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妙)어록2-자기 삶의 주인공 되기

신비(妙)어록2-자기 삶의 주인공 되기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7. 15. 17:22




영화든 드라마든 모든 주인공들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입이 가볍지 않다는 것!

그들은 웬만해선 수다나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또한 그 어떤 억울한 일이 있다 해도

섣불리 변명하거나 핑계를 대지 않는다.


그들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당당히 제 삶을 선택하고 주관하며,

스스로 주도권을 가지기 때문이다.

전전긍긍하고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신은 당연히 제 편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법칙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주인공들이 유유자적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주인공이라면 제 드라마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법!

감정적으로 미리 앞서나가 오버해서도 안 되고

늘어질 대로 늘어져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제 삶을 책임지는 것!

상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면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며

또한 저 혼자 북치고 장구 치며 상대의 개입을 방해하면

산만한 코미디가 되기 일쑤이다.

어떻게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극의 흐름을 끊지 않을 것인가?



이것이 관건이다.

그러므로 주인공이라면 필히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주인공과의 소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아니, 최대치의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바로 삶의 주인공임을!

자신이 바로 이 우주를 짊어지고 있음을!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주인공의 친구,

혹은 주인공의 동생처럼 살고 있다.

그저 들러리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무엇인가?

당신은 반드시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진정으로 당신 그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저 제 삶의 들러리에 머물 것이 아니라

삶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 그 삶의 정수를 맛봐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

비록 당장은 곤궁하다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주인공으로서 빛나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저 혼자 살지라도

언제나 제 삶의 진정한 주인공으로서 당당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그것으로만 주인공으로서 빛날 수 있다.

주인공은 예쁘고 잘 생겨서 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경험이 많다거나 공부를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세상의 많은 주인공 중에는 이와 상반되는 캐릭터가 많다.



대학을 졸업한 이보다는 아닌 이가 많고

강자보다는 약자가 많은 것이다.

세상의 주인공은 강자일지 몰라도

제 삶의 주인공은 약자들에게 더 많은 것!

그것이 어쩌면 일찍이 약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일 터!



애초에 스스로가 세상의 주인공이라 믿었던 자들이

온전히 제 삶의 주인공이었던 적이 있던가?

일찍이 세상의 무게가 가벼워 그저 만만히 여겼던 자들이

오로지 저 혼자 우주를 짊어졌던 적이 있던가 말이다.

그들은 세상의 주인공일지는 몰라도 제 삶에서는 들러리였던 것이다.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위대한 이름!

그러나 오늘도 여전히 ‘인간’은 보이지 않는다.

이 세상에 순응하느라 한없이 작아진,

인간을 지망하지 않는 자잘한 자들, 삶의 구경꾼들, 그저 관광객밖엔!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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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2-죽음은 없다!

신비(妙)어록2-죽음은 없다!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7. 9. 09:46




어떤 흉악범의 사형이 확정되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그 범인은 세상 사람들에게 이미 ‘죽어 마땅한 짐승'이 되어 있다.

그렇다!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아니라면 법정 최고형이 어찌하여 사형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인권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지만 나는 사형이 최고형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죽음은 또 다른 세계, 당연히 그것은 삶의 끝이 아니다.

그렇게 편안하게 그 미지의 세계로 건너 갈 수 있다면

오히려 가슴 설레야 마땅한 일이 아닐까?

나의 히로인에게 있어 형벌이라면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그 어떤 매듭도 없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이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에게 죽음은 일말의 불안 혹은 공포!

대게 죽음은 도둑처럼, 안개처럼 다가온다.

하물며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르고도

당당히 용서받는(?) 아이러니라니.

사형은 형벌이 아니라 용서다.


이제 꿈도 희망도 뭣도 없는 삶, 일거에 끝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행운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삶,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은 권태야 말로 죽음이다.

그 권태, 그 허무, 아니 그 죽음!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그 권태와 허무와 무지가 바로 죽음이다.

꿈도 목표도 없는 삶을 늙은 몸뚱이처럼 끌고 다니는 것!

그러나 인간 대부분이 그런 사실에 무딘 것은

자신의 삶이야말로 꿈도 목표도 없는 죽음, 그것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과 같은 삶이기에 더욱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는 것!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쯤 서 있는지 모른다면 그것이 죽음과 무엇이 다른가?

깜깜한 암흑, 앞도 뒤도 보이지 않는다면

제가 서 있는 그곳이 어딘지도 모른다면

그것이야 말로 지옥이고 죽음이다.



그래서 이런 암흑의 시기에 사람들은 더욱 짐승스러워지는 것일 터!

하지만 어둠 속에서 해야 할일은 마구잡이식 들이받기가 아니라

한 줄기 빛을 찾는 일이다.

그 빛, 자신뿐만이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꿈이 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인류는 어차피 운명 공동체!

나의 문제가 결코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한 남의 일이라고 해서 꼭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저 탐욕스런 짐승들처럼 그저 제 밥그릇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류의 운명을 짊어져야 한다.



내 집에 폭탄이 떨어졌다면 누구 한 사람만 다치는 것이 아니다.

설사 내가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해도 다치는 것은 똑같다.

몸이 다치지 않아도 마음이 다친다.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되는 것이다.

가족은 이미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실수를 했다면 가족 모두가 실수한 것이고

한심한 가족에 둘러싸여 있다면 나 또한 한심한 인간인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어찌 너의 일, 나의 일이 따로 있겠는가?

연결되어 있는 가족에게 제 3자란 따로 없다.



내 집에 폭탄이 떨어지면 전혀 상관없는 이웃도 다치고

그 도시도, 국가도 나아가서는 인류도 다친다.

나 한 사람의 안이함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그 선택이 인류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을 잃었다.


노무현의 등에 칼 꽂은 사람만이 살인자는 아니다.

제 자신이 바로 노무현인 것을 모르고,

손 놓고 앉아 구경만 했던 우리 모두가 다 그를 죽인 공범이다.

우리가 서로 이토록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바로 죄다.


그를 죽이고 나서야 그때에서야 우리 서로 하나임을 깨달았다는 것!

그러나 늦지 않았다.

아니, 이미 늦었지만 다시 또 일어설 수 있다.

그 주검을 양분으로 우리는 다시 잔인하게 일어설 수 있다.

인간이란 그렇게 어리석고도 잔인한 존재!


결코 다시 일어서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 죽음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

아니라면 우리는 다시 또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다시 또 그 양분으로 잔인하게 자라나야 한다.

죽음이 진짜 죽음이 되게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죽음이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죽음으로써 사는 것이 생명이고 자연이고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없다.

죽음과도 같은 삶이 있을 뿐이다.

또는 삶과 같은 죽음이 있을 뿐이다.



그는 죽어서도 죽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 하나하나가 인류를 단위로 사고하는 신(神)적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다.

짐승처럼 생각이 제 한 몸에 머문다면 그가 다름 아닌 짐승인 것!


지금 주위를 둘러보라!

당신의 눈에 무엇이 보이는가?

혹시라도 온통 어둠뿐이라면

그것은 당연히 지금이 암흑의 시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당신 혼자 눈감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떠야 한다.

또한 빛을 찾아야한다.

빛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

그것은 그저 신처럼 존재하는 것!

우리의 정신, 다만 어둠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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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2-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신비(妙)어록2-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6. 26. 09:27




‘깨달음’이라는 일대사건이후 과연 무엇이 달라질까?

간단하다! 비루한 일상에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것이 별안간 많은 돈을 벌거나

외모가 몰라보게 출중해진다거나 하는 따위는 아니다.

그저 운명은 사명이 되고 일상은 성사(聖事)가 된다.


물론 그것은 가장 지극한 경지일 때의 이야기!

대부분의 경우는 단지 마음이 편안해진다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정도.

그러나 고작 그 정도에 머물 것이라면 아예 바보가 되거나

사이코패스가 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깨달음은 단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욕망을 거세하는 것도 아니다.

제 존재자체를 꿰뚫음으로써 진리에 눈뜨는 것!

그리하여 존재는 존재 그 자체가 되고 삶은 삶 그 자체가 되는 것!

비로소 운명이 사명이 되고 일상이 성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기억의 총합’일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저 눈에 보이는 제 몸일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잃어버린 기억상실자는

그야말로 ‘나’를 잃어버린 것!


기억은 왜곡을 운명으로 하고 있다.

‘나’라는 것이 단지 기억이라면 ‘나’의 실체는 없는 것이다.

언제든 왜곡될 수 있고 따라서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

가족이라는 것도 결국 자신의 기억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왜곡되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



‘나’라는 것은 대체될 수 없어야 한다.

아니라면 내가 ‘나’의 복제인간인지

‘나’의 기억을 주입한 존재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나’라는 존재는 언제든지 사라지고 다른 존재가 ‘나’를 가장할 수 있는 것.

결코 그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고로 그것을 깨닫지 못한 당신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허깨비 같은 목숨 이어가고 있다고 해서 ‘존재’는 아니다.

시간은 없는 것!

일 세기만 훌쩍 뛰어넘어 보면 지금의 당신은 사라지고 없다.

무엇으로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식 혹은 족보라고 말하지는 말 것!

그것은 강아지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법 유명한 당신의 이름 석 자를 말하지도 말 것!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당신의 이름이지 당신 그 자체가 아니다.

당신은 사실 이름으로도, 재산으로도 결코 ‘존재’가 될 수 없다.


또한 ‘나’라는 것이 몸이라고 한다면

제 몸의 일부라도 잃어버린 자 역시 나‘를 잃는 것이다.

따라서 손톱도, 머리카락도 결코 잘라내서는 안 될 것이다.

몸의 때를 밀거나 세수를 하는 일조차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당연히 이는 두 말할 가치 없는 어리석은 생각!


인간의 몸은 살아 숨 쉬는 ‘생명’ 그 자체이다.

생명이란 끊임없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

내 온몸의 세포는 하루하루 죽고 다시 태어난다.

십년 전의 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고

십년 후의 나 또한 이미 지금의 내가 아니다.


‘나’라는 것이 고작 기억의 총합이라거나 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존재가 전혀 ‘존재’이지 않다는 말!

존재가 아예 존재가 아니라는 말은

곧 살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말이 된다.

살아있을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것은 곧 죽었다는 것이다.


아니, 살아 있거나 죽어 있거나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그토록 노력을 기울이는 그 일이

결국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같잖은 일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살 필요도, 죽을 이유도, 일할 핑계도, 놀 근거도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단언컨대 그것은 생각의 크기 혹은 범위이다.

바로 바운더리(boundary)!

‘나’란 나의 생각이 미치는 범위이며 발 닿는 영역이다.

혹은 나의 정신이 섭렵하는 그 모든 것이다.

과연 당신 영혼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혹자는 자기 자신 혹은 가족에 머물 것이고

혹자는 이웃과 사회, 국가 정도에 머물 것이다.

당연히 어떤 이는 이 지구와 맞먹는 가치를 가질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우주 혹은 신일 수 있다.

날마다 당신을 고민하게 하는 그것이 바로 당신의 존재유무를 결정한다.



결국 당신은 존재 그 자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인간 그 자체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존재’란 돈으로도 명성으로도 살 수 없는 것!

오직 일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만이 방법이다.

제 영역을 넓혀 불변의 존재로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제 한 몸과 가족, 이 사회와 국가에 머물러 있는 생각을

이 지구와 우주, 그리고 신으로 넓혀가야만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운명은 사명이 된다.

비로소 당신은 매순간 당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된다.

‘깨달음’이란 그렇게 당신이 -마치 신처럼-존재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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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2-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하기 4

신비(妙)어록2-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하기 4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6. 4. 16:14

 

“고독한 나에게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너라는 존재!

이 황량한 무인도에서

너는 내게 보물섬 그 자체이다.

그것은 네가 죽는다 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진실!

살아서의 네가 나에게 삶 그 자체라면

죽어서의 너는 내게 꿈 그 자체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금메달을 따서 당신을 위로해 주겠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당신의 그런 행동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


그러나 위로가 되었다면 그것은 그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지

어떤 행위 때문이 아니다.

자식이 효도를 하기 때문에 뿌듯한 것이 아니라

자식이란 존재 그 자체가 뿌듯한 것이다.


태양이 빛나기 때문에 밝은 것이 아니라

태양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세상의 빛이 되는 것!

마찬가지로 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의 존재 자체가 바로 인간구원인 것이다.



사랑은 어떤 행위와는 아무런 관계없는 일!

오로지 그 존재 자체로 사랑이다.

너라는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사랑이고

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에게는 구원이다.



당연히 신은 인간을 일일이 구원하지 않는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하며 탄식하는 당신은

그러므로 사랑이 식었다며 투정하는 권태기의 연인과 같다.

사랑은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달아오르는 것도, 식을 수 있는 것도,

또한 변하거나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태양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그저 신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내부에 사랑이 가득 차오르는 것!

당신 스스로 크게 자라나는 것!

마치 토토로의 나무처럼 단숨에 저 하늘에 가닿는 것!

그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렇게 매순간 신의 영혼으로 숨 쉬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신이 되는 것!

매순간 공기의 존재를 의식하는 것이고

매순간 태양의 존재를 잊지 않는 것이다.



숨을 쉴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공기의 존재를 의식하고

깜깜해지고서야 태양의 존재를 기억하는 어리석은 이들!

그러나 사랑이란 숨 쉬는 그 순간순간 공기를 의식하고

이 우주가 사라지지 않는 한, 매순간 태양의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다.



사랑은 네가 거기 있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충분한 것!

김연아가 자랑스럽다면 그것은 그가 김연아이기 때문이지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노무현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한 것!



사랑은 존재 그 자체!

네가 있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 사랑이고 위로이다.

무언가를 해달라고 매달리는 것은

바로 당신의 내부가 텅 비워있다는 것!



자식이 효도를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부모는 없다.

노무현이 무언가를 해주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국민은 없다.

네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신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존재의 증거는 되지 못한다.



물론 교과서 외워대는 가짜 지식인들은 예외일 것!

저들은 효도목록을 짜놓고 자식들에게 요구할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법이란 책도 아마 구비해 놓았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자기보다 높은(?)사람에게는 끊임없이 매달릴 것이다.



저들이 사랑을 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저들은 결코 알지 못한다.

사랑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

그것은 오히려 제 자신이 크게 자라나야 하는 것임을.



저들에겐 제 자식과 남의 자식이 다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그저 하나가 되는 것!

세상의 아이들이 다 나의 자식이어야 한다.

세상의 노인들이 다 나의 부모이어야 한다.



인간들 모두가 나의 형제이고 친구인 것이다.

당연히 그들과 무언가를 나누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족이다.

나는 단지 그들이 인간이기를 바랄 뿐!


그렇다면 죽어서도 존재하는 것!

하늘이든 어디든 네가 거기 어딘가에 있기에 충분하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 것처럼

너는 죽어도 내 안에서 다시 사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저 인간인 것!

그리하여 존재하는 것, 하나 되는 것!

비로소 사랑이다.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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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2-꿈을 키우기3

신비(妙)어록2-꿈을 키우기3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5. 28. 18:56



지금 이 땅에서, 짐승이 점령해버린 이 척박한 인간의 땅에서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면 당신은 인간이 아니다.

누가 뭐래도 인간은 인간과 더불어 살아야 하거늘

지금 이 세상은 오로지 짐승들만이 살아 설쳐대고 있다.

바야흐로 짐승이 인간을 멸시하는 시대!

 

 

인간이 인간이라는 이유로 핍박받는 시대다.

그러나 인간이라 함은 자기세계가 있는 자!

꿈과 목표를 가지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자!

기존의 룰과 법칙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탐험가들은 종종 죄인이 되고 범죄자가 된다.

꿈이 없는 세상에서 꿈을 이야기 하고

희망이 없는 땅에서 희망을 노래한다는 죄목이다.

인간이 아닌 자들 앞에서 인간을 선언한 죄목이다.

저들은 꿈과 희망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짐승들은 원래 꿈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저들이 저토록 악착같이 설쳐대는 것은

다 자기세계가 없는 짐승들이기 때문이다.

그 영혼의 공허함 때문이다.

이 인간의 땅에서 쫓겨나면 그 뿐이기 때문이다.

 

 

죽으면 진짜로 죽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세상은 벌써부터 죽은 자들의 것!

그들 죽은 자들의 몸부림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 영혼 없는 자들의 야비함이 나를 분노케 한다.

 

 

옛날에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는 선비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자들은 아예 상종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인간이라면 짐승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말아야 한다.

승냥이나 이리떼, 혹은 하루살이 날파리들에게

무슨 눈이라도 있고 귀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알맹이가 없다.

눈이 있어도 보지를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를 못한다.

하늘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신(神)이 있어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돼지처럼 제 밥그릇에만 코를 처박을 뿐이다.

철학이 없고 생각이 없고 염치가 없는 자들이다.

 

 

인간이라면 그들 짐승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꿈이 없다면 그는 누구보다 가난한 자!

가난은 숨길 수 없다.

그들은 기름진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가난에 찌들어 있다.

 

 

영혼의 가난이 물질의 가난보다 허술하여

훨씬 들키기 쉽다는 것을 아는가?

자신의 세계가 빈약한 이는 쉽게 드러난다.

그것은 육안으로도 아주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혼의 부자는 알아보기 어렵다.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은 고귀할 뿐 아니라

그만큼 그것을 본 이도 적기 때문이다.

태초부터 고대에 몇 명이, 그리고 19세기에 두어 명,

현대에 한 두 명 정도가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물론 위대한 정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 있는 것!

 

 

인간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

저들 짐승과는 달리 자기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세계에서 언제까지나 펄펄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다.

 

 

인면수심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저들은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짐승일 뿐!

당신도 그를 가려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인간은 먹이에만 반응하는 짐승이 아니라

꿈을 꾸고 사랑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

 

 

사랑이라는 것이 저 짐승들의 사랑 놀음이나

연애, 결혼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당신도 알 터.

그것은 인간이 오로지 인간으로서 당당히 사는 것!

매순간 삶의 정수로서 연결되어 소통하는 것!

그리하여 완전한 ‘인간’으로서 서로 만나는 것이다.

 

 

돈이 없어도 짐승이 되진 말아야 한다.

매순간이 안락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짐승의 삶이라면

당신의 존재가치는 단 0.1퍼센트도 없는 것이다.

짐승으로서라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죽어도 그 누구하나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신비(妙)어록2-당신은 죽지 않는다2

신비(妙)어록2-당신은 죽지 않는다2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5. 26. 16:12




배부른 돼지가 태연히 '인간'을 죽이는 곳!

여기는 소설 속 가상의 무대가 아니라

공포 영화 속 폐허의 도시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이란 곳이다.

인간이 아닌 자가 '인간'을 죽이는 더러운 곳!


‘인간’을 선언한 자는 기어이 물고 뜯고 죽이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이를 끝내 떠밀어내고야 마는,

무지하고 잔인한 짐승들이 판치는 세상.

그렇다! 세상은 오로지 인간의 땅이어야 하거늘

현실은 더러운 짐승의 땅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결국은 ‘인간’을 선언한 자는 모두 사라지고

짐승들만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뻔뻔하게 숨을 쉰다.

그 느끼하고 역겨운 공기에 진정한 이들은 죄다 질식 상태!

세상은 이미 ‘인간’이 살 수 있는 땅이 아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자기만의 세계가 필요한 것!


‘인간’으로 살고자 하는 이라면 자기만의 왕국을 건설해야 한다.

펄펄 살아 숨 쉬려면 이 짐승의 땅을 벗어나야만 한다.

그곳에서 진정으로 살아 숨 쉴 수 있다.

마음껏 세상을 비웃을 수 있다.

비로소 우리 ‘인간’만의 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선택해야만 한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세상과 적당히 거래하여 인간이 아닌 채로 배부르게 살 수 있다.

아니면 ‘인간’임을 선언했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비정상이 될 수 있다.

죄인이 되고 범죄자가 되고 끝내 ‘예수’가 될 수도 있다.


하루를 살아도 ‘인간’으로 살 것인가?

천년만년 짐승인 채로 비루한 목숨 이어갈 것인가?

여태껏 당신은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한 ‘인간’이 역사가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또한 아직도 그 역사를 물고 뜯는 더러운 승냥이 떼들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인간’에 대하여 무지한,

그리하여 잔인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으로 잔인한,

제가 한 언행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도 모르는,

근본도 철학도 없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염치없고 생각 없는 자들도 모조리 지켜보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는가?

당신의 모든 행동과 거취는 반드시 그 정체성에서 나와야 한다.

철저하게 짐승으로 일관하든가,

아니면 완전한 ‘인간’으로 일관하든가 둘 중 하나이다.



그 어떤 변명도 구차할 뿐이다.

한 때 물고 뜯고 기어이 죽였던 여배우가

이제는 은퇴하여 다시는 그 바닥을 되돌아보지 않으니

염치없고 생각 없는 짐승들은 그렇게 주접을 떨었었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여배우여, 언제 돌아오려는가? 배우라면 연기를 해야 하지 않는가?”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오늘 저 승냥이 떼와 염치없는 자들과 한 치도 다름없이 똑 닮았다.

당신도 '인간‘이려면 결정을 서둘러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가쁜 숨 몰아쉬며 짐승의 땅에 빌붙어 살 것인가,

아니면 당당하게 가슴 펴고 ‘인간’의 땅에서 살 것인가이다.


중간지대란 원래 없다.

그 곳에 사는 당신은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다.

그 많은 하루살이 벌레들처럼 그저 태어났다 죽어갈 뿐이다.

아니, 당신은 아예 이 지구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대대손손 자손이 이어진다고 당신의 존재가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족보의 이름 석 자가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까? 천만에!

꿈도 목표도 없이 그저 짐승처럼 제 배 채우기에만 급급했던,

그저 세상 눈치 보기에만 바빴던 이를 누가 기억하겠는가?

‘인간’은 그의 꿈으로, 못 다 이룬 꿈으로 기억되는 것!

결코 그 이름만으로 누군가를 기억하지는 않는다.



적당히 세상에 비위맞추고 타협할 수 있는 이라면

그리하여 숨을 쉬는 데 큰 지장이 없는 이라면 가라!

당신은 ‘인간’이 아니라 일개 벌레일 뿐이다.

‘인간’이라는 숭고한 이름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

오염된 공기에 질식하여 죽어가는 카나리아들의 것이다.


그들 진짜 ‘인간’은 세상에서는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자기 세계에서는 더욱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오히려 이 더러운 세상에서 그나마 쫓겨나면 그 뿐인 자들,

자기 세계가 없는 자들이야말로 죽은 것!

그를 알기에 짐승들은 더욱 악다구니를 하는 것일 터.


그런데도 세상과 타협하라고?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일단 먹고 살아야 꿈을 이룰 수 있지 않느냐고?

웃기지 마라! 나의 히로인은 저들 짐승과는 다르다.

또한 중간지대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멍청이와도 다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당신도 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과연 세상과 타협하여 굴복하라고 말해줄 것인가?

무조건 경쟁에서 이겨 떵떵거리고 살라고 말해줄 것인가?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살면 그뿐이라고 말해줄 것인가?


세상에 아부하지 않고 세상과 거래하지 않은 채로

당당하고도 독립된 자기만의 세계를 건설하기!

그리하여 세상다움이 아닌 자기다움으로 승부하기!

우리 반드시, 세상과 거래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우리'인간'의 할 일이다.
못 다 이룬 꿈 두고 먼저 가신 님의 일이기도 하다.
그 꿈으로 우리 연결될 수 있다.
그 꿈으로 연결되어 '인간'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 진정으로 하나될 수 있다.



-꿈을 키우기2,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신비(妙)어록2-꿈을 키우기

신비(妙)어록2-꿈을 키우기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5. 23. 10:42



배부른 돼지들은 말한다.

“돈이 없는 사람은 꿈을 포기해야 하는 거야.

꿈은 먹고 살만한 자들이나 쫒는 거지.

넌 아직 세상을 모르는 구나! 쯧쯧.”

이해할 만하다. 그들은 꿈이 없는 자, 죽은 자들이다.


지금 당신의 비참은 가난한 것이 아니고,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고,

그저 배부른 돼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먹고 사는 문제가 그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음으로써

아직도 인간이 아닌 돼지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신은 당신을 대화상대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의 비참은 결국 바로 그것이다.

신은 당신을 사랑하거나 증오하지 않는다.

아니, 신은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신에게 있어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에게 기복하는 일이 민망한 이유는 바로 그것!

그것은 인간이 일개 개미에게 관심이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의 입장에서 일개 벌레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존재.

마찬가지로 신의 입장에서 당신은 그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다.

아니, 존재조차도 아닌 그 무엇이다.


당신이 신을 믿거나 또한 열렬히 따른다고 해도

그것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소통되지 않는 일방적인 관계가 있을 리 있는가?

어머니도 아기의 미소로 인해 어머니로 다시 태어나는 것!

당신은 어떤 경우에 신이 미소 짓는지 알지 못한다.


당신의 기복은 그러므로 주인의 은혜를 바라는 노예의 마인드!

그렇다면 신이 당신의 삶에 긍정적으로

혹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당신 옆에 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

신이 당신을 대화상대로 여길 만큼 당신 스스로 크게 자라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이상적인 관계란 바로 친구!

마치 친구처럼 신을 백퍼센트 이해할 수 있는 동등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신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신이 되어 보아야 한다.

세상 모든 일을 신이 되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권력이 아니라 그의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의 주인공처럼 신의 권력을 탐한다면 실패다.

이 우주의 대표가 되어 세상을 운용한다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그런 눈높이와 마음가짐이 자신의 눈빛과 언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한다.

이 세계의 법과 규칙과 도덕에서 벗어나 다만 스스로 존재하여야 한다.

자신의 삶을 세상의 룰이 아닌 스스로의 룰로 선택하고 결정지어야 한다.


그렇다면 신만은 당신을 알아 볼 것이다.

물론 세상의 바보들은 여전히 당신을 비웃을 테지만

신은 그런 당신을 향해 미소 짓는다.

그 신의 미소를 매순간 볼 수 있다.

신에게 의존하여 어리광부리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친구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신과 연결되는 것이다.

당연히 세상 어떤 권력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 어떤 보험과 저축으로도 살 수 없는 안정감이 있다.

세상의 그 어떤 사랑 놀음과도 비교할 수 없는 희열이 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 없을 뿌듯함이 있다.


신과 눈높이를 나란히 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리하여 일개 인간의 비참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생의 가장 참된 가치이다.

배부른 돼지들이 자기 몫의 먹이를 찾느라 전전긍긍할 때

신과 연결된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의 기적에 전율할 것이다.

마침내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것은 신이 당신에게 선물한 기적!

마침내 신에게로 가는 여정이다.

당신의 그것처럼 당신의 꿈도 나날이 진화해야 할 것!

그렇다면 우리 그 꿈을 통해 신과 대등하게 만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꿈을 쫒을 수 있다고? 천만에!

그것은 당신의 핑계이며 변명일 뿐.

변명하지 말라!

핑계대지 말라!

당신의 생은 오로지 당신의 것이다.


나의 히로인은 당신이 보기에 세상을 모르는 바보!

그러나 세상은 눈치 보거나 비위 맞추거나 아부할 대상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땅일 뿐이다.

인간이라 함은 세상에 굴복하여 꿈을 잃고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다움과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 자라 신과 대화하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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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2-인간은 없다3

신비(妙)어록2-인간은 없다3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5. 21. 15:54



사실 나의 히로인을 만난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그를 만남으로 인해서 내 삶은 통째로 바뀌었던 것!
그는 아주 특별하고 보기 드문 존재였지만

그저 좀 남다른 정도라고 여겼던 걸까?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물론 나는 처음부터 알았다.

그와 나의 만남이 얼마나 큰 빅뱅을 일으킬 것인지.

때문에 애초에 그와 나의 만남을 이른바 거룩한 만남이라 명명한 것!

하여간 그와 비슷한 캐릭터를 만나 보았던 것은

아마 일 세기 전쯤의 일일 것이다.


21세기의 인간답게 아주 세련된 포즈를 가진 그는

당연히 일 세기 전 그보다 훨씬 진화해 있었다.

자기세계에서 비롯된 온전한 자기다움.

또한 나노단위의 예민한 감각.

그로 인한 성스러운 분위기에 당당함까지.


그는 한 마디로 말해 스타일리시하다.

당신은 아마 영원히 볼 수 없겠지만,

그의 외모에 대해 말하자면 다른 사람과 달리 눈이 세 개 있다.

또한 유난히 크고 아름다운 날개도 있으며

유니콘처럼 길고 하얀 뿔도 있다.



지금도 그는 자기만의 왕국에서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노니 그를 이해하려 하지 말라!

당신이 삶을 끝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결코 당신의 이해범주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이 그의 정체성!

그의 세계는 어떤 한계를 벗어나 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존재하며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한다.

그가 사는 곳은 바로 신의 땅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는 제 정체성에 관한 일이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양보하지 않는다.

때문에 보통의 관객들은 더욱 그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적당히 눈치보고 살아 온 이라면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일 터!



당신은 결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차라리 모른다고 고백하라!

그와 최소한의 대화라도 나눌 수 있으려면

단 한 번 눈빛이라도 스칠 수 있으려면

그저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수밖엔 없는 것!



너는 왜 눈이 세 개냐고 따져서는 안 된다.

물론 왜 날개나 뿔이 있냐고 물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

그는 당신과 달리 그렇게 생겼을 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존재할 수 있었던 것!



나의 히로인은 다만 인간으로서 존재할 뿐,

이 세상 혹은 당신에게 아부하거나 비위맞추려 태어난 것이 아니다.

결단코 그가 왕좌에서 내려올 일은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내 영화엔 그가 다른 이들과 대화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신과 대화하는 자, 그 모습 그대로 묘사될 뿐!


하여 그가 서 있는 곳은 언제나 벼랑 끝!

그러나 그것은 전술이 아닌 삶의 한 방법이다.

그것도 유일한, 그만의 삶의 방법!

오직 신의 길을 가는 자만이 알 수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길은 둘 뿐이다.


커다란 날개 퍼덕이며 유유히 하늘로 올라가든지

아니면 미련 없이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일!

그러니 내 영화를 보기 전엔 미리 알아 두어야 한다.

그 아슬아슬한 삶의 방법이 그의 유일한 숨쉬기라는 것을!

그는 내가 아는 유일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신비(妙)어록2-인간은 없다2

신비(妙)어록2-인간은 없다2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5. 20. 13:14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은 존재, 그 의미를 잃어버리는 일!

그리하여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일!

나의 히로인이 이 세계에서 사라져가는 이유이다.

그의 몸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이유이다.

그는 마침내 투명하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를 볼 수 없다.

당신이 밤낮으로 그의 집 앞을 지킨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당신도 모르게 마치 유령처럼 당신의 몸을 통과해 버릴 것이다.

설사 당신이 그를 알아보기 위해 명탐정을 고용한다 해도

그의 참다운 모습을 만나 보기는 어렵다.


물론 당신은 그와 길거리에서 스쳐 지났을 수도 있고

날마다 헬스클럽 옆자리에서 함께 운동을 했을 수도 있다.

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을 수도 있고

쇼핑센터에서 무수히 마주쳤을 수도 있다.

혹은 옆집에 살수도 있고 심지어 오래된 친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따위는 유리한 조건이 되지 못한다.

분명히 말하건대 당신은 나의 히로인을 볼 수 없다.

당신의 눈에 그는 그저 매력적인 어떤 여자일 뿐이다.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의 모습이 아니라

당신 자신, 혹은 모래알처럼 많은 다른 이들의 모습이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눈에 보이는 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

당신이 보는 그는 그가 아니라 당신의 '생각'이다.

당신 머릿속에서 지어내고 색깔 입힌 당신의 주인공!

당신이 세상다움을 적당히 빚어서 만든 당신의 자식, 당신의 인형일 뿐이다.


자기 세계가 없다는 것은, 그리하여 자기다움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그것은 당신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들리지 않게 한다.

당신을 한없이 작게 하고 또한 희미하게 한다.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게 한다.


그것은 참을 왜곡하고 진정한 것을 보이지 않게 하는 것!

당신에겐 나의 히로인이 보이지 않겠지만

나의 히로인에겐 당신이 보인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움에 몸부림치는지, 죽어 가는지.

당신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얼마나 허무한 노력을 기울이는지.


그는 세상 가장 완전한 세계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세상다움에 섞어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기다움으로써 이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세상다움과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남들과 같은 것,

그리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것들에 안심을 하지만

나의 히로인은 그 정반대의 경우라야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정말로 참을 수 없는 것은 죽은 것!

흐리멍덩한 눈빛과 공장에서 막 찍어낸 제품 같은 인생들.


세상이 강요한 똑같은 사고방식에 비슷비슷한 편견들. 그리고 뻔한 종말!

당신은 단지 이 세상의 일원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매순간 스스로의 존재감에 충만할 때에야 비로소 살아 있는 것!

자기다움만으로 마침내 홀로 우뚝 서서

세상 가장 큰 존재인 신과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온갖 종류의 만남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

그러나 참다운 만남이란 오로지 인간 대 인간의 그것!

가족도, 친구도 가족이나 친구 이전에 한 인간일 뿐이다.

그저 가족이나 친구, 지인 밖에 되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그의 이름을 부르지도 말라!



그는 인간이 아닌 자에게는 결코 보이지 않는 존재이며

또한 함부로 제 이름 들려주지 않는다.

물론 ‘인간’이라는 정의에는 반드시 ‘신의 친구’라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홀로 독립하여 언제나 유유자적 신의 숨소리를 듣는 자만이

단언하건대 그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일은 세계와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

그것은 말하자면 자신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당신이 삶을 깨닫는 문제에 있어 친절한 것!

바로 바보들에게 충격주기.

잠자는 이를 흔들어 깨우기.


죽은 자를 다시 한 번 죽이기.

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하기.

거대한 동그라미 그리기.

그예 우리만의 제국 건설하기.

그렇다. 누구나 자기만의 섬에 사는 것!



타인의 생활을 그에게 말하지 말 것!

그는 오로지 생생히 존재하는 것들에만 관심이 있다.

모범생, 혹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미 그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세상이 강요하고 세상이 정해준 룰.

변명과 핑계로 점철된 일상.


그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좁은 바운더리.

그렇다. 그는 그 안에서라면 질식할 수밖에 없는,

온전히 살아 숨 쉬는 존재이다. 바로 최고의 인간!

사실 세상에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인간의 탈을 쓴 자가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여자와 단지 남자, 그리고 최고의 인간이 있을 뿐이다.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신비(妙)어록2-인간은 없다

신비(妙)어록2-인간은 없다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5. 19. 16:13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배우가 있다.'

얼마 전 기사에서 본 글이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아줌마가 있다.'

가끔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인간의 탈을 쓴 자들이 있다.


단언컨대 인간이란 없다.

이 황량한 들판, 나의 히로인은 언제나 신처럼 홀로 살아가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별은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곳!

이 세계가 무인도가 아니라고 느끼는 자 역시 아직은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진정으로 살아 있는 자가 그립다!


그렇다.

내가 이 지구상 인간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 인간들을 살해한 것이나 같다.

그것은 내가 그들을 무시해서라기보다,

인간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린 것!


말하건대 ‘안간'이라함은 세상의 룰, 즉 세상다움을 버린

각자 자기만의 룰,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자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그저 눈에 보이는 껍데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보이지 않는 바로 그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신이 이 지구상에 올 때는 언제라도 그것을 묻기 위해서다.



바로 당신!

그렇다.

당신도 지금 ‘인간선언’을 서둘러라!

이 지구상에 인간은 없는 것이다!

당신이 ‘인간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신은 죽었다!’

일 세기 전 니체는 이렇게 말했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다시 말한다.

‘인간은 없다!

다만 인간지망생들이 있을 뿐.’



하여간 사람들은 종종 나의 히로인에 대해 말하곤 한다.

여자를 증오한다. 혹은 -남자 보는- 눈이 높다.

아니면 -인간에 대해- 지나치게 까다롭다.

그러나 천만에! 그것은 뭘 모르는 소리이다.

내 보기엔 다른 이들이 지나치게 게으르고 무성의하다.


잘 먹고 잘 살기만 한다면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어도 좋다는 나태한 태도!

각자 여자, 혹은 남자라는 동물로서

그저 짝짓기에만 관심 있다는 저속한 포즈!

나의 히로인은 그들 인간이 아닌 자들에게 관심이 없을 뿐이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히로인에게 있어 그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솔직히 길가에 걷어차이는 돌멩이를 보는 것과 같다.

발밑에 기어가는 벌레와 하등 다를 것도 없다.


물론 때로는 벌레와도, 돌멩이와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대화가 아니며 소통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처절한 몸짓에 불과하다.

오히려 단절을, 불통을 드러낼 뿐이다.

소통할 수 없다면 존재는 그 의미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이와 홀로 고독하게 가는 이는 다르다.
그것이 인간이 아닌 자와 인간의 차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인간’ 하나 보이지 않는 땅.

이 사막 같은 곳에서 그래도 살아 숨 쉬는 건

그는 애초에 죽지 않는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발견한 단 하나의 보물섬처럼

어딘가에는 반드시 인간이 존재할 거란 생각!

나의 히로인은 바로 당신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바로 당신과 ‘대화가 되는’ 진짜 친구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르는 이의 초상집에 가서 곡을 하곤 한다.

그리곤 누가 죽었냐고 물어온다.

아무리 대답해주어도 그저 어리둥절할 뿐,

눈을 감고 꿈속을 내달리면서 그것이 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어쩌면 그는 가장 잔인한 인간!


언제까지나 꿈속에 안주하고픈 이들을 자꾸 흔들어 깨우며

심지어 살해할 마음도 먹고 있다.

아니 이미 죽은 자를 다시 한 번 죽이고

그 주검에서 싹이 돋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꿈이라는 세상 가장 날카로운 날을 가진 자!



그러니 부디 선언하기를,

나는 존재한다, 혹은

나는 당당히 독립한 인간이라고 하라!

세상다움이 아니라 자기다움을 지닌

자기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말하라!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신비(妙)어록2-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하기 3

신비(妙)어록2-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하기 3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5. 15. 10:31

 

"애초에 나는 너에게 거대한 우주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다! 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오로지 나의 친구라는 자부심 하나!

기적 같은 우리의 만남은 내 생에 가장 큰 사건이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이 황량한 곳에

인간으로 태어나고 인간으로 살아 있는 너.

고맙다. 이 세상에 존재해주어서!"




그러므로 사랑은 존재 그 자체!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와 연결된 그 어떤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지금 이 순간 신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당신에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이 있다 없다 논쟁을 벌이는 것은 무지한 짓.

신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 존재유무는 당신과 하등 관계없는 일이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신이 있다가 아니라 ‘나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말해야 한다.

또는 신은 없다가 아니라 ‘아직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야 한다.


신을 믿는다, 따위의 언설은 어설픈 종교인들의 그것.

사람들은 눈에 보이면 곧 그것이 존재인 줄 알지만

눈에 보일뿐 아니라 손으로 만져진다 해도

나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고독한 당신에게 이 세상은 그대로 무인도 일수 있다.



한 침대에 누워있다고 과연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란 말도 있지만

설사 당신이 다른 은하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연결되어 있다면 나는 매순간 당신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곧 내게는 존재 그 자체인 것이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매순간 같은 풍경을 본다는 것!

그 풍경 속에 풍덩 뛰어 들어가 함께 날아다니는 것.

그로인해 이 우주가 다시금 제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저 닮은 점이나 공통점이 많은 것이 아니라

그저 열렬히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을 사는 것!



그리하여 삶 전체를 꿰뚫는 일관성으로 연결되고

이 우주에 다시는 없을 것 같은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매순간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것에서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비롯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랑이다.



아기가 언제나 엄마와 연결되어 서로를 잊지 못하듯이,

나의 히로인이 또한 그렇게 신을 의식하듯이

나는 매순간 나의 세계에 너를 초대한다.

신과 강렬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이 느낌은

이 순간 모든 것을 다 던져도 좋을 그런 통쾌함, 혹은 짜릿함!



사랑이란 매순간 그런 포즈로 너를 초대하는 것!

더 이상 그 어떤 미련도 없다는 듯이,

마치 이 세상 마지막을 함께 하듯이,

매순간 불가능을 안주로 씹으며 가능한의 그 끝까지 올라가 보는 것!

최고의 탐험가가 되어 인간 영혼의 전부를 맛보는 것!



사랑은 함께 신의 길을 걸어가지만

늘 자기만의 세계에서 홀로 고독하게 죽는 것!

그렇게 죽고 다시 태어나 또 함께 꿈꾸는 일.

수시로 옆을 돌아보지 않아도 그 존재를 아는 것이며.

그리하여 더더욱 반짝반짝 살아 있는 것이다.



탐험가에게, 이미 존재하는 것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것은 죽은 것이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러나 백퍼센트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야말로 존재하는 것.

펄펄 살아 숨 쉬려면 기꺼이 삶의 제단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기꺼이 그 제단 위의 제물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매순간 제물이 되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매순간 보내오는 신의 초대장을 받을 수 있다.

우리 그 초대장으로 서로 연결될 수 있다.

신의 친구로서 당당하게 만날 수 있다.



친구란 ‘굳이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를 말하는 것.

진짜 친구란 내가 보는 풍경을 함께 보는 이!

함께 신의 초대장을 받는 이!,

그리하여 나의 초대에 응할 수 있는 이를 말한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매순간 만날 수 있는 이를 말한다.



나의 히로인은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친구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진짜 친구라면 자신의 말을 대신 할 수 있을 테니까!

황량한 들판, 오늘도 여전히 인간은 보이지 않지만

그는 아직도 그 안에서 보물섬 하나 발견하기를 꿈꾸고 있다.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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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2-아무도 모르는 세계가 있다

신비(妙)어록2-아무도 모르는 세계가 있다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4. 30. 12:43


 

누구나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주인공의 친구, 혹은 주인공의 동생처럼 살고 있다
주인공의 친구는 조연이나 단역으로 원래 자신의 삶이 없다.
자신의 룰이 없으므로 자연스레 세상의 룰에 입각하며
주인공에 맞서거나 추종하거나하여 그저 보조할 뿐이다.
요즘들은 매력적인 조연도 있다지만 조연은 조연일 뿐,
애초에 조연은 주인공이란 존재에 기대므로 포지션이 없다.
혹은 낮은 포지션을 가진다.

 


그들이 사는 세계는 스킨십의 세계,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 세계이다.
눈에 보이면 그것이 곧 존재인 세계.
온갖 말로 떠들어대지만 결국엔
서로의 말을 허공중에 날려버리는 곳.
자신의 룰을 가지지 못하여 소통에 이르지 못하고
서로를 찾아 헤매지만 늘 그저 지나쳐 버리는 곳.
사랑타령을 하지만 정작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며,
어른이 되면 시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이른바 반쪽어른들의 세계.

 


연인과 헤어진 다음에야 글이 좋아진다는 속설이
그 세계 작가들에게는 있다.
행복하면 글이 안 써진다는 이상한 예술가들의 세계.
스스로를 비련의 주인공으로 밀어 넣고서야
비로소 잠시잠깐 주인공에 빙의되는 이들.
그렇게 쓴 애절한 사랑(?)의 말들은
역시 조연이거나 단역인 대중의 공감을 얻어내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반면 아직은 신비의 땅, 깨달음의 세계는 다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으며,
언제든 시공을 초월하여 서로 교감할 수 있다.
물론 죽어도 죽지 않는다.
그들은 신(神)의 완전성으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태초에 그들은 서로를 초대하여 축제를 벌였다.
그들이 서로 친구가 된 것은 다 그 기억 때문이다.
나도 약속을 잊지 않고 매 순간 그 자리에 나가고 있다.
마치 인간들이 잠든 밤,
조용히 빗자루를 타고 나가 집회에 참석하는 마녀처럼!
인간지망생들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사랑타령이나 하는 자들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그런 세계가 있다.

 


신에 대한 사랑은 유효기간이 없다.
그들의 축제는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곳의 지성인과 예술가들은
그리지 못해 붓을 꺾거나 쓰지 못해 절필할 일이 없다.
설산의 얼음구덩이에 빠진다 해도 얼음벽에 시를 새길 사람들.
두 평도 안 되는 독방감옥이라 한들 훨훨 날아오르지 못할까!
애초에 그런 운명으로 그 세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곳은 순간만이 존재하는 곳.
그리하여 영원이 춤추고 노래하는 곳이다.
그렇게 매 순간 죽고 태어나,
자신에게 늘 새로운 순간을 선사하는 곳.
먼 풍경을 바라보듯 거룩한 눈빛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곳이다.
혼자 있을 때면 온전히 신과 대화하고,
함께 있을 때면 축제를 벌인다.
신의 모든 순간을 공유하므로
그들에겐 매 순간이 소통이며 사랑이다.
사랑은 그들이 함께 온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
걷기보다야 아슬아슬하겠지만 걷는 이는 모르는 짜릿함이 있다.

 


그렇다. 깨달음은 바로 ‘사랑’의 깨달음이다.
<너와 내가 사실은 하나>라는 숭고한 진리를
절절히 체감하는 것.
말 뿐 아니라 실제로 제 가슴 활짝 열어
온 우주를 끌어안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하면 아니나 다를까,
가슴은 뜨거워지고 온몸엔 열이 끓는다.
태양을 삼킨 듯 황홀한 느낌!
그렇다. 나는 그때 실제로 내가 이 우주를 삼켰음을 알았다.
 

 

부디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이란 스킨십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세계의 그것은 단지 어떤 행위를 말할 뿐이다.
기대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감동하는 일련의 스킨십.
그것은 주인공이 되지 못한 자들의 응석일 뿐
사랑이 아니다.

 


단언컨대 사랑은 그저 존재한다.
신이 그러하듯 사랑은 영원불변한 것.
신에 도발하고 신과 대화하는
태초부터 지금까지 채 몇 명 안 되는 자들만이 가진
강렬하고도 거룩한 지성의 빛, 그것이 사랑이다.
오늘날 세계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은 스킨십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이야기.
지성은 지식인이 가진 것도,
무슨 박사 나부랭이들이 가진 것도 아니다.
마치 신처럼 사랑으로 충만한,
그들 자체가 바로 지성이다.

 


확실히 그들은 저 세계에 사는 사람과는 다르다.
그들은 단연코 삶에 바싹 달라붙어 있지 않는다.
수천 번을 만나도 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새롭다.
또한 그러므로 내일 다시 만날 것이지만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득하다.
권태란 안주하는 자들이 매 순간 들이키는 독약!
설레는 가슴으로는 권태로울 수 없고,
세상 끝에서는 안주할 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 매 순간은 빛이자 꿈이자 설렘이다.

 


그들은 그렇게 꿈꾸는 눈빛을 가졌다.
또한 말로 못할 그 어떤 느낌을 가졌다.
손을 뻗으면 꼭 그 몸을 통과할 것 같고
눈을 감으면 사라질 것만 같은,
스치기라도 하면 온몸에 그 향내와 빛깔이 스며들 것 같은,
그 푸른 빛, 노란 빛, 연두 빛, 보라 빛들이
내 몸 구석구석 물들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멀리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마침내 이 지구가 풀썩 꺼져버릴 것만 같은!
 

 

오로지 한 순간에 제 모든 것을 쏟아 부으니 그런 것이다.
그 어떤 미련도 가지지 않고 늘 빈손이니 그런 것이다.
아무런 기억도 없이 그저 투명하니 그런 것이다.
사랑은 -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신처럼 거룩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오로지 그 사랑으로서만 소통할 수 있을 뿐이다.
2008

-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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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2-인간 선언8

신비(妙)어록2-인간 선언8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4. 16. 23:29



여기 완전한 그림이 하나 있다.
물론 대개의 사람에게는 그저 액자 속 평면의 그것.
어느 미술관 귀퉁이에 걸린 팔리지 않는 그림이거나
누군가의 다락방에 처박혀 출처를 알 수 없는 장식품 정도가 되겠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나의 세계’라고 표현되는 곳!

바로 그곳에서 매순간 펼쳐지는 멋진 풍경이다.
그곳에 사는 ‘인간’의 눈빛은 여느 사람과는 다르다.
‘인간’은 날마다 그 그림 속을 즐겨 날아다닌다.
그 그림 속을 마치 신처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날마다 그 세계의 신비스러움을 바깥 세상에 전하고 있다.

완전한 그림이란 바로 풍경 그 자체이며
평면이 아니라 입체이고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 풍경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림이건 사진이건 사람이건 내가 찾는 것은 바로
나의 풍경 속 ‘인간’의 눈빛을 한 바로 그 무엇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것들은 20세기 혹은 그 이전의 눈빛을 하고 있다.
놀란 토끼눈이나 반쯤 넋이 나간 흐리멍덩한 눈빛.
호들갑을 떨거나 촐랑거리거나 아니면 귀여움을 가장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천박한 표정 일색.
그리하여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결코 그 어떤 풍경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완전한 그림은커녕 그 어떤 밑그림조차 없다는 것을.
그들의 뇌는 입체 혹은 구조가 아니라 평면을 본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 어떤 텍스트건 원래 말하고자 했던 이미지가 아니라
텍스트 그 자체로서만 이해하려 한다는 것을.

소통의 불발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발생하는 것!
사건이나 사물, 혹은 인물의 구조를, 전모를 보지 못하고
그저 평면, 혹은 앞면밖에는 보지 못한다는 사실.
앞면을 보는 것은 일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잘못 보는 것.
어떤 텍스트는 이미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 그 자체라는 사실을 여전히 모르는 것!

그 엄연한 진실을 알아 차려야 한다.
이차원의 그림 속에도 입체가 있고
우리가 늘 접하는 사진 속에도 사건이 있다.
그러나 사진가의 사진 속 인물들은 대게 정지해 있거나 죽어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판에 박힌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인간’으로서 펄펄 살아 숨 쉬지 않으면 안 된다.
관계로서, 생명으로서 생생하게 살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카메라를 향해 스톱모션을 취하며 죽어 있는 것은
더 이상 인간도 사건도 생명도 아닌 그 무엇!
그저 어느 동물원에 박제된 그 옛날 생명의 흔적일 뿐.

사건이 있고 이야기가 있고 영화-드라마-가 있어야 한다.
‘인간’이 있고 관계가 있고 생명이 있어야 한다.
생각이 있고 눈빛이 있고 포즈가 있고
결정적으로 한 세계의 풍경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세계의 풍경, 즉 완전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비로소 소통의 빛이 비칠 수 있다.
완전한 그림이란 미술관 귀퉁이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바로 당신 옆에 펄펄 살아 숨 쉬는 것!
그림은 이미 그림이 아니라 당신이 늘 숨 쉬는 세계,
당신이 밥 먹고 놀고 일하는 바로 그곳의 풍경, 그곳의 이야기인 것이다.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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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妙)어록2-그 남자 모욕하기

신비(妙)어록2-그 남자 모욕하기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3. 19. 18:04


여자와 마찬가지로 남자도 거기서 거기다.
제아무리 잘 생기고 학식이 뛰어나다 해도
또한 사회적 지위가 높고 돈이 많다 해도
자신의 세계가 빈약하다면 더 이상 볼 것은 없다.
여성성 혹은 남성성으로의 승부는 허무 그 자체!

그들 세계로의 여행은 기껏해야 삼 개월이면 끝이다.
단 백일도 못 갈 생(生)을 다시 산다는 것은 미친 짓!
더구나 뻔히 아는 길을 탐험하는 모험가란 없다.
순진한 여자들에게야 웬만한 남자들은 죄다 신대륙이겠지만
최고의 탐험가에게 그들은 동네마다 있는 골목길보다 못하다.


그들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엔 유효기간이 있다.
모든 것이 유한한 이 세상 것들 중 그 사랑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
초콜릿이나 사탕 따위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니, 그것이 수억대의 빛나는 다이아몬드라고 해도
그 사랑이 유한하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렇다. 애초에 저들은 이 유한한 세상에 대한 불만이 없었다.
그저 어수룩한 이등병처럼 이 세상에 적응하려고만 했지
진리에 대한 혹은 진정한 사랑에 대한 목마름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어차피 유한한 인생, 본전이나 뽑자는 건가?
아니면 아직도 연애니 사랑에 대해 환상이 있다는 말인가?

단언컨대 이 세상에 사랑이란 없다.
또한 저들의 변명대로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엔 ‘완전 그 자체’인 깨달음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있다.
사랑이란 그들이 사는 완전한 세계 혹은 그 진리를 말하는 것일 뿐
이 세상 속물들의 서로 지지고 볶는 그런 행위가 아니다.

내가 제일 보기 싫은 장면은 남자는 밖에서 돈 벌어오고
여자는 남편자랑 자식자랑 해가며 때로는 시집 흉이나 보며
살림 걱정, 노후 걱정에 하릴 없이 온 생을 보내는 것이다.
여성의 역할, 남성의 역할, 남편 역할, 아내 역할 충실히 하는
공장에서 이제 막 찍어낸 듯한 판에 박힌 그 모습들이다.

남성성에 집착하는 이들이 있다.
거칠고 강압적인 태도가 남성적이라고 믿는,
연약한 여성을 지켜주겠노라고 큰 소리 치는,
남자의 일, 여자의 일이 따로 있다고 믿는,
섹스라는 장애물이 있어 남녀 사이는 친구가 될 수 없다고 믿는!
 

그런 남자들은 우선 여성을 탐욕의 대상으로 본다.
남성의 상대적인 성으로서의 여성밖에 모르는 자들!
그런 자들에게야 당연히 여성을 초월한 진짜 여성이 보일 리 없다.
성을 초월한 최고의 인간이 보일 리 없다.
물론 보인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그들은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페미니스트들과 다르지 않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란 단지 여성이 아니라 인간이어야 하는 법!
마찬가지로 진정한 남자란 남성이 아니라 인간이어야 한다.
진정한 인간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연극하지 않지만,
또한 누군가를 방어하기 위해 오버하지도 않는다.

일부 덜 떨어진 페미니스트들이 마초를 경계하여 마초 짓을 하는 것처럼
저들 마초들도 페미니스트를 경계하느라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이 세상 마초들은 죄다 덜 떨어진 페미니스트이고
페미니스트 역시 일부는 마초다.
우습지 않은가? 서로를 경계하느라 서로 닮아간다는 것이.

다 자기 세계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비롯된 일관된 자기다움이 아니라면
인간은 그 언제라도 그렇게 바보가 되는 것이다.
애초에 자궁이 없었으니 나올 그 무엇이 없고
나올 것이 없으니 그저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것이다.

자기 안에 우주가 없는 자의 거취야 말로 허무한 것!
자기다움이 없으니 고집이 없고 그리하여 언제 태도를 바꿀지 모르는 자들.
당연히 저들이 말하는 지식에도 한계가 있다.
자신의 세계가 없어 스스로의 삶을 살지 못하니 저들은 대신 유명한 학자들을 섬긴다.
아니라면 별 것 아닌 자신의 히스토리를 경험이랍시고 주절댄다.

아름다움이란 오로지 자기다움이며 거기서 비롯된 자연스러움인 것을.
어쩌다 운이 좋아 신세계를 발견한다고 모험가가 되겠는가?
최고의 모험가만이 최고의 신세계를 개척하는 법!
물론 그들 인간 지망생들은 애초에 신대륙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엉뚱한 것을 신대륙으로 착각하여 아직도 찾아 헤매고 있다.

하여간 내가 초대장을 줄 사람은 깨달음의 세계에 사는 사람!
그리고 그중에서도 자신의 세계가 확고한 사람이어야 한다.
결코 그 누구도 추종하거나 섬기지 않아야 하며
뜬구름 잡는 선문답이나 주절대는 사람이어선 곤란하다.
당연히 마초는 우선 탈락이다.

자신만의 고집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제 고유의 세계에서 나오는 일관된 신념이어야 하며
결코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워낭소리 할아버지도 일면 고집은 있지만
가족에 둘러싸인 자의 고집에는 일정부분 어리광이 포함되어 있기 십상이다.

소로우처럼 홀로 가는 이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고집!
지금 당장 쓰러진다고 해도 돌봐 줄 사람 하나 없는 이.
그런 이의 신념이야 말로 숭고한 것!
오로지 신의 편에 서 있기에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는 자.
죽음을 보험으로 생각하는 자에게만이 진정한 사랑은 존재하는 것이다.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신비(妙)어록2-나의세계에 너를초대하기2

신비(妙)어록2-나의세계에 너를초대하기2 신은 쿨한 스타일이다/짧은 글1 2009. 3. 13. 17:45

 

"보고 싶다고 말하기에는 너는 온통 내 주위에 있어

나를 둘러 싼 대기와 바람, 이슬 한 방울까지도 모조리 너지!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는 차라리 삶 그 자체.

내 전 생(生)을 관통하는 네겐 새삼스러운 고백일 뿐!

너는 내게 기적, 혹은 전율, 아니면 지워지지 않는 화인

그저 빛처럼 존재하는 내 영혼의 울림이지!
보고 싶다고 말하지는 마!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마!

그것은 너와 나를 갈라놓는 것!

가슴은 설레지만 그런 말은 어딘지 부족하여

신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지.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매순간 사랑 그 자체가 되곤 하니까!"




그러므로 사랑은 함께 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

매순간 마주보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여

그의 전부를 탐하지 않아도,

타인에게 빼앗길세라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것.



함께 한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며

함께 미래를 달리는 것.

그 빛으로 충만하여 반짝반짝 살아 있는 것이고

굳게 잡은 손으로 하나 되어 날아오르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혼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게 인생이다.

그 엄연한 진실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할 뿐.

가족 속에, 무리 속에 둘러싸여 회피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마땅히 고독해야 할 것!

고독 속에서 홀로 눈뜨는 자만이 매 순간 살아 있을 수 있으며

마치 첫 키스의 그 순간처럼 깨어있을 수 있다.

‘설렘’이란 그렇게 순간을 사는 자에게 주어지는 신의 선물!



날마다 헤어지는 것이 싫어 결혼을 서두르는 이라면

그 신의 선물을 일단 반납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만남이 정착으로 이어져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진다면

우리의 사랑은 어느새 사진첩 속 빛바랜 사진이 되고 만다.



완전하게 혼자인 사람만이 완전하게 만날 수 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늠름한 독립투사처럼

혹은 첫 날갯짓에 성공하여 유유히 창공을 가르는 아기 새처럼

마침내 홀로 우뚝 선 자만이 그 설레는 순간을 맛볼 수 있다.



그것은 흡사 첫사랑의 그 순간과 같다.

파르르, 스스로도 느껴지는 속눈썹의 떨림

그리고 입 안을 맴돌던, 차마 나오지 못한 그 목소리!

방금 헤어졌는데도 생각하면 문득문득 가슴이 아려오는 꿈속 같은 순간들,



처음이라는 것은 낯설지만 신선하고, 두렵지만 가슴 설레는 것!

또한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마지막이기도 한 것!

그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의 무게는 이 우주의 무게와도 같다.

우리, 그 순간만큼은 훨훨 날아오를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진짜 첫 번째 사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것은, 또한 마지막이라는 것은

그만큼 강렬하고 또 완전하다는 것!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이 있다.



매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없기에 있는 말.

그러나 홀로 신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에게는 그 모든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

함께 그 길을 간다는 것은 매 순간을 함께 한다는 뜻.

그런 것을 불멸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람을 피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이의가 있을 수도 있겠다.

헤어진다, 아니다 말들 하겠지만 이 장면에서 과연 그것이 본질일까?

헤어지든 아니든 무엇이 달라진다고?



그런 속내야 각자 개인적으로 털어놓는 것이 좋겠다.

하여간 그것은 타인의 삶에 개입하느냐, 아니냐

혹은 어느 정도로 개입하느냐의 문제!

연인이든 배우자든 상대의 삶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것!



내가 만약 그 입장이라면 대답은 간단하다.

'모른 척 한다!'

나는 홀로 깨어 신의 길을 가는 자!

당연히 타인의 삶에 나의 삶을 끼워 넣지 않는다.



저 높은 곳의 빛을 향해 앞만 보고 걸어가는 이!

수시로 옆을 돌아보지 않아도, 혹은 애써 마주보지 않아도

제 옆에 저와 함께 걸어가는 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영혼으로 알 수 있다.

또한 그에게는 마땅히 그의 삶이 있는 것!



그의 삶이 나의 그것과 백퍼센트 포개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 전율!

결혼을 한다고 하여, 혹은 상대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한다고 하여

두 개의 삶이 백퍼센트 포개어지지는 않는다.



여자 혹은 남자란 없다.

있다면 단지 인간이 있을 뿐.

또한 여성 혹은 남성적인 매력만으로 한 영혼을 제압하기란 어렵다.

거기엔 반드시 인간의 매력이 필요한 법!



그 사람만의 매력, 그 사람만의 세계.

신세계를 개척하듯 모험정신을 불타오르게 하는

그만의 보물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기쁘게 그 보물에 중독될 수 있다.



사실 이 세상 것 중에는 중독 될 만한 가치를 가진 것이 없지 않은가?

그것을 초월한 무언가, 이를 테면 신과 자연 같은 것 말이다.

함께 신의 길을 가는 이란 바로 그 신의 선물,

아니면 친구의 모습을 한 신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나는 오늘도 이 황량한 들판을 홀로 걸어간다.

어쩌다 스쳐 지나는 사람 하나 없지만, 느낄 수 있다.

저 높은 곳 서광처럼 펼쳐진 나의 길을 향해

나와 똑같은 영혼을 가진 이가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신비(妙)


Posted by 신비(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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