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남자는 나이를 먹으면 보통 한 가족의 대표가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니라면 부모라도 모신다.
전체를 지휘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남자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온다.
반면, 여자들에게는 그럴 기회가 거의 없다는 사실.
여자는 보통 자신이 소속된 울타리 안에서 안주할 수 있다.
남녀가 동등하다지만 여자에겐 사실 자신의 대표가 따로 존재하는 것!
빌어먹을 삼종지도는 21세기, 지금도 여전히 통하고 있다.
물론 가족의 대표가 되는 여자들에겐 남다른 시선도 보태진다.
이것을 단순히 옛날이야기라고 치부한다면 그에겐 책임회피의 혐의가 주어질 것!
남녀가 동등하다는 말은 단지 슬로건일 뿐 진실이 아니다.
단순한 이상을 현실로 착각한다면 대화는 시작조차 될 수 없을 터.
이것은 여자들이 사회생활을 하고 안하고의 문제와는 다른 것이다.
여전히 가족이라는, 남자라는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다면
그 여자는 아직 독립된 개체라고 할 수 없다.
삶은 어차피 혼자 가는 길!
여자라고 해서 삶의 위험한 순간순간마다 자신만의 슈퍼맨이 나타나 줄 리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연약한 피해자로 남아 있을 수도 없다.
여자건 남자건 세상에 맨몸으로 맞서보지 않고서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
진실로 독립된 인격이며, 과연 자기별의 대표 자격이 있는가?
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는 어린애처럼 징징대는 여자!
아프다, 슬프다, 고프다,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 보채는,
제가 좋아서 사랑해놓고 좀 가까워지면 납치되어 온 사람마냥 구는,
사람 말려 죽이려고 작정한 것처럼 바싹 들러붙어서 떨어지지도 않는!
그런 여자들은 왜 밤새 바가지 긁으며 울고불고 사람 목을 조를까? 싫으면 그냥 떠나면 되는 것을.
이상한 건 멀쩡한 여자들도 보호자, 즉 애인이나 남편만 생기면
갑자기 아프리카 난민이라도 되었는지 도움 받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
그러다가 성에 차지 않으면 삐치고 토라지고 징징거리기 일쑤!
나는 솔직히 남자보다 여자라는 동물을 더 이해하기 어렵다.
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일진대 어찌하여 늘 보호막 안에 숨어있기만 하는가?
세상에 태어나서 어느 정도 자랐다면 이제는 한 인간으로 당당하게 데뷔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스스로를 어린아이로 규정하고 마냥 인간지망생으로 남아 있을 텐가?
무슨 미련이 그렇게 많아 아직도 어른으로 건너오지 못하고
강 건너에서 발 동동 구르며 떼를 쓰는가 말이다.
보호받는 것과 사랑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
아무것도 담지 않은 투명한 눈빛으로 저기 먼 풍경을 바라볼 일이다.
그 풍경이 바로 내 마음 속 풍경이 되어야 한다.
울 일은 무에 있고, 원망할 일은 또 무에 있는가?
삶은 그리 길지도 멋지지도 않은, 그저 조금 드라마틱한 길!
언제라도 벌떡 일어나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어야 한다.
지친 나그네가 잠시 길가의 나무 그늘 아래 땀을 식히듯
그렇게 가볍고 홀가분하게 쉬어 가면 되는 것을.
징징대며 들러붙는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까?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홀로 가는 나그네!
지금 이 순간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영원하리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남녀 구별은 있어야겠지만 여자라는 것을 무기 삼는다면 곤란하다.
남자가 강하다는 것을 무기 삼으면 협박이 되지만
여자가 약하다는 것을 무기 삼으면 응석이 된다.
남자는 눈을 부릅뜨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폭력이 될 수 있고
여자는 남자가 폭력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 빌미 삼으면 그것이 곧 폭력이다.
사랑한다는 것이 사랑받을 충분조건이 될 뿐,
왜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 하는가? 그냥 사랑하라!
왜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절대 당당해져라!
상대를 피곤하게 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다.
부디 산뜻해져야 한다.
하긴 웬만한 남자들은 다른 별나라 여자와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지 않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결혼과 동시에 가족이 되는 것!
남자는 가족 전체를 잘 지휘하고 이끌어나가면 된다.
그 남자는 가족의 대표자격을 얻은 것이니까!
가족은 대화의 상대이기 보단 보호할 대상이 되는 법!
웬만큼 독립적인 스타일로 밀고 나가지 않고서야
두 사람 다 제각각 독립적이기는 어렵다.
또한 제아무리 독립적인 성향의 여자라 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이미 안착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어렵게 한다.
여자가 가장이 된다고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결혼제도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는 어쨌든 독립적이기 어려운 법.
나의 히로인을 모욕하기란 참으로 간단한 일이다.
일찍이 진리의 편에 서서 살아온 한 인간에게
결혼이니, 노후니 하는 이야기는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것.
결혼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보험으로 생각하고,
노후에 대한 염려보다는 삶의 완성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 길이 아니면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결코 그의 존재를 두루뭉수리로 뭉쳐서 혹은 생략해서 말해선 안 된다.
나의 히로인에게 있어 독립성만큼 양보할 수 없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히로인과 결혼의 관계는 상극이다.
짝을 이루고 사랑받고 안주하기 보다는
홀로 고독하게 벼랑 끝에 서 있기를 즐겨한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고자 했으며
제 몫을 못해 묻어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다.
나의 히로인을 남자라고 해도 별로 할 말은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가 날이면 날마다 생사의 기로에 서고,
혹은 딜레마에 빠지곤 하는 것이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여자로 태어나 장부로 사는 일이
남자로서 그러기보다야 당연히 드라마틱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그는 스스로 영원히 남을 영화를 선택한 것!
훗날의 흥행여부를 점쳐보는 일도 아주 재미있는 일상 중 하나이며
무엇보다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이니 괜찮은 작품이 나올 터.
특히나 고무적인 일은, 흥행은 되지 않는다 해도
나의 히로인이 아주 특별하므로 이미 그 영화는 졸작은 넘어섰다는 사실!
어서 빨리 크랭크업하기만을 바랄 뿐.
흥행도, 대박도 그다지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히로인과 같은 별에 살고 있는 감독 한 사람 만난다면
이 영화에 영감을 받은 그가 훗날 또 다른 영화 하나 남기길 바랄 뿐이다.
그것으로 이 영화는 그 의미를 다하는 것이다. - 신비(妙)