었다는 것뿐 아니라

내 영혼이 아로새겨진 이유로 진정으로 살아 숨쉬는,

집안에 있어도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자연과 같은 집을.

나와 똑같은 영혼을 가진 집!

뜨개질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에 비할 수 있으랴!

나는 지금 나만의 무인도에 산다.



대자연의 품에는 그 무언가가 있다.

휘황한 네온사인이 없이도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 있다.

뜬금없이 시야를 가로막는 전깃줄이나

멋대가리 없는 시멘트 빌딩의 도시에는 없는 그 무엇!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을 바라 볼 수 있는 먼 풍경이다.

사사건건 가로막힌 도시에서는 먼 풍경을 바라볼 수 없고

하염없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에도 뭔가 그림이 나와 주질 않는다.

자연에는 황홀한 깨달음, 그 자체가 있다!

해가 지면 나도 지고 달이 뜨면 내 안에도 달 하나 뜬다.

산에 가면 산이 되고 물에 가면 물이 되는 것이다.

밤이든 낮이든 언제든 좋은 자리를 골라 불을 피우면 나는 또 날아오를 수 있다.

불 속에는 말로 할 수 없는 마력이 있다.

또한 그곳에는 어떤 세계가 존재한다.

불길이 타오르는 동안 나는 어느 새 다른 별 다른 시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인간의 무리에서 나오면 인간이 더 잘 보인다.

나는 매일 아침 솔개가 되어 병아리를 낚아채듯 삶의 정수를 끌어 올린다.

스스로 주관하라, 마치 신처럼!

인간사 희로애락, 초개와 같이 버려라!

그것은 신이라면 결코 빠져들지 않을, 한바탕 꿈.



나는 단호하다.

내겐 삶보다 생존이 앞설 수가 없다.

오히려 죽음이 나는 생존보다 가깝다.

그 만큼 삶에 대한 나의 태도는 진지한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삶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어설프게 집착하는 것만큼이나.

내 삶은 전쟁, 내게 소일거리 따위를 묻지 마라.

나는 여전히 일관되게,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삶과 만나지 못하는, 신과 만나지 못하는 인간은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보다 슬프고

무대를 떠난 배우보다 부조리하다.



오늘도 마당의 매화나무와 석류나무에

여러 종류의 새와 벌들이 하루 종일 놀다가 간다.

그 어떤 사람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찾아오는데도 이렇듯 반가울까?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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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계는 고독하다 2

그 세계는 고독하다 2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8. 12. 30. 15:46

인간의 가장 흉한 모습은 놀라는 모습이다.

그로 인한 호들갑과 흥분된 표정!

실제로 그런 얼굴은 추하게 형상화된다.

반면 아름다운 얼굴은 상대와 나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나와 너, 남과 여, 혹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등으로 나누지 않는다는 뜻!


오로지 인간이냐, 아니냐가 있을 뿐이고 그를 구분할 뿐이다.
이는 태산 같은 자부심으로써만이 가능한 일!
실제로 그런 사람의 얼굴은 아름답다.

표정은 맑고 눈빛은 담백하다. 웅숭깊은 사람!

아름다운 영혼이 아름다운 형상으로 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인간들이 흔히 말하는 사랑이란 신에게로 향해 가는 여정일 뿐!

갈수록 순결해지는 제 영혼을 감지해내지 못한다면

사랑이란 그 잘난 호르몬게임은 그저 작은 해프닝에 그치고 말 것이다.

스스로의 영혼과 대화하기에 성공한다면, 그리하여

신과의 만남에도 성공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그 순간 이미 완성된 것!


누구나 사랑에 빠져있을 때는 순간순간 놀라운 영적교감을 경험한다.

생각해보면 서로를 생각하는 것에만 몰두해 있는 두 영혼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신의 사랑은 결코 지치는 법이 없다.

나의 히로인이 매순간 그를 잊지 못하는 것을 보면!


세상에는 명상가로 불리는 사람이 있다.

혹은 도인이라고도 하지만 그 이름은 많이 왜곡되어 있다.

산이나 명상센터 등에서 기공훈련을 하는 이로 인식되기도 하며

부정적인 인식에서 사이비 혹은 교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철학적인 의미에서 사상가라 하겠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이미 히틀러가 왜곡해 놓은 초인,

종교의 냄새가 나는 진인, 신선의 느낌 선인,

머리에 기름부음 받은 사람, 혹은 씻어진 사람의 성자,

우월한 사람의 군자 혹은 천재!

그러나 천재는 어느 한 분야에 한정된 뜻으로 왜곡되기 쉽다.


부처 또한 종교적 한계가 있는데다 거창하다.

어쨌거나 기개로 따지자면 선비 같은 이를 말한다.

이른바 참사람이다!

생계에 거의 전 생을 걸고 세속적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현대의 인간상과는 구별된다.

지금 세상에도 그 선비 같은 이, 참사람이 극소수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당연히 친절이 언제나 부드러운 탈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웃음 띤 얼굴의 정치인과 시니컬한 표정의 노숙자, 누가 더 친절한 것인가?

활짝 웃는 얼굴로 타국의 정상을 얼싸 안는 부시,

인간이 싫다며 방문객을 문전박대하던 권정생 작가.

대화를 한다면 누구에게 더 인간다움이 느껴지겠는가?


인간적인 것이란 동정과 연민, 친절 따위를 말함이 아니다.

제 앞가림이나 잘 할 것!

주제넘은 배려는 오히려 타인을 성가시게 할 뿐.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생활을 나의 히로인에게 말하지 말라.

그는 그들의 모습에 결코 관심이 없다.


모범생의 삶에는 사실 관심을 끌만한 것이 없지 않는가.

교과서에 다 나와 있는 것!

유치원생만 되어도 흥미를 잃을 것이 뻔하다.

있다면 삶의 겉핥기에 골몰하느라 방치해 둔 그들 영혼에 관심이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섬에 산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몰랐던 일, 혹은 나중에는 필시 알게 될 일.

그러나 기다리지 마라!

지금 그대 마음 속, 무수히 많은 시간의 강을 건너라!

죽림칠현(竹林七賢), 그들은 인간이 아닌 자는 상종하지 않았다.


살다보면 가끔은 승려나 수녀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종의 동지애가 느껴지려나 하지만, 그러나 아뿔싸!

한마디만 나눠보면 그들에겐 인간의 겉모습만이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의 히로인은 그 어떠한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더 종교적인 인간이다.


양팔을 좌우로 벌릴 것!

서로간의 거리를 확보하는 것은 인간이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고독은 생명의 일이며 창조의 기본!

스키를 탈 때는 넘어지는 것부터 배운다.

인간 삶의 준비는 마땅히 ‘고독’이 되어야 한다.


좋은 의학도란 신의 전지전능함을 가진 이를 말함이 아니다.

좋은 운전자는 운전을 할 때 가능한 모든 사고에 대비한다.

당신도 고독할 준비를 서둘러라!

마땅히 외로울 권리를 주장하라!

인간은 삶이라는 작품을 기어코 완성해야 할 참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지성인은 늙지 않는다 3

지성인은 늙지 않는다 3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8. 12. 29. 16:35


 

전화기를 새로 장만하면 우리는 제일 먼저 전화번호를 정리한다.

그 와중에 내게 필요한 이와 필요 없는 이가 가려진다.

물론 전자는 살아남고 후자는 폐기되기 마련이다.

내 전화기에 상대방의 전화번호가 있다는 것!

그것도 여분이나 구색이 아니라 가장 먼저 마음이 가는 번호가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내게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어떤 존재일 것이다.

그런 번호는 물론 존재 자체로 의미가 된다.

매일 전화하지 않아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그 즉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안심하게 한다.

블로그를 새로 열어도 마찬가지다.


내가 좋아하는 혹은 필요한 사이트를 우선 링크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연결을 끊기도 한다.

전화기에서 상대의 번호를 지워버리기도 하고

즐겨찾기에서 어떤 사이트를 아예 삭제할 때도 있다.

링크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체가 바로 그것!

그것만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인간에게 위안이 될 뿐.

만약 내게 꼭 필요한 이의 주소나 전화번호를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얼마나 큰 낙담을 하게 될 것인가?

끈 떨어진 연이라는 말이 있다.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말도!


하지만 그 어떤 상황이 신과 떨어진 인간만 하겠는가?

피아노 없는 피아니스트? 무대를 떠난 배우?

아니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조국을 등지고 떠나는 망명자라 한들 그 만큼 비참할 리 있겠는가?

근원이 없기로는 엄마 잃은 아기, 혹은 기억상실자의 그것!


인간은 누구나 벼랑 끝에 서 있다.

그것을 인식하느냐, 못하느냐 일뿐. 아니,

그 아슬아슬한 곳에서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서 있느냐,

아니면 떨어지지 않으려 아등바등 들러붙어 있느냐 이다.

눈을 들어 먼 곳을 응시할 일이다.


아니, 눈을 감고 허공을 향해 한 발 내딛을 일이다.

안주하는 자는 모른다.

돈에 명성에 그 안락에 맛들인 자는 제가 서 있는 그곳이 벼랑인 줄 모른다.

그 중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행여 놓칠세라 콱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한 편 마침내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그저 가볍게 날아오른 자!

텅 빈 허공을 향해 한 발 내딛은 자 역시 그 허허로움에 중독되긴 마찬가지다.

확실한 건 인간은 그렇게 생의 영역을 넓혀간다는 것이다.

고립된 나만의 공간에서 타인까지의 공간으로, 또한 전 인류에의 공간으로.

광개토대왕이나 알렉산더왕의 그것처럼 제 영혼의 지도를 넓혀가는 것!


나의 히로인의 전화기에는 신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언제든 단축번호 0번만 누르면 곧 바로 그와 연결되는!

물론 신의 전화기에도 그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날마다 세상 끝, 벼랑 끝에 서서 아슬아슬 존재해도

나의 주인공이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 이유라 하겠다.


‘이해해’라는 말은 삼가야 한다.

같은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면!

인간은 ‘같은 경험’이라는 전제가 있을 때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아니, 그럴 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다.

이미 서로 간에는 길이 닦여져 있어 굳이 너와 나로 가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확신이 없을 때의 언어란

언제나 그 가치를 다하지 못하고 관계 속에서 죽어버린다.

언어는 홀로 살아 반짝거리되

서로에게 녹아들어 관계의 상승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우리들을 패배자로 삼는다.


한 인간이 또 다른 한 인간을 완전하게 안다는 것은 기적!

바로 신의 완전성으로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어설픈 감정으로 오버하지 말아야 한다.

호들갑 떠는 일의 대부분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깊은 허무는 소리 없이 다가온다.


-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아내가 결혼했다?

아내가 결혼했다?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8. 12. 21. 21:34

- 그여자 모욕하기 3

세상이 말세다, 여자가 너무 막 나간다?

살림을 하는 여자가 또 살림을 차리다니 말이 되느냐고?

영화를 소개하는 사회자가 제법 자기주장을 한다.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국으로 영화나 소개하지 않고 말이다.

누가 제 생각을 듣자고 했나?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세상 구석구석의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그 자의 말이 맞는 거라면 세상은 이미 멸망해서 존재하지도 않는다.

왜 남자라는 포지션에 갇혀서 스스로를 옭아매는가?

군가산점 문제나 여성부의 모종의 행보에 발작적으로 반응하는 남자들.

혹은 전쟁놀이하듯 장난감 하나 가지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남자들.


그들에게 있어 세상은 거대한 전쟁터이다.

맞다. 세상은 전쟁터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싸우는 전쟁터는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덜 떨어진 페미니스트들.

그는 마초와 다르지 않다.


여성성, 혹은 남성성에 집착하는 이들이 있다.

다소곳하고 수동적인 태도가 여성적인 것이라고 믿는.

거칠고 강압적인 태도가 남성적인 것이라고 착각하는.

누군가의 아내, 혹은 어머니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인 여자.

여자를 보호하고 지켜주겠다고 큰소리치는 남자.


중요한 것은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아니라 인간성이다.

아니, 인간의 신성(神性)이다.

인간으로 살지 못하고 단지 여자 혹은 남자로 산다는 건

세상을 반쪽밖에 살지 못하는 것. 아니, 성별이라는 감옥에 갇힌 것.

동물원 원숭이보다 낮다는 보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여성들의 언니, 오빠라는 말은 좋지 않다.

‘언니’는 원래 성별 구별이 없는 말이지만 현재는 여성전용 단어.

그 말을 들으면 찜질방, 미용실, 여자들끼리 순례라도 다녀야 할 것 같다.

동족끼리 동맹결성이라도 해야 할 듯한 압박감 내지는 거부감마저 드는 게 사실.

어쩌랴! 나의 히로인은 여자들과 동족이 아닌 것을.


연인이나 남편에게 오빠, 오빠를 연발하는 최강 비위의 그들.

낯간지러운 그 호칭과 제 독립성을 맞바꾸기라도 했단 말인가?

꼭 붙어 다니며 응석이며 엄살을 부리는 폼이 여간 예사롭지가 않다.

과연 제 숟가락은 제 손으로 드는지 한 번 물어보고 싶을 정도.

그러니 물색없는 남자들이 지켜주겠노라고 그렇게들 생색을 내지.


그런 밀착된 관계가 제 생을 파괴하는 줄 과연 그들은 모르고 있는 걸까?

타인의 생에 대해 그 권리를 보장받고 소유권을 주장하려거든

아예 납치를 해서 지하실에 가두든지 해야지 연애는 왜 하고 결혼은 왜 하나?

법이나 제도로 인간을 구속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더냐?

대부분의 인간들, 그들 안엔 저 유명한 미저리가 산다.


결혼이 무슨 개인의 영역에 침범할 권리라도 주는 줄 안다.

그들에게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 권리의 탄생을 의미한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함부로 개인의 영역에 침범하는 자들.

더구나 간통죄라니?

잘 놀다가 수틀리면 엄마에게 제 친구의 행동을 일러바치는 아이처럼.


인간이 덜 된, 아니 아예 인간을 지망하지도 않는 인간껍데기를 쓴 자들.

그 눈물겨운 연극이라니...

어차피 인생은 스스로 선택한 배역을 연기하는 것에 불과한 것!

왜 인간들은 자신의 배역을 선택함에 있어 그다지도 성의가 없는 걸까?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보통의 여자들은 자신의 남자가 "나는 왕이다!" 하며 우쭐댄다면,

또 실제로 그렇게 세상을 다 가진 잘난 사람이라면 아마 몹시도 흥분할 것이다.

자신의 남자친구나 남편이 왕이라면 자신은 자연히 왕비가 되는 셈이니까!

스스로의 행운에 흡족하여 춤이라도 추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남의 꿈이며 남의 인생, 제 삶이 아니다.


나의 히로인이라면 그 즉시 ‘왕’에게서 성큼 뒤로 물러설 것에 틀림없다.

자신 또한 엄연히 한 왕국의 왕이며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인.

왕의 그늘에서 왕비 자리 따위에 만족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제 영혼을 팔려면 적어도 한 제국의 왕쯤은 되어야 하는 것!

돈이나 안락 따위에 영혼을 팔다니!


나의 히로인은 왕비가 아니라 왕이다.

어차피 백년 뒤에는 흔적도 없을, 왕이 되지 못한 자들의 평가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주제넘게 타인을 배려한답시고 어설픈 행동하지 않으며

그저 애초에 제가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저기 멀리 신(神)의 길을 걸어가는 한 사람이 있다.-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동그라미 그리기 2

동그라미 그리기 2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8. 12. 11. 23:44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금이 있다.
그것은 인간 영혼의 영토이며 세계관의 한계, 가능성의 영역이다.
컴퍼스로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것!
스스로 그어 놓은 금 안쪽이 자신의 세계이다.
혹자는 그것이 국가와 사회, 혹은 인습과 편견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하겠지만
실은 죄다 겁쟁이들이 만든 것이다.
그 주체가 국가든, 사회든, 개인이든 겁쟁이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미리 금을 그어 인간을 가둔단 말인가!
 
 
우리는 -말하자면 -이브의 자손들!
역사는 그때 - 금기를 깨뜨리는 것으로 - 이미 시작되었다.
당겨진 활시위와 같고 발사된 총알과 같다.
어쩌겠는가? 활은 이미 시위를 떠났는데!
무엇을 핑계로 에덴동산의 금 안으로 다시 돌아가겠는가?
  
 
금지된 것들이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옭아 맬 삼천계명쯤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러니 신이 계명이나 계율 따위를 만들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신은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동성애를 금하지도, 성전환을 금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신, 자신에게 의존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은 스스로 금을 그어 그 안으로 숨어들고 있다.
혹자는 그곳을 신의 품이라 여길 테고
혹자는 또 그곳을 자신의 세계라고 여기겠지만 천만에!
그곳은 감옥이다.
스스로 지은 한계가 형벌인 감옥 아닌 감옥.
그 안은 안전할지 모르나 완전하지는 않다.
그리고 그 알량한 안전이란 실로 모래 위에 건설된 제국과 다르지 않다.
 
 
금 밖으로 나가야 한다.
아니,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
금 밖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세상에는 금 밖 세상을 여행하는 순례자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그들 순례자들의 자유를 질투하기 마련이다.
그들의 세계가 더욱 광대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일까?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들 화를 내겠는가?
하긴 그들을 질투하고 안하고 역시 각자 자신의 문제일 뿐이다.
 
  
오히려 인간들은 금 안에서 잘도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어떠한 일이든 주입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려든다.
프로그램에 의문을 가지는 대신 그에 손쉽게 편승하는 것이다.
금 밖 순례자들이 그렇듯 그들 역시 금 안 세상에 중독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기존의 세계관, 혹은 타인의 기준, 그리고 법과 제도.
금 안에는 중독될 만한 가치를 가진 것이 없다.
무엇 하나 영원한 것이 없지 않은가?
그것을 초월한 무언가, 이를 테면 신과 자연 같은 것 말이다.
 
  
사실 훈수 두는 이만큼 바둑을 잘 둘 수 있는 이도 없다.
진정한 고수는 바둑판 밖에서 바둑을 두는 이.
사랑 안에서도, 삶 안에서도 인간은 곧잘 장님이 된다.
건물을 보려면 건물 밖으로 나오라.
사랑을 보려거든 사랑 밖으로 나오라!
원래 밖에선 안이 잘 보인다는 사실!
제아무리 갖은 지식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그 한계를 숨길 수는 없는 법.
금 안이라는 자체가 바로 한계이기 때문이다.
 
 
패자와 영웅과 호걸이 험난한 생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나 명성은 루머와 악평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시대를 앞선 천재는 광기와 고독을 담보한다.
반면 단란한 가족과의 소박한 즐거움은 필부필부의 권리와도 같은 것!
인간에게는 각자의 스케일이 있다. -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8. 12. 11. 23:40

어렸을 적, 슈퍼맨이 여자 친구와 밤하늘을 나는 장면을 보곤

가슴이 두근거려 며칠 밤이나 잠을 설친 적이 있다.

유유히 날아다니기도 하고,

때론 멈춰서 그저 허공을 희롱하기도 하며,

흡사 지도 같아 보이는 인간세상을

마치 신이 된 듯 굽어보는 일.

옷자락 펄럭이며, 바람을 느끼며

시린 눈 가느다랗게 뜨며 창공을 가르는 그 기분이란!

 

 

 

상상해보라! 우리도 하늘을 날 수 있다.

날개가 없어도, 슈퍼맨이 아니어도,

꿈속이 아니어도 저 하늘로 뛰어들 수 있다.

나의 영화에 꼭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그건 단연코 비행장면!

김기덕 영화에 물이 빠지지 않듯이

나의 영화에 그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장면인 것이다.

슈퍼맨도 아니고 초능력자도 아닌 나의 주인공들.

그들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저  유유자적 하늘을 난다.

물론 낮에도 눈을 뜨고 꿈을 꾼다.

광속도로 날아올라 우주를 꿰뚫는 일이

존재를 얼마나 고양시키는지!

 

 

 

‘사랑’은 그 향기에 취해 날아오르는 것!

그 향기 이제 너무 독하다며, 잡은 손 놓지 않는 것이다.

날갯짓을 멈추는 순간 ‘사랑’은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마는 것을.

‘사랑’은 어쩌면 불구덩이와도 같다.

제 몸이 타들어가면서도 그 감미로움에 몸을 떠는 것.

불 속에 뛰어드는 하루살이처럼

그 불길 왜 이리 뜨겁냐고 원망하지 않는 것!

 

 

 

물론 연애나 결혼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신의 완전성!

우주가 그렇듯 허공은 우리의 고향이다.

유유히 날아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신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하여 온전히 신과 대화할 수 있다.

바로 신의 그 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신의 시간을 살면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사랑’이 된다.

그렇게 거인이 되어 시간을 훌쩍 뛰어 넘을 수도 있다.

기쁨이 슬픔으로 전환되는 것엔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뿐,

우리가 기뻐했던 일은 언젠가 반드시 슬픔이 된다.

또한 희망 역시 다름 아닌 절망에서 잉태되는 법!

한 순간 기쁨으로 날아오르는 새가 되지도 말고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뱀이 되지도 말라.

단지 그것들에 시간을 부여할 것!

시간은 가만히 앉아서도 우리를 다음 세기로 이동시키는 마법을 보여줄 것이다.

 

 

 

거인의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시간의 강을 건널 것!

허공에서 내려다보면 태산도 준령도 다 한 걸음이다.

마찬가지로 한 세기쯤 훌쩍 뒤에서 보면

지금 이 순간의 우리 자신을 타인처럼 그저 덤덤하게 바라 볼 수도 있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스스로를 바라볼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금 상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 오백년쯤 뒤에는 그저 빙그레 웃을 수 있는 일에 매달려

지금 제 자신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감정이란 믿을 수 있는 게 못 된다.

대신 생각하라. 끊임없이 생각하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거인이 되고 신이 되어 그렇게 생각하라.

아니, 그저 바라보라!

신이 되어 저 아래의 나를 바라보고

후세의 인간이 되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바라보라.

마침내 알게 될 것이다.

생각은 무엇보다 인간을 위대하게 한다!

 

 

 

인간은 멀리 있는 것을 동경한다.

가까운 곳의 예수와 부처는 멸시되지만

멀리 있는 동족과 노예는 추앙받는다.

예전에 살았던 이와 이미 죽은 이는 미화되지만,

바로 옆에 살아 숨 쉬는 현자는 결코 인정되지 않는다.

바로 시간과 공간에 우리가 매여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어떤 한계로 다가온다.

기실 가까이 있는 것은 결코 가까이 있지 않으며

멀리 있는 것 또한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부디 시간과 공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공간을 훌쩍 뛰어 자유롭게 날아오르고

시간의 터널을 유유히 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나’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훌쩍 거인이 되어 그 큰 걸음걸이로 성큼 하늘까지 가 닿아야한다.

사소한 일에 울고 웃는 내가 개미만큼 작아 보일 것이다.

처음으로 자신을 직시한다면 아마도 타인처럼 낯설어 보일 것.

 

 

 


인간은 삶 아닌 것들에 부지런하여 정작 삶 그 자체에는 게으르다.

자신을 바라보아야 할 때에 막상 타인을 보며

진정 보아야 할 것을 두고 엉뚱한 것을 보기 바쁘다.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의 주인공!

소중한 자신을 두고 왜 타인을 바라보는가?

매순간 자기 자신을 볼 일이다.

그리하여 매순간 타인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 일이다.

꿈이 있는 사람에겐 고통도 더 이상 고통이 아니며

절망도 절망이 아니다.

삶은 지속된다! -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단번에 날아오르기

단번에 날아오르기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8. 12. 11. 23:33



여기 한 단계 진화한 인간,

더 나은 종이 되고 싶다는 과학자가 있다.

열등한 인간으로 남고 싶지 않다는 그의 소망은

몸에 칩을 이식하여 로봇 인간이 되는 방법으로 실현되고 있었다.

상대의 신경계가 뇌를 자극하면 그의 생각을 읽는 것이 가능하고

그런 방법으로 말을 하지 않고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TV 다큐 프로그램으로 본 그는 하루가 다르게 로봇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그는 왜 애초에 한 단계만을 원했던 것일까?

 

단번에 날아오르지 못한다면 실패다.

아기새도 첫 비행에서부터 힘차게 창공을 가른다.

단번에 날아오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진리의 편에, 신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인간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신의 편에 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진리의 편에 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역사의 편에 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진보의 편에 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스스로에 물을 일이다.

신이라는 집에서 진리라는 옷을 입고

역사라는 친구와 진보라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가?

애초 인간은 신의 재현!

기실 신의 편에 서는 것이 가장 편안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야 아슬아슬하고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신의 옆자리야말로 가장 따뜻하고 안락한 곳!

 

우리는 보통 결혼을 하고 내 편이 생긴 것에 흡족해한다.

혹은 권력에 줄을 서고 든든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그 참을 수 없는 얄팍함이란!

위태로움이란!

반면 신이라는 후원자가 그 언제라도 든든히 내 뒤를 받쳐 주고 있다는 것.

날개 없이도 하늘을 날 수 있다.

신을 영원히 내 편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다.

 

신의 편에 선 사람에겐 매 순간이 소통이며 사랑이다.

몸에 칩을 이식하지 않고도 언제든 시공을 초월하여 소통할 수 있다.

차라리 깨달으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깨달음의 세계를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

엄마 품을 벗어나면 곧 진정한 세계가 펼쳐진다는 사실!

 

금 밖으로 나가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 세상을 보는 것,

온실 속 화초가 태양과 바람을 구하는 것,

그리고 조롱 속 새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는 것이다.

우물 밖에 나가면 새로운 세상이 있다.

온실밖엔 춥지만 멋진 세계가 있다.

조롱밖엔 아슬아슬하지만 자유로운 세계가 있다.

 

인간에게 비참한 일이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

혼미와 그 가운데서도 내달리는 몽유병 같은 삶, 그리고 뻔한 끝!

허공을 향해 과감히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보이지 않던 다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인디아나 존스가 성배를 찾은 것도 다 절벽 끝에서 한 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길 없는 길이 있다!

그것은 빛으로 된 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길이다.

눈을 감고 영혼의 발걸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절벽과 절벽 사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눈 부신 빛이 비치고 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온 몸을 던진다면 단번에 날아오를 수 있다.

그렇다면 허공을 유유히 비행하다가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매 순간 삶의 정수를 끌어 올릴 수도 있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는 명제를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을 나는 믿지 않는다.

생존과 짝짓기 외에는 생각하지 못하는 아둔함,

무엇보다 그 자위와 변명, 안주가 밉다.

또한, 그러므로 완전한 신에게 의존하여야 한다는 발상이 위험스럽다.

인간이 단지 신과 동물의 중간 지대에 사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삶뿐이다.

오로지 삶으로서 살아 있을 때

신은 내 곁으로 온다.

나에게로 와서 내가 된다.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아무도 모르는 세계가 있다!

아무도 모르는 세계가 있다!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8. 12. 11. 23:13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주인공의 친구, 혹은 주인공의 동생처럼 살고 있다

주인공의 친구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원래 자신의 삶이 없다.

자신의 룰이 없으므로 자연스레 세상의 룰에 입각하며

주인공에 맞서거나 추종하거나하여 그저 보조할 뿐이다.

요즘들은 매력적인 조연도 있다지만 조연은 조연일 뿐,

애초에 조연은 주인공이란 존재에 기대므로 포지션이 없다.

혹은 낮은 포지션을 가진다.

 

 

그들이 사는 세계는 스킨십의 세계,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 세계이다.

눈에 보이면 그것이 곧 존재인 세계.

온갖 말로 떠들어대지만 결국엔

서로의 말을 허공중에 날리는 곳.

자신의 법을 가지지 못하여 소통에 이르지 못하고

서로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엔 만나지 못하는 곳.

늘 사랑타령을 하지만 정작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며,

어른이 되면 시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이른바 반쪽어른들의 세계.

 

 

연인과 헤어진 다음에야 글이 좋아진다는 속설이

그 세계 작가들에게는 있다.

행복하면 글이 안 써진다는 이상한 예술가들의 세계.

스스로를 비련의 주인공으로 밀어 넣고서야

비로소 잠시잠깐 주인공이 되는 이들.

그렇게 쓴 애절한 사랑(?)의 말들은

역시 조연이거나 단역인 대중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반면 아직은 신비의 땅, 깨달음의 세계는 다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으며,

언제든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서로 교감할 수 있다.

물론 죽어도 죽지 않는다.

그들은 신(神)의 완전성으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태초에 그들은 서로를 초대하여 축제를 벌였다.

그들이 서로 친구가 된 것은 다 그 기억 때문이다.

나도 약속을 잊지 않고 매 순간 그 자리에 나가고 있다.

마치 인간들이 잠든 밤,

조용히 빗자루를 타고 나가 집회에 참석하는 마녀처럼!

인간지망생들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사랑타령이나 하는 자들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그런 세계가 있다.

 

 

신에 대한 사랑은 유효기간이 없다.

그들의 축제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곳의 지성인과 예술가들은

그리지 못해 붓을 꺾거나 쓰지 못해 절필할 일이 없다.

설산의 얼음구덩이에 빠진다 해도 얼음벽에 시를 새길 사람들.

두 평도 안 되는 독방감옥이라 한들 훨훨 날아오르지 못할까!

애초에 그런 운명으로 그 세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곳은 순간만이 존재하는 곳.

그리하여 영원이 춤추고 노래하는 곳이다.

그렇게 매 순간 죽고 태어나,

자신에게 늘 새로운 순간을 선사하는 곳.

먼 풍경을 바라보듯 거룩한 눈빛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곳이다.

혼자 있을 때면 온전히 신과 대화하고,

함께 있을 때면 축제를 벌인다.

신의 모든 순간을 공유하므로

그들에겐 매 순간이 소통이며 사랑이다.

사랑은 그들이 함께 온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

걷기보다야 아슬아슬하겠지만 걷는 이는 모르는 짜릿함이 있다.

 

 

그렇다. 깨달음은 바로 ‘사랑’의 깨달음이다.

<너와 내가 사실은 하나>라는 숭고한 진리를 절절히 체감하는 것.

말 뿐 아니라 실제로 제 가슴 활짝 열어 온 우주를 끌어안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하면 아니나 다를까 가슴은 뜨거워지고 온몸엔 열이 끓는다.

태양을 삼킨 듯 황홀한 느낌!

그렇다. 나는 그때 실제로 내가 이 우주를 삼켰음을 알았다.

 

 

부디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이란 스킨십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세계의 그것은 단지 어떤 행위를 말할 뿐이다.

기대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감동하는 일련의 스킨십.

그것은 주인공이 되지 못한 자들의 응석일 뿐 사랑이 아니다.

 

 

단언컨대 사랑은 그저 존재한다.

신이 그러하듯 사랑은 영원불변한 것.

신에 도발하고 신과 대화하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채 몇 명 안 되는 자들만이 가진

강렬하고도 거룩한 지성의 빛, 그것이 사랑이다.

오늘날 세계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스킨십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이야기.

지성은 지식인이 가진 것도,

무슨 박사 나부랭이들이 가진 것도 아니다.

마치 신처럼 사랑으로 충만한,

그들 자체가 바로 지성이다.

 

 

확실히 그들은 저 세계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단연코 삶에 바싹 달라붙어 있지 않는다.

수천 번을 만나도 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새롭다.

또한 그러므로 내일 다시 만날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득하다.

권태란 안주하는 자들이 매 순간 들이키는 독약!

설레는 가슴으로는 권태로울 수 없고,

세상 끝에서는 안주할 수 없는 법.

그들에게 있어 매 순간은 빛이자 꿈이자 설렘이다.

 

 

그들은 그렇게 꿈꾸는 눈빛을 가졌다.

또한 말로 못할 그 어떤 느낌을 가졌다.

손을 뻗으면 꼭 그 몸을 통과할 것 같고,

눈을 감으면 사라질 것만 같은

스치기라도 하면 온몸에 그의 향내와 빛깔이 스며들 것 같은

그 푸른 빛, 노란 빛, 연두 빛, 보라 빛들이

내 몸 구석구석 물들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멀리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노라면

마침내 이 지구가 풀썩 꺼져버릴 것만 같은!

 

 

오로지 한 순간에 제 모든 것을 쏟아 부으니 그런 것이다.

그 어떤 미련도 가지지 않고 늘 빈손이니 그런 것이다.

아무런 기억도 없이 그저 투명하니 그런 것이다.

사랑은 -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신처럼 거룩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오로지 그 사랑으로서만 소통할 수 있을 뿐이다.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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